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지난 주말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9부 능선을 넘은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의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유력해지면서 마지막 남은 카드인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가운데 4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임기 내 첫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한 이후 7년 만이다. 마찬가지로 여당의 반대가 극심했던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또한 이 전철을 밟아 거부권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지만 대통령이 짧은 기간 내 연달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그 대상이 될 경우 1989년 노태우 정부가 거부한 '국민의료보험법안'에 이어 보건의료 관련 법안으로는 두 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데일리메디가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됐던 역사를 정리했다. [편집자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정부에 이송된 뒤 15일 이내 행사해야 하는 대통령 거부권은 1948년 공포된 헌법부터 명문화됐다. 양곡관리법 사례를 포함하면 현재까지 총 67건 행사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총 12인 중, 이승만·박정희·노태우·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등 6명이 행사했다.
전체 거부권 행사 법안 중 33건은 재의를 거쳐 법률로 확정됐고, 나머지 절반은 폐기됐다.
그러나 법률로 확정된 법안이 모두 국회에서 원안대로 재의결된 것은 아니다.
25건은 원안 재의결을 통해 법률로 확정됐고, 6건은 수정의결, 2건은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철회하면서 확정됐다.
범위를 좁혀 1988년부터 현재까지 사례를 보면 총 17차례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고 이중 15건이 폐기, 1건만 법률로 확정됐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거부권 성공률은 93.7%에 이른다.
야당, 압도적 표결 불구 재의결 진행되면 어려울 가능성
집권 여당의 원내 의석 점유율과 같은 정치환경도 거부권 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곡관리법 및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등 거대 야당이 주도해 끌고 온 법안들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유력한 이유다.
앞서 3월 23일 본회의에서 간호법은 재적 262명 중 찬성 166표, 반대 94표, 기권 1표, 무효 1표, 의사면허취소법은 찬성 163명표, 반대 96표, 기권 2표, 무효 1표로 부의가 가결됐다.
추후 압도적인 찬성표로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재의 절차에 들어가면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국회가 대통령실에서 돌아온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 및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다.
실제 1989년 3월 국회를 통과했던 국민의료보험법은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 재의에 들어갔지만 당시 야당이 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사상초유 보건의료 직역 갈등 사안 적용될지 촉각
이 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치와 관련한 법안이 다수였다.
사상 초유의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을 낳고 추후 의료환경 변화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기도 하다.
현 6공화국 체제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17건 중 4건은 국정감·조사법, 국회 증언감정법, 국회법 등 국회 의정활동 관련 내용이었으며 이외에 과거사 규명, 전현직 대통령 의혹 수사 관련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법안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사례는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거부권을 행사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는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켜 정부지원을 받도록 하는 내용인데, 대통령이 범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형평성'을 지적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이는 대선을 겨냥한 전형적 표퓰리즘적 입법이며, 정부에 과도한 재정부담을 부과하고 타 대중교통수단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