굴곡진 현대사를 함께한 대한민국 노인들. 세계가 우러르는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후세대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노인들이 최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보상심리’라고 치부하기에는 노인들이 처한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노인 자살율 세계 1위는 대한민국 1000만 노인들의 현주소다. 나라가 어렵고, 젊은세대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참고 또 참았지만 이제 한계점에 봉착했다. 유일한 노인 우대 정책이던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 축소 논란이 도화선이었다. ‘툭’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진료비 탕진의 주범으로 몰리는 상황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대한노인중앙회 김호일 회장은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적극적인 노인들의 권익 확보를 예고했다. 그 첫 번째 지향점으로 ‘의료’를 지목했다. 노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부분인 만큼 단체행동의 필두에 세웠다. 김호일 회장은 “더 이상 노인 홀대는 용납할 수 없다”며 “노인들의 의료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고 결연한 의지를 표했다.
“연골 재생으로 노인 삶의 질 개선, 국내서도 치료 허용돼야”
“골수 아닌 자기지방 줄기세포 필요”
1000만 노인들의 공분에 정치권도 몸을 낮췄다. 대한노인중앙회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과 함께 ‘노인의료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도 공동주관으로 힘을 실었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 모두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한노인중앙회는 이번 토론회에서 △무릎 연골 재생을 위한 줄기세표 치료 △노인 외래정액제 개선 △안구건조증 치료제 급여 확대 △임플란트 급여기준 확대 등 4개의 화두를 던졌다.
특히 노인인구의 절대다수가 고충을 겪고 있는 보행권 확보를 위한 자가 줄기세포 치료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근래 정형외과 영역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증가하면서 수술 자체를 미루거나 막을 수 있는 줄기세포치료 주사 또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서는 환자들 접근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호일 회장은 “연골 재생에 가장 좋은 방법이 본인 줄기세포를 배양해 주사 맞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연골 배양은 허용하면서 주사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이어 “그러니 노인들이 일본에 가서 비싼 돈을 내고 주사 한 대 맞고 온다. 이는 국부 유출이다”고 덧붙였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난 2020년 8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되며 재생의료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국내는 희귀·난치질환 및 다른 치료제가 없는 질환에만, 그것도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 가능한 실정이다.
최근 골수 줄기세포 치료는 허용됐지만 자가 지방을 이용한 줄기세포 치료는 여전히 제도의 벽에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에 주로 노인들을 포함한 국내 환자 약 5만명이 줄기세포 치료를 위해 일본 등 해외로 원정치료를 떠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외국인 환자의 대부분이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호일 회장은 “노인 대부분이 무릎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다”며 “인공관절은 수술에 대한 부담도 적지않고, 늘어나는 수명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릎 연골을 재생할 수 있는 자가 줄기세포 치료는 노인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할 수 없어 일본으로 원정치료를 받으러 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와 정부도 노인들의 보행권 확보 노력에 힘을 싣고 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지난 8월 재생의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첨단재생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증·희귀·난치질환자에게만 국한됐던 재생의료 대상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도 킴리아 치료(급성백혈병)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에 조혈모세포 이식 기관을 포함하는 내용의 첨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건복지부는 재생의료 관련 행사를 잇달아 열고 첨생법 개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복지부는 이르면 11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개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대한노인회도 첨생법 개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고령층 무릎 관절염 환자들이 자가지방 줄기세포 치료를 통해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호일 회장은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여야 간담회 및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는 자가 골수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노인들 불만 키우는 정액제, 개선 절실”
“노인 의료정책 과제 산적, 내년부터 개선 박차”
노인 외래정액제 개선도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노인들의 의료비 완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비현실적인 운용으로 노인들이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의사와 환자 간 갈등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노인 외래정액제는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총 진료비가 일정 수준 이하일 때 정액만 부담토록 하는 제도다.
진료비가 1만5000원을 넘지 않으면 1500원만 본인부담하고 초과시 차등 적용한다.
의원 초진 진찰료는 1만7320원, 재진 진찰료는 1만2380원 수준으로, 물리치료를 추가로 받으면 2만원을 넘게 돼 본인부담이 2000원에서 4000~5000원 수준으로 급격히 커진다.
지난 2018년 이후 제도 개선이 없었던 탓에 각 구간별 상한선을 기점으로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몇 배씩 뛰어오르는 ‘계단 현상’이 재현되면서 의료현장에서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의원급 노인 외래정액제 제도 개선을 위한 협력을 제안했고, 노인회도 적극적인 공감을 표했다.
연속선상에서 대한노인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9월 국회에서 ‘노인 외래정액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김호일 회장은 “노인들 대부분이 고정적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가 잦다보니 진료비가 부담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이어 “노인의 병원비 부담은 정부가 혜택을 주는 방안을 확대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노인외래정액제 확대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한노인회와 대한의사협회는 노인 외래정액제와 관련해 두가지 개선안을 제시한 상태다.
첫 번째는 진료비 2만원 초과 2만5000원 구간에서 본인부담을 15%로 낮추는 방안이다. 해당 안에 따르면 진료비가 2만1000원 구간의 경우 본인부담이 4200원에서 3150원으로 낮아진다.
진료비 2만5000원 구간은 본인부담이 현행 5000원에서 3750원으로 줄어든다.
두번째는 진료비 2만원~2만5000원 구간에서 본인부담을 2000원에 초과분의 30%를 더하는 안이다.
해당 안에 따르면 진료비가 2만1000원에서 본인부담이 현행 4200원에서 2300원으로 낮아지고, 2만5000원에서는 본인부담이 5000원에서 3500원으로 줄어든다.
김호일 회장은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노인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개선안들에 대해 모두 동의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안주면서도 노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첫번째 안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노인회에서는 만 65세 이상에서 치과 임플란트 보험을 기존 2개에서 4개로 확대, 건성안 치료제(인공눈물) 보험 급여 유지 등도 노인 사회는 간절히 원하고 있다.
김호일 회장은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며 “행복한 노년의 삶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졌지만 현 노인 의료정책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 첫 걸음으로 노인회는 줄기세포, 외래정액제, 인공눈물, 임플란트 등 4가지 과제부터 해결하고자 한다”며 “당장 내년부터 현실화 될 수 사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호일 회장은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의원 재직시 우리나라의 고령화 사회 진입에 대비해 노인복지정책연구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맡아 노인복지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이후 3차례 도전 끝에 2020년 대한노인중앙회 회장에 당선돼 한국 노인복지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에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