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자체가 붕괴 위기이다 보니 소아심장 등 세부전공은 그야말로 씨가 마르고 있다. 지금 소아심장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은퇴하면 소아심장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멸종될 위기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은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나 인력이 수급되지 않아 붕괴 위기에 놓인 소아청소년과 세부전문의 문제를 지적했다.
“의료진 파격 대우 등 체감도 높은 정책 절실”
세부전문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일정 기간 전임의 과정을 거친 후 별도 자격시험을 통과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강화한 의사다.
그는 “세부전문의는 추가 수련 뿐 아니라 고위험군 환자를 담당하며 역량을 쌓은 인력”이라며 “특히 소아심장분과 전문의는 존재 유무에 따라 진료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린아이들의 경우 교과서나 의료지침에서 찾아볼 수 없는 증상이 많아 경험이 많은 교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정통한 교수가 지휘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는 현재 전공의 지원율 자체가 10%대로 인력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세부전공까지 도전하는 지원자 역시 점점 감소하고 있다.
특히 소아심장 분야는 기피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소아심장 분과 세부전문의 응시율은 2017년 1명, 2018년 8명, 2019년 7명, 2020년 6명, 2021년 8명 등 한 자릿수에 그쳤다. 작년에는 응시 인원 부족으로 시험조차 치러지지 않았다.
소아심장외과(소아흉부외과) 세부전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017년 0명, 2018년 1명, 2019년 3명, 2020년 2명, 2021년 2명이 전부다.
“고위험 수술 의료진에 거액 배상 판결, 그렇지 않아도 없는 필수의료 의사 멸종 초래”
최용재 부회장은 “현재 각 대학병원에서 소아심장질환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은퇴가 멀지 않았다”며 “후학이 들어오지 않으니 씨가 마를 위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병원에서 자신의 세부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일반 소아환자를 진료하며 당직을 서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은 진료보다 연구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정반대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소아심장 분야가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일반 개원이 불가능하고 고난도 수술 및 의료분쟁 위험 등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심장 수술 후 환아에게 영구적인 발달장애 후유증이 남게됐다는 이유로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에게 9억여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최용재 부회장은 “이 같은 판결은 의사의 씨를 말리고 싶은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대목동 사건으로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구속되고 전공의 지원율이 크게 감소했는데 이러한 판결이 계속 나온다면 필수의료과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디 작은 심장을 수술하는 만큼 위험도가 높고 수술이 잘 끝나도 예후가 안 좋아질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원인불명 사망까지 모두 의사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환자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너무나 쉽게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분위기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진료 현장서 통하는 정책 필요…‘수가 정상화’ 시급”
최용재 부회장은 이 같은 소아청소년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반적인 수가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꺼져가는 소아청소년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당장 통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학병원은 당직비 현실화 및 보수 체계 차별화 등으로 파격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 분야를 깊게 연구한 세부전문의는 진료비 차등 적용 등을 통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게 최용재 부회장 주장이다.
그는 “유학까지 마치고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수준의 전문가와 일반 전문의 수가가 동일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세부전공을 마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3차 병원이 쓰러지면 소청과는 정말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아동병원 또한 경영난에 폐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어 수가 인상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 부회장은 끝으로 “이러한 처우 개선이 보장되면 소청과 교수를 하고 싶은 전공의가 많아질 것이고 혹여나 교수가 되지 않더라도 아동병원이나 개원가에서 근무하는 인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