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관심 높아진 의료산업···롯데·야쿠르트 진출
양사, 보바스병원 인수전 참여···현대중공업 의료기기사업부 인수 촉각
2017.04.07 20:03 댓글쓰기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소득대비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의료산업 전반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14%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14%는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접어드는 UN 기준이다.


당초 2018년경 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앞당긴 것이다. 2000년 7%를 넘어서며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지 17년 만이다. 20% 기준의 초고령화사회(Super-Aged Society)는 2026년이면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인구 편입이 본격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관련 의료서비스산업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한국의 GDP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은 2000년 4.0%에서 2014년 7.1%로 증가했다.


2014년 국민의료비는 105조로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증가율도 9.5%에 달해 OECD 평균인 5.4%를 훌쩍 웃돈다. 급격한 고령화가 예상되는 향후 10년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대기업이 의료산업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롯데, 보바스병원 교두보로 의료산업 진출하나


유통산업을 기반으로 국내 산업 전반에서 ‘공룡’이라 불리는 롯데는 그간 의료산업 진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료산업은 많은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하지만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롯데가 의료산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노인요양재활병원인 경기도 성남시 소재 보바스기념병원 인수 본계약(SPA)을 체결했다. 이는 앞서 2900억원이라는 거금으로 보바스기념병원 입찰에 성공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결과다. 법원의 회생계획 인가와 성남시의 허가만 떨어지면 보바스병원은 롯데의 수중에 들어간다.


보바스병원은 2004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설립됐다. 부지 면적 24300㎡(약 7400평)에 연면적 34000㎡(약 10250평) 규모로 550여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보바스라는 이름은 1940년대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의사와 물리치료사인 카렐 보바스(Karel Bobath)와 베르타 보바스(Berta Bobath) 부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보바스 부부는 뇌성마비·뇌졸중 등 뇌신경계 손상 환자들에게 1:1 맞춤 재활치료를 시행해 이론을 정립했다.


그들의 정신을 잇겠다며 비영리의료법인 ‘늘푸른의료재단’이 2002년 영국 보바스재단으로부터 병원명 사용을 인증 받았다.


보바스병원은 1:1맞춤 재활이라는 특장점으로 입원 대기기간이 길게는 몇 개월에 달한다. 병상가동율은 90%대로 2013년 이후 매년 40억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재단의 무리한 투자가 경영난을 초래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UAE 두바이재활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등 성과를 내는 듯 보였지만 부동산 투자·노인복지 주택 분양 등의 사업에서 부채가 가중됐다. 병원 자산은 1013억원으로 상당한 규모지만 부채가 842억원에 달한다.


결국 재단은 지난해 6월 회생절차 인가 전 인수합병을 조건으로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요청했다. 앞선 2015년 9월 수원지법에 신청한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인가 전 인수합병 조건으로 내건 것은 재단 이사회 구성권이었다.

이사회 구성권을 팔아 병원 정상화를 노리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허용했다.


탄탄한 병원인 만큼 호텔롯데를 필두로 한국야쿠르트, 보성그룹, 호반건설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10월 입찰에서 2900억원을 제시, 다른 경쟁 업체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금액보다 3배 이상 높은 입찰가에 낙찰됐다.


호텔롯데는 늘푸른의료재단에 600억원을 무상 출연해 부채를 탕감하고 2300억원은 빌려주는 형식으로 지급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공익적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향후 노인재활에 투자하겠다는 호텔롯데 측의 설명도 우선협상자 선정에 작용했다는 법원의 설명이 있었다.


호텔롯데는 본계약을 체결하며 병원 이름을 롯데보바스병원으로 바꾸고 늘푸른의료재단 또한 롯데의료재단으로 변경할 계획을 밝혔다.


이미 의료산업과 연계로 실버산업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있는 롯데그룹은 계열사 차원의 시너지를 높일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롯데JTB는 의료관광 상품으로 롯데호텔·보바스병원을 연계해 고급요양과 의료서비스를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롯데푸드·롯데렌탈이 병원 환자식과 각종 의료기기를 제공하고, 롯데손해보험을 통해 의료기기·병원 관련 보험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사업으로 분류되는 병원 분야 정보기술 사업은 롯데정보통신이 맡는다. 그야말로 보바스병원을 의료산업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것이다.


보바스 놓친 한국야쿠르트, 의료산업 진출 ‘호시탐탐’


호텔롯데로 보바스병원 우선협상 대상자가 결정됐을 때, 한국야쿠르트는 반발했다. 의료업에 경험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기 때문이다.
 

종합건강기업을 표방하는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008년 자회사 메디컬그룹나무를 설립하고 의료컨설팅과 의료기기사업에 뛰어들었다.


