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이상 68회에 걸쳐 초음파를 이용해 환자를 진찰했으나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하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든 한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에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의료계는 "대법원이 한의사 오진으로 인해 환자가 입은 피해가 뚜렷한데도 판결문에서는 피해사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판결로 의료면허제도 근간이 흔들리고 무면허 의료행위가 빈발할 것"이라고 규탄하는 모습이다.
26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한의사 초음파 사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개탄하면서 문제점과 부작용을 지적했다.
협의회는 먼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을 비난했다.
협의회는 "의료법 제37조에 보면,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X-ray)를 설치한 의료기관 개설자 등은 안전관리책임자를 선임해야 하는데, 한의원은 대상 의료기관에 포함되지 않고, 의료법 제38조 특수의료장비를 설치, 운영하려는 의료기관의 설치 인정기준에도 한의원은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법에는 초음파에 대한 시설기준과 관련된 법령은 따로 없는데, 그 이유는 X-ray, CT, MRI와 같은 장비들은 방사선 차단과 자기장 차단을 위한 별도 시설 기준이 필요한 반면, 초음파는 기계 자체 이외에는 특별한 시설이나 공간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의회는 "대법원은 의료법 제37조와 제38조에서 규정한 의료장비에 진단용 초음파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한의사 초음파 사용이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의료법에서 기존 의료장비의 운영 기준에서 한의원을 배제한 것은 의학을 배우지 않은 한의사가 의과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것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의과 의료기기를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는 것이 당연했고, 이러한 판단 기준에 따라 해당 사건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초음파를 진단에 사용한 한의사에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협의회는 또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의사가 초음파를 해도 된다고 주장할 경우 간호사를 비롯한 여타 다른 보건의료 직역이 직접 초음파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없기에 실질적으로 보건의료 직역 누구나 초음파를 해도 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협의회는 또 법원이 국민건강보험 관련 법령을 근거로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금지된다고 해석할 수도 없다고 판단한 점도 문제 삼았다.
협의회는 "안전성, 효과에 더해 비용적인 측면이나 의학적 요구도 등을 고려해 요양급여 대상으로 할지, 비급여 대상으로 할 지가 정해진다. 요양급여나 비급여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말은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이에 따라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은 금지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특히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신의료기술에 등재되지 않아 요양급여나 비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의료기술이나 장비도 환자에게 돈만 받지 않으면 환자 진단이나 치료에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말이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무분별한 환자 유인 행위와 사이비 의료가 판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협의회는 "한의사가 오진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통계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설명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협의회는 "이번 사건은 2년이 넘는 기간 68회 초음파 검사를 했음에도 환자 자궁내막암 2기를 놓쳐 환자가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든 사건이 발단"이라면서 "이 사건 자체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행위 자체가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된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또 "한의협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전체 의과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한 것인 양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아직 파기환송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의사 회원들이 불법을 자행하도록 종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대한정맥통증학회도 대법원 판결을 "무지하고 위험하며 비상식적인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학회는 특히 "대법원은 환자 피해사실을 숨겼다. 한의사 오진으로 인해 환자 피해가 뚜렷한데도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환자 피해사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다"면서 "오진으로 환자가 입은 피해가 보건위생상 위해(危害)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향후 발생할 환자 피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대법원에 있다"며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민 건강과 생명을 오히려 큰 위험에 빠뜨린 대법원은 그 어떤 범죄보다 무거운 범죄행위와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이 잘못된 판결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수단 강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도 "대법원은 아픈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예는 너무나 많다"고 꼬집었다.
의사회는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 결과를 이용해 본말을 전도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범죄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 혼란을 부추기고 의료 안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향후 발생할 부작용과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는 판례를 만든 법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