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배상 판결이 이어지며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과도한 배상 판결로 필수의료 몰락은 물론 방어 및 회피 진료를 가속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판결을 보면 배상 금액이 커지고 있다. 뇌성마비 신생아분만 의사 12억, 가톨릭중앙의료원 폐암 치료 지연 17억원, 심장수술 후 영구 발달 장애 후유증 9억원 등 모두 의사 및 의료기관에게 뼈아픈 판결이다.
대법원의 초음파 및 뇌파계 판결도 비슷한 맥락으로 진료 현장에서 의사들이 제기하는 반발감은 생각보다 거칠고 강하다.
소신진료 회피하고 방어진료 의사 급증 전망···궁극적으로 환자들이 피해자
최근 법원의 의료 관련 사안에 대해 민사 및 형사적 판단에 수억원 또는 실형을 잇달아 선고되면서 법원 등 사법부를 향한 불만이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와 더불어 형사 판결도 의료계는 불만이 잔뜩 쌓였다.
가장 최근 발생한 장폐색 의심환자 수술 시기 조절과 악화에 따른 실형 선고도 이를 가중했다. 2023년 8월 대법원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수술을 늦춘 결과에 대해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확정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장폐색은 최대한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본 후 판단 시점에 따라 수술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환자를 지켜보는 현장 의사가 가장 정확할 수밖에 없으며 의료감정을 하는 의사라고 할지라도 판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쉽게 말해 의사들 전문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성토다. 의료계는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대해 큰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여기저기서 필수의료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의사를 노리는 브로커가 활개치고, 그에 부응하는 법 판단이 반복되니 완벽할 수 없는 의술은 범죄 취급을 받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결국 대법원 판단은 파멸로 치닫는 대한민국 의료의 한 단면일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선의 의료행위 중에 발생한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에 대한 형법 적용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을 사법부가 부정하고 추후 환자 상태 악화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개별 의사에게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까운 시일 내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에게 최선의 판단과 연결되는 치료 방법을 선택 및 권유할 소신 진료의사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의료 질(質) 저하를 예견했다.
대한외과의사회도 법원이 외과의사를 범죄자로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외과의사회는 “환자 건강 회복 유지를 최우선 목적으로 건강 훼손에 고의가 없는 의료진들 진료 및 치료는 정당한 행위로 인정해서 범죄로 취급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형사처벌, 외국보다 엄격한 상황…의료 감정 전문인력 양성 등 개선·지원 필요
하지만 법조계 시선은 조금 다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판결의 경우 형사는 명확한 과실 책임, 민사는 과실 산정을 활용한 손해의 공평한 부담 등이 기준이다.
최근 여려 판결들이 의료계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대를 반영치 못한 여러 요인이 모여 이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견해다.
법조계 관계자도 의료 사고와 관련한 형사 처벌의 경우 해외보다 국내가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수긍했다.
즉, 의료감정 인력 양성과 제도 개선은 물론 임상 현장에서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법학계에서는 늘어나는 의료 분쟁에 대비, 의료 감정에 대한 전문인력 양성과 체계 개편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A 법무법인 변호사는 “의료사고는 의료 감정을 통해 사안을 판단한다. 의료 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시 의사에게 억울한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의사들의 안전한 진료를 보장할 법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공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