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급성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온 환자를 오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응급의학과 전문의에 2심 법원이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같이 기소된 당시 전공의에 대해선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앞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와 당시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던 B씨는 급성 후두개염으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실려온 환자를 급성 인두편도염으로 오진, X-ray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들 의사들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 각각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을 지난해 선고했다.
1심 판단과 달리 전문의 A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2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사건 의사들은 기도유지가 필요한 위급한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릴 겨를이 없이 제일 앞선 응급처치였던 기관삽관을 시도했고, 이 같은 진료과정이 당시 의료수준에 미달하거나 일반적인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단시간에 의료조치를 취해야 하는 응급의학의 임상적 특성을 언급했다.
의료감정 및 다른 의료기관이 수행한 사실조회 결과 외에도, 임상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의의 상황을 재판부가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과실로 인한 의료형사소송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살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죄 판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에 나섰던 대한응급의학회 노력에도 눈길이 간다.
6일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대외협력이사는 재판 직후 “재판부가 응급의료 특성을 일정 부분 고려한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탄원서와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열흘이 조금 넘게 진행된 기간동안 응급의학과 전문의 3808명이 탄원서에 서명했고 121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응급실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 24시간 일하고 있는 응급의학회 전문의, 전공의들이 더욱 열심히 응급의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과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특히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응급의학 특성을 고려한 판결을 호소드린다”며 학회의 간절한 의견을 담았다.
학회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의료과실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횡격막 탈장 사망 소아 사건’ 판례를 인용해 “응급의학은 급성 질환과 외상환자의 평가와 처치를 병행하며 활력징후를 안정화시키고 수술, 입원,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진료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의학 전문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 그리고 부족한 정보를 갖고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 대해 최종 진단을 내려야 하는 정말로 힘든 경우가 많다. 응급의학은 다른 임상의학과는 특징이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과 관련해 “응급환자에 대해 응급의료센터에서 최선의 진료를 다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전공의에게 영상의학적 검사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실로 인정해서 민사책임에 더해 형사적 책임까지 부과한다는 것은 응급의료 현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응급진료를 심하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읍소했다.
또 "기소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20여 년간 응급의료인을 교육하고 있는 공로를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전공의 B씨는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환자의 칭찬 미담 사례가 있을 정도로 성실히 진료에 임하는 의사"라고 덧붙였다.
탄원서를 작성한 이경원 이사는 “학회 많은 회원들이 탄원했는데 받아들여져서 다행이다. 일반 회원들의 걱정이 많았던 만큼 이번 재판 결과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의료계는 이번 판결 결과에 다행이라는 의견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의료형사소송에 대해선 우려감을 표했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법원의 이번 판결은 고무적이지만 부당한 소송에 휘말린 의사들이 나올 때마다 전 의료계가 나서 선처를 호소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전문의에 대한 무죄판결은 환영하지만, 전공의에 대한 법원 판단에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당한 의료과실 혐의로 형사적 책임을 지거나 소송에 휘말리는 의료인들이 많아질수록 방어적, 소극적 진료경향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국민 건강을 위한 안전한 의료시스템을 위해서라도 재판부와 검찰이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