메디컬그룹나무는 설립 초기 비에비스나무병원의 컨설팅을 맡는 등 성과를 내는 듯 보였지만 2011년 33명에 달하던 임직원은 현재 4명에 불과하고 2015년에는 영업적자 60억원을 기록했다.


메디컬그룹나무의 자본금이 220억원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존폐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야쿠르트의 의료산업진출이 이슈화되며 여러 언론에서 밝혔던 메디컬그룹나무의 비에비스나무병원 운영 또한 취재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메디컬그룹나무의 실패에도 한국야쿠르트는 의료산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한국야쿠르트는 의료기기업체 큐렉소를 자회사로 인수하며 의료로봇 사업을 시작했다. 큐렉소는 인공관절수술 로봇 ‘로보닥’을 통해 미국 의료로봇시장 진출을 노리는 회사다.


아직까지 큐렉소의 성적은 신통치 않다. 한국야쿠르트는 인수 후 1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며 의료로봇 사업에 욕심을 보였지만 큐렉소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404억원으로 성과가 나오는 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는 큐렉소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모회사인 한국야쿠르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큐렉소는 현대중공업 의료기기 사업부를 인수했다. 현대중공업의 의료기기에 대한 모든 부분을 현물출자로 받고 지분의 6.7%를 넘겨주는 형식이다. 사업재편을 하려는 현대중공업과 의료산업 성장을 바라는 한국야쿠르트의 이해관계가 부합했다는 평가다.


큐렉소 관계자는 “인수라기보다 합작이라는 표현이 맞다. 현대중공업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로봇사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현대중공업과 함께 서울아산병원·울산대병원 등과 임상시험 및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큐렉소는 현대중공업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로보닥 일부 버전의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야쿠르트가 보바스병원 입찰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큐렉소가 있다. 보바스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고 임상을 진행하는 등 시너지를 기대한 것이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지금의 한국야쿠르트를 만들어온 주역인 발효유 산업은 정체돼 있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의료산업은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 큐렉소에 대한 투자와 보바스병원 인수 추진은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의료재단 인수는 영리병원 신호탄?


롯데와 한국야쿠르트의 의료산업 진출을 위한 병원 인수 1차전은 롯데의 싱거운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롯데가 병원을 인수하는 데에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비영리의료재단 인수를 통한 대기업의 의료산업 진출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야쿠르트 또한 롯데의 보바스병원 인수가 순조롭길 응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의 보바스병원 인수가 탈 없이 진행된다면 한국야쿠르트의 향후 병원시장 진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가 2900억원 들여 얻는 것은 늘푸른의료재단의 이사회 선임권이다. 엄밀히 말해 인수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롯데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사장을 세운다면 재단과 보바스병원의 운영 전권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 ‘편법·우회 인수’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대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병원사업에 진출했다. 초기에는 자금출연을 통한 공익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이 병원을 설립하는 방식이었다.


현대그룹은 1977년 현대건설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이 정읍아산병원을 시작으로 서울아산병원·강릉아산병원 등을 설립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삼성그룹 또한 1982년 삼성생명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이 재단이 삼성서울병원·삼성창원병원·강북삼성병원을 세웠다.


또 다른 경우는 학교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그룹의 아주대병원과 한진그룹의 인하대병원이다.


1977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사재 출연으로 대우학원을 설립해 아주대학교를 인수했다. 이후 의대 설립을 인가받고 1994년 아주대병원을 개원한 것이다. 한진그룹 또한 비영리법인 정석인하학원을 통해 1996년 인하대병원을 세웠다.


두 경우 모두 기업이 공익재단이나 학교법인을 설립해 병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직접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두산그룹의 중앙대병원 인수 과정은 이번 롯데-보바스병원의 경우와 유사하다.


두산그룹은 2008년 경영난에 처해있던 학교법인 중앙대학교에 발전기금 1200억원을 출연해 이사회를 휘어잡았다. 이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있었지만 교육부는 이를 허가했고 두산그룹은 중앙대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주체가 됐다.


롯데의 경우처럼 법원이 개입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사회 구성권을 통해 병원을 운영하게 됐다는 점이 같다.


여러 시민단체는 롯데의 보바스병원 인수를 반대하고 있다. 공익성을 띤 비영리재단이 기업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사회 구성 권한을 사고파는 편법”이라며 비난했다.


롯데가 법원 인가와 성남시 허가까지 얻어 보바스병원을 품에 안을 경우, 한국야쿠르트 등 대기업의 병원산업 진출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비영리의료법인은 전국적으로 100개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은 의료산업 진출을 노리는 대기업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보바스병원 사태의 해결방향이 대기업의 병원사업 진출을 넘어 영리병원 허용으로 가는 신호탄이 될 지는 지켜봐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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