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설립된 한국로슈는 혁신을 지향하는 그룹 전략에 따라 우리나라 항암 치료를 비롯한 희귀 및 난치질환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의약품을 공급해왔다. 실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에 이어 최근 암종불문 항암제를 도입하면서 지난 20년간 약 4만명의 국내 환자들에게 다국가 임상시험을 통한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울러 희귀 및 난치질환 환자를 위한 문화예술 지원 활동 ‘힐링투게더(Healing Together)’, 환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임직원 참여형 봉사활동 ‘볼룬티어투게더(Volunteer Together)’ 등 환자 중심주의 기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창립 126주년을 맞이한 로슈그룹은 ‘원 로슈(One Roche)’ 전략을 통해 그동안 축적해온 진단 및 치료 경험과 데이터를 디지털 기술과 결합, 통합 맞춤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닉 호리지 한국로슈 대표이사[사진]를 만나 환자들 삶을 변화시킨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 비전, R&D 파이프라인 등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주]
Q. 기업미션 ‘Doing now what patients need next(내일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오늘 행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뜻을 담았나
A. 로슈의 미션에는 치료에 어려움이 있는 영역의 치료제를 개발, 최고의 치료제를 가장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신속하게 제공한다는 미래 지향적 관점이 담겼다. 글로벌 차원에서 다양한 R&D 활동으로 효과적인 신약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우리의 혁신이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로슈도 국내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국은 R&D 측면에서 로슈의 주축이 되는 국가다. 구체적으로 지난 20여 년 간 한국에서 4만명 이상의 환자에게 1~3상 임상 연구 혜택을 제공했으며, 작년 한 해에만 5000명 이상 환자들이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 중에는 한국 현지에서 진행한 연구자 주도 임상이 다수 포함돼 있다.
Q.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 구상 후 2년이 지나 꽤 정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트랜스포메이션의 궁극적 목표와 시행 후 어떠한 장점은
A.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은 글로벌 차원에서 시작된 조직문화 혁신이다. 헬스케어 기술과 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로슈 포트폴리오 역시 새로운 치료 영역으로 성장하며 꾸준히 진화했다. 과거 비즈니스 방식이나 운영 모델로는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최고의 결과물을 신속하게 전달하겠다는 로슈의 목표를 이뤄내기 어렵다고 판단,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를 추진하게 됐다.
이를 통해 한국로슈는 고객들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이를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에 드는 시간과 과정을 대폭 축소하고, 직원 개개인이나 소규모 팀 단위에서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업무 추진과 의사 결정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해 임직원들 마인드셋 등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도모했고, 이후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업무 방식과 비즈니스모델을 혁신했다. 지금은 치료 영역 또는 환자군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환자 치료 여정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조직으로 진화했다.
Q. 변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실제 임직원들이 느끼는 분위기가 궁금하다
A. 적응 과정을 거쳐 이제 서서히 열매를 맺고 빛을 발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느꼈던 가장 큰 어색함은 자율적인 의사 결정 체계였던 것 같다. 스스로가 리더로서 ‘국내 의료 생태계에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했던 셈이다. 물론 자율적인 의사결정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개인에게 많은 권한과 자유도 함께 주어지므로 이제는 이를 즐기는 직원들이 많다. 충분한 권한과 자유로 다른 직원, 부서와 협업을 추진하는 등 자연스럽게 변화를 즐기게 되면서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표현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자 하는 몇몇 직원들과는 아쉽게도 이별하게 됐다. 또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젊은 직원들이 새롭게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됐고 로슈의 비전 달성을 돕는 신선하고 새로운 관점들이 성공적으로 조직에 녹아 들 수 있었다.
