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의료인면허취소법이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범의료계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곽지연 회장이 1주일 넘게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고,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5월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 가운데 가장 파급력을 지닌 전공의 단체는 이번 총파업 합류에 여전히 확정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공의 파업의 위력을 감안하면 이들의 동참 여부가 의료계 파업 투쟁의 지축이 될 수 있는 만큼 선배 의사들도 후배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을 만나 현재 입장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파업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아직 내부 논의 중이기도 하지만 대학병원 자체가 전공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만큼 파업 참가 시 병원들이 마비될 수 있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지난 2020년 의사 증원 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총파업과 달리 현재 간호법·의료인면허취소법 저지 관련 총파업에 전공의 참여가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다.
대전협은 의협 비대위 로드맵에 협조하는 원칙에 더해 17일 전까지 예정된 두 번(9일, 16일)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정치권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3일에는 내부 논의를 위해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향후 대전협 회무도 달라질 수 있지만 강민구 회장은 원칙적으로 그동안 경주해온 수련환경 개선 등에 집중하면서 약 3개월 남은 임기를 소화할 생각이다.
그는 "전공의 연속근무 24시간 제한 등 근로시간 단축, 수련환경 개선, 필수의료(중증·응급소아·분만 분야) 의료체계 개선 등에 집중하며 임기를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총파업 참여를 두고 대전협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이를 넘어 환자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의사들도 궁극적으로 '파업권'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강민구 회장은 "환자들은 잠이 부족한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라며 "입원진료는 교수가 아닌 주 100시간 근무하는 전공의가 맡는다"고 전했다.
이어 "주 100시간 근무를 수행하면서 형사처벌까지 감내할 사람은 없다"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이국종 교수만을 떠올리며 사명감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호소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지켜보며 파업 결정
낭만닥터 김사부·이국종 교수 '묻지마 사명감'은 실제 현장에서는 환상
의사도 노동자, 환자안전 위한 '파업권' 정당하고 필요
이 같은 이유에서 대전협은 이번 국회를 통과한 의료인면허취소법을, 의사들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킬 위험요소로 보고 경계하고 있다.
쟁의행위 중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적용 받는 직종인 의사들이, 명령 불이행 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면허가 취소될까봐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민구 회장은 "면허취소법이 더해지면 의료인 파업은 사실상 어려워진다"며 "바보가 아닌 이상 젊은의사들은 필수의료 전공에 더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간호사들이 주축을 이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예를 들면서 의사 파업권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강민구 회장은 "보건의료노조는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의 매년 파업을 도모한다"며 "반면 의사는 2000년, 2014년, 2020년 3차례만 대규모 파업을 진행했다"고 비교했다.
이어 "우리는 노조가 '환자 생명을 볼모로', '이기적인' 파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며 "노조도 원내 의료인으로서 정당한 노동권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의사 총파업 시 국민들로부터 일부 비판을 받았지만, 의사들 파업도 의료인으로서 정당한 것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주 52시간 일하는 간호사와 주 88시간 일하는 전공의 중 누가 더 열악한 처우냐"며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국 전공의는 근로조건 개선 등을 이유로 수시로 파업한다"고 전했다.
이어 "영국 국민의료보험(NHS) 소속 전공의도 현재 파업을 진행 중이나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한다'는 비난에 이렇게까지 노출돼 있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강 회장은 특히나 지금과 같은 여야 대립 및 보건의료계의 분열 상황 속에서 전공의들이 파업에 내몰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소아진료 접근성 증진, 필수의료 전공의 확보 등 시민 건강권 확보를 위해 우리는 정부와 협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국회와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