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내년부터 제약사의 대표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구속 등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17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법무법인 김앤장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쟁점과 실무'에 관한 웹세미나를 개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재해예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도입된다.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는데, 제약사들의 경우 통상 중대시민재해 범주에 포함된다.
GMP 규정을 준수하고 있어 생산공정에서 근로자 사망 등의 산업재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등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를 뜻한다.
쉽게 말해 제조, 관리상의 문제로 의약품 복용 환자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제약사의 경영책임자가 형사 처벌을 받고, 회사는 벌금을 부과받는다.
백기봉 김앤장 변호사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기존에는 하청업체 대표나 원청의 안전관리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원청 대표이사 등이 주된 피의자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29개사 중 171개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87%의 회원사가 유예기간 없이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법안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경영책임자'의 범위다. 법안에 '경영책임자 등'이라고 명시돼 있어 해석이 모호하다. 그러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경영자나 오너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조서경 변호사는 "경영책임자 범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너나 대표이사가 우선 대상"이라며 "이에 일부 기업들은 법 시행에 따른 형사적 리스크를 배분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 대표를 선임하거나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오너의 실형이나 구속 시 생기는 경영 공백을 방지하려고 한다"며 "뿐만 아니라 C레벨(CFO, CSO 등) 임원의 지위를 격상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어, 예상치 못한 승진을 하는 임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사 대표가 중대재해로 인한 형사처벌을 피하려면 어떤 의무들을 이행해야 할까. 우선, 재해 예방에 필요한 조직을 구축하고 전담 인력을 뽑고 업무를 배분하며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본인 회사뿐만 아니라 도급, 용역, 위탁 등을 맡긴 경우에도 의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 법인 등이 해당 시설 및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
조 변호사는 "사업의 전체적인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하기 위해 이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 같은 관리, 점검 의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재해가 발생하면 형사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리스크는 상당하다.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회사의 대표는 사망자 발생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사망자 미발생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또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위 규정에 따른 형을 선고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 재발 시 형의 1/2이 가중된다.
불법을 저지른 행위자와 소속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도 적용된다. 사망자 발생 시 50억 이하의 벌금, 사망자 미발생 시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법인에 부과된다. 단, 법인이 주의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제외된다.
손해배상 책임도 부여된다. 회사 대표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한 경우 법인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그 손해액의 5배 이하의 범위에서 징벌적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조서경 변호사는 "약사법, 의료기기법, 식품위생법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 관계 법령 중 하나"라며 "특히 약사법상 의약품은 제조물에 해당해, 경영책임자는 유해·위험요인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고 중대시민재해 발생 우려가 있거나 발생한 경우 보고, 신고 및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사상 사고 발생 시 중대시민재해 인정이 될 수 있고, 임상시험 중 발생한 피해도 중대시민재해로 볼 수 있다"며 "허가사항과 다른 의약품의 제조·판매, GMP 위반, 비의도 불순물 이슈 등도 중대시민재해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중대시민재해 원인 조사에 따른 개선조치 등의 구체적 예방조치의무를 추가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며 "즉, 제약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떤 관계법령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의무사항을 확인, 점검,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