Q.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한국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으로는 무엇이 있나
A. 한국 내 주요 대형 병원에 분자종양보드(Molecular Tumor Board, MTB)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 의료(Personalized Healthcare, PHC)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생긴 권한과 자유를 기반으로 각 팀이 병원 별로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 접근했던 과정의 성과다. 회사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약 30%정도 성장했는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전과 비교해 로슈 의약품과 서비스 혜택을 누리는 환자가 30% 늘어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익적으로 한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자 사회공헌활동을 포함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혁신적인 의약품과 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에 우리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며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다른 다국적제약사분들이 늘어났다. 로슈가 새로운 접근의 선구자라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Q. 한국로슈 대표로 부임한지 4년째다. 그동안 국내 헬스케어 생태계에 받았던 인상과 최근 헬스케어 정책 변화를 예고한 새 정부에 제약기업 수장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재임기간 동안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우리의 일상과 업무에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다행히 한국 정부의 훌륭한 리더십으로 주변국에 비해 타격이 적었다고 생각한다. 매우 인상 깊었다. 새 정부가 내세운 헬스케어 정책에 대해서는 기대가 크다. 로슈는 다수의 희귀중증 질환 관련 혁신 의약품을 개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속등재제도 등 국민의 신약 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매우 반갑다. 혁신 신약에 대해 보다 신속하고 폭넓은 접근성 확대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35%로 미국(87%), 영국(59%), 일본(51%) 등에 비해 크게 낮다. 급여 등재까지 평균 601일 소요되고, 약제비 지출 중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도 20% 내외에 불과하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전체 약제비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혁신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의 관련 공약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로슈는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
"작년 5천명, 지난 20여 년간 4만명 이상 국내 환자에게 1~3상 임상연구 혜택 제공"
"새 정부, 국가재정 영향 적게 끼치면서 혁신 의약품 접근성 늘릴 방안 강구 기대"
"특허 만료되더라도 다른 회사 제네릭이 효율적으로 생산된다면 그 자체로도 큰 의미"
Q. 정부가 혁신 의약품에 대한 약제비 지출 비중을 늘린다면 특허 만료 의약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로슈와 같은 회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것 같은데
A. 로슈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혁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 신약에 대한 외부의 인정과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은 수십년 동안 조금의 수익도 내지 못하거나 임상 연구에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얻게 되는 결실이다. 로슈 그룹은 작년 기준, 전체 매출의 20% 이상에 달하는 16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업계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을 통틀어도 상위 20개 기업에 속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투자는 사회 발전에 중요한 가치를 불러올 것이라 믿는다.
노력과 투자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꾸준한 인정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치료 환경 개선의 여지가 생긴다. 오리지널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다른 회사들이 제네릭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특허 만료에 대한 오리지널 가격 인하만 적절히 이뤄진다면, 선순환을 통해 향후 다른 혁신 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본다.
Q. 글로벌 차원 One Roche 전략이 진단사업부와 어떤 측면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인지, 한국에서 One Roche 전략은 어느 정도 단계까지 도달했는지
A. 제약과 진단사업부가 개별 비즈니스 전략을 가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어떤 영역에서는 두 사업부 업무가 중첩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영역에서 두 사업부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한 것이며, 기본적으로는 두 사업부 비즈니스 모델과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 조직으로 유지될 것이다. 앞으로 알츠하이머, 안과질환 등 진단과 치료가 결합한 여러 질환에서 시너지 발생의 기회를 모색하고자 하며 실제로 이를 위해 두 사업부 리더십팀들이 워크숍 등을 통해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과거에도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에서 치료제로는 알레센자가, 동반진단 검사법으로는 벤타나 ALK 검사법이 활용되며 두 사업부가 협력한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두 사업부가 맞춤의료(Personalized HealthCare) 기반의 통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정부, 대한종양내과학회, 대한항암요법연구회 등과 함께 KOSMOS II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Q. 티쎈트릭의 폐암 1차 치료 급여 확대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급여 등재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 및 향후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략은
A. PD-L1 양성 및 EGFR 또는 ALK 유전자 변이가 없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등 특정 환자군의 1차 치료에 티쎈트릭이 확연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진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 옵션이 많아지는 것 자체도 큰 가치가 있고 의료진들도 이러한 점에 동의한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의약품 허가와 보험급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에 대한 의료진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최적의 환자에게 티쎈트릭이 안전하게 처방될 수 있도록 한국 의료진들과 협조하며 필요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Q. 지난해 상반기 폴라이비의 급여를 신청했는데 아직까지 특별한 소식이 없다. 현 진행상황은
A. 개인적으로는 조부께서 림프종으로 돌아가시기도했고, 맙테라 이후 특별한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아 관심이 높은 영역이다. 폴라이비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최근 발표된 데이터에 따르면 폴라이비 사용 환자들의 전체생존기간(OS)이 기존 요법 대비 유의한 개선을 보였고 최근 1차 치료에서도 20여 년만에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해 EMA에서 승인, 새로운 옵션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는 만큼 국내 환자들에게도 임상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로슈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중인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이 있다. 많은 제약사가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고전하고 있는데
A. 로슈가 개발 중인 간테네루맙은 베타(β)-아밀로이드 표적 항체치료제로 환자들의 뇌세포를 사멸시키는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줄여 증상을 개선하는 기전이다. 올해 하반기에 3상 임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더불어 알츠하이머 치료 영역에서 로슈는 치료제 개발 뿐 아니라 환자 조기발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증상이 어느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환자에게 치료제를 처방할 경우, 이미 벌어진 뇌 손상 재생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간테네루맙 임상 연구 결과가 성공적이라는 전제 하에, 이러한 로슈의 접근 방식은 환자들에게 매우 가치있는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