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별환산지수계약(수가협상)은 각 공급자 단체들의 1년 살림이 결정되는 중요한 축이 되기 때문에 매년 5월31일은 보건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다.
특히 2019년 수가협상은 문재인 케어를 기반으로 적정수가에 대한 합의가 있었고 그 기대감이 무척이 컸다.
6월1일 최종적 수치가 드러나자 적정수가에 보장은 사실상 무의미한 얘기였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2019년 수가협상에서 파이 자체를 크게 키울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밴딩 폭 규모 인상이 있었고 유형별 인상률도 비슷했다.
지난 2년간 전 유형 타결이라는 성과와 달리 이번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적 의견에도 국민건강권을 담보로 적정수가를 받아야 하겠다는 이들의 뒷모습은 처연했다.
문제는 5월 중순부터 약 2주간 수가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적정수가 개념 자체가 틀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는 시점부터 적정수가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화두가 됐고 어느 순간 보건의료체계를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그 의미가 강해졌다.
수가체계는 수가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환산지수’와 각 행위별로 점수가 매겨진 ‘상대가치점수’의 합산으로 정해기 때문에 환산지수 인상률이 올라가 적정수가가 확보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합의가 있을 것이라고 공급자들은 믿었다.
정부, 환산지수 연계 불가론 피력
하지만 복지부 정경실 보험정책과장은 수가협상이 한창인 지난 5월23일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환산지수는 환산지수일 뿐 적정수가와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가협상은 통상적으로 진행하고 적정수가는 비급여의 급여화 손실액을 따져 그때, 그때 보상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기조는 수가협상 밴딩 폭을 결정짓는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재정소위를 마친 정 과장은 “환산지수가 적정수가를 담보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 연결지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건보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한 경영방침 설명회에서도 적정수가는 원가를 기반으로 균등하게 마진율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환산지수보다는 상대가치를 조정해 원가 및 수익을 균등하게 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시간 지나면서 적정수가 보장여부 불안감 증폭
이처럼 정부의 적정수가 방향성이 환산지수에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지만 공급자들은 그래도 수가체계의 한 축인 환산지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급자들은 전년 대비 2배 기준의 인상률을 원했지만 결론은 예년과 평이한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전년 대비 추가소요재정은 늘었지만 결렬된 의협, 치협 등은 감안하면 성과는 오히려 역행했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2019년 수가협상 추가소요재정은 9758억원으로 정해졌고 이를 근거로 전체 유형 평균인상률을 2.37%로 결정됐다.
대한병원협회는 2.1%, 대한한의사협회는 3%, 대한약사회는 3.1%, 대한조산협회는 3.7%의 인상률을 받아 들었다.
추가소요재정의 40% 규모를 차지하는 병협의 경우는 2018년 1.7%에서 0.4%가 올랐고, 한의협은 2.9%에서 0.1% 오른 셈이다. 약사회는 0.2% 상승한 수치다.
결렬을 선언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운 공급자들은 환산지수 계약에 도장을 찍었지만, 일부 페널티가 예고되면서도 결렬한 의협과 치협의 행보는 적정수가의 기대감이 좌절로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공급자단체 적정수가 기대감→좌절→분노
적정수가에 대한 기대감은 좌절로 변했고, 또 분노로 확산될 전망이다. 애초 문재인케어 반대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였던 의협은 이번 수가협상 결렬을 기점으로 더욱 거세게 불만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의협은 “국민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수가협상에 성실히 임했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도저히 수용 불가한 굴욕적 수치를 던져놓고 철벽치기에 바빴다”고 지적했다.
수가협상 당시 방상혁 수가협상단장은 기자들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수가인상의 정당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큰 분노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20조원이 넘는 사상 유례 없는 건보재정 누적 흑자에도 불구하고, 쓰러져 가는 병의원의 경영 상황은 도외시한 채 협상시작 때부터 문재인케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납득조차 되지 않는 인상률 수치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의협 불만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문재인케어 발표 당시 대통령은 분명히 “적정수가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고 복지부 장관, 공단 이사장도 수가 보상에 대해 낙관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최저임금은 16.4% 인상이 적정하다고 하면서, 건강보험수가는 2.7% 인상이 적정한지. 그것이 대통령이 약속한 ‘적정수가 보장’인지 대답해달라. 기만적 정책, 문 케어는 독(毒)이 든 사과다. 문 케어에 의사는 없다”고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결국 공급자의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수가협상에서 적정수가가 배제된 상태로 논의됐고, 밴딩 폭 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공급자의 상황은 큰 불만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자 차원의 수가인상률 제시안이 나와야 보다 세밀한 논의가 됐을텐데, 최종일이 돼서야 그 수치를 공개하고 일방적으로 공급자 제안만 주로 들었던 논의과정은 시대에 역행하는 전략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