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화 청사진 '장밋빛 or 회색빛'
새 정부 창조경제·일자리 창출 핵심분야, 박근혜 대통령도 지속 강조
2014.04.14 12:10 댓글쓰기

[기획 1]박근혜 정부가 의료산업화 정책에 무섭게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병원수출 규제 개선을 예고했으며, 8월엔 메디컬코리아 벨트를 구축하고, 글로벌 헬스케어 전문펀드 조성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등을 허용하는 움직임에 나서면서 박근혜표 의료산업화 정책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의료산업은 제조업과 서비스를 아울러 종합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전면적인 규제 완화로 내수와 수출을 모두 장려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의료산업을 ‘창조경제 핵심’으로 규정하는 등 관계부처에 규제 완화를 잇달아 주문했다. 박 대통령 발언 이후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경제부처까지 의료산업을 주창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의료산업화 첫 걸음은 규제 완화다. 의료 관련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 분야까지 산업화를 추진하려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 계획이 이와 무관치 않다. 이를 두고 이해집단과 야당, 시민사회단체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국회 논의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의료산업화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동력산업일까. 아니면 보건의료 복지시스템에 역행하는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할까. 의료산업화 정책이 궤도에 오르는 올해 찬반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편집자주>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들어 작정한 듯 의료산업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보건의료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철폐하는 내용의 ‘경제혁신 3주년 계획’을 대국민 담화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담화문의 핵심은 민관합동 TF를 통해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인허가에서 실제 투자가 이르는 전 과정을 챙기겠다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의료산업화의 종착지인 투자개방형 의료기관 규제 완화까지 언급했다.


그는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를 합리화할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격의료도 활성화 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의료산업화의 종착점으로 인식돼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의료산업화에 필요한 모든 규제를 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같은 달 19일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자법인 설립이 환자 편의와 의료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란 게 골자다.


반면 자법인이 건강보험 체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소모적인 논쟁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서비스를 전문화해 질을 개선하면 환자 편의가 좋아지고, 의료서비스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2월 11일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원격의료 추진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IT(정보통신)가 발달한 한국에서 원격의료를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의료는 다른 나라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고 시장성이 넓다”며 “우리보다 앞서 시행한 나라에서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있었다면 활성화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원격의료 추진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의료산업화를 강조한 박 대통령 발언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의료산업화를 관계부처에 강하게 주문했다. 올해 1월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5대 서비스산업은 보건의료와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이다.


박 대통령은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를 거론하면서 “올해 투자 관련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겠다”고 했다. 이어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을 업종별로 관련부처 합동 TF를 만들고, 이미 발표한 정부대책을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선 “일자리는 서비스산업에서 생기며,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거듭 주문했다.


해외진출 전략을 한 차원 높이고 창조경제를 뿌리내려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관계부처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 10월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선 “보건복지부는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원격의료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관련부처가 고민해야 한다는 지시 성격이었다.

 

원격의료·자법인 설립 해법 ▶ ‘규제 완화’


현 정부에서 원격의료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작년 4월 기획재정부가 박 대통령에게 ‘201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한 자리였다. 당시 기재부는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IT 융합과 서비스 R&D 촉진, 의료서비스 규제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박 대통령이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산업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관련부처가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현 정부 의료산업화 정책의 핵심은 원격의료다. 원격의료는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이해관계자인 의사단체의 반발이 가장 심하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도 박 대통령 의지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원격의료 추진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원격의료를 도입하려면 의료서비스 제공 형태에 변화가 불가피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제조업·통신 등의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원격의료 추진을 거듭 표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내 IT 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관련 산업의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또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은 업계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 본격화했다. 의료법인이 외부로부터 투자받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상당한 규제완화 성격을 가진다. 다만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한 다른 법인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부문도 작용했다.  


원격의료는 의료법 등 법 개정을, 자법인 설립은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복지부 입장이다.


정부는 의료관광 활성화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메디텔 허용 방침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해외환자 유치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있다. 의료관광객이 연평균 37%의 급성장을 보이는 데다 해외환자가 늘수록 한국산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지난해 7월 17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열고 관련 내용을 담은 ‘관광 불편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및 전략 관광산업 육성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전국 10개 지역에 의료와 관광자원을 활용한 의료관광 클러스터를 조성해 지역에서도 해외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최근 제주한라병원이 설립한 메디컬리조트 WE호텔 개원식에 복지부 실장급 인사가 주말인데도 이례적으로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다.


의료산업을 구체화할 정부의 해법은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영찬 복지부 차관은 지난 1월 10일 서울 청사에서 '보건의료 투자활성화대책 실행계획 수립을 위한 관계부처 TF' 첫 회의를 개최했다.

 

TF는 복지부 차관을 단장으로 기재부와 미래부, 산업부, 고용부, 문화부, 식약처 등 7개 부처 실장급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TF는 이날 1차 회의에서 해외환자 유치 등 의료수출 분야 과제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세부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 외국인환자 이용 병상수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또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주요 위원회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보건의료 분야 주요 규제를 완화하는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이하 직능발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의 운영 형태를 바꾸는 작업이다.


의료산업정책 평가 엇갈려


박근혜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은 극명히 대비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정책을 지켜보는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평가는 우려와 지지의 목소리로 나뉜다.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전문가 그룹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낙제점을 줬다. 정책 방향이 의료서비스가 아닌 제약과 의료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영리 자회사가 영리병원인 것을 전제로 정부 정책이 고용 창출이나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 교수는 “영리기관은 비영리기관보다 인력과 인건비 감축에 적극적이어서 일자리 창출과 거리가 멀다”며 “자법인 허용으로 투자 총량을 늘리기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제약이나 의료기기 분야는 투자할 가치가 있으며, 관심을 둬야 할 곳은 수출이 가능한 제조업”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 정책을 핸드폰 진료, 사무장병원 활성화 정책으로 규정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정부 정책은 결국 핸드폰이나 이메일 진료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자법인 설립도 결국 사무장병원을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반면 의료산업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현 보건산업진흥원장)는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 등을 통해 “주요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의료산업을 미래 동력으로 인식하고 준비한다”며 “우리나라도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의 산업적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며 “이를 잘 설명하고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은규 동서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의료산업은 융복합적인 성격을 가져 바람직하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관계된 연구에도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졌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 교수는 “결국 의료산업화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확실한 비전과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 그룹이 정책을 세부적으로 챙기면서 추진할 수 있는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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