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82년 역사를 지닌 서울백병원이 폐원한다는 소식으로 병원 직원과 환자, 행정당국과 지역주민들에게 충격이 전해진 가운데 오늘(20일) 오후 인제대학교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그 운명이 결정된다.
폐원 소식을 접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를 비롯해 인제대 교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백병원지부 등 구성원들은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리고 우선적으로 이사회 안건 철회, 추후 대응에 본격 나섰다.
공대위는 이사회 전날인 19일 서울백병원 앞에 모여 직원 393명의 비통한 심정을 대변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인 조영규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날 오후, 학교법인 이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 인사를 만나기 위해 불참했지만 서면으로 입장을 전했다.
조 교수는 약 1년 전, 가정의학과 외래, 검진 예진·상담,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 지방간 클리닉 등 9개 세션에서 진료하며 전공의와 동료 교수들이 떠난 자리를 메웠다.
이처럼 "무엇에 쫓기듯이 진료"하고 요즘은 신경안정제를 챙겨먹으면서까지 진료하고 있다는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서울백병원이다.
조 교수는 "서울백병원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함께 일한 동료와 우리를 믿고 찾아와 몸을 맡긴 환자들이다"며 "폐원 소식에도 환자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직원들이 불안과 분노를 속으로만 삼켰을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후 고민 없이 환자 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도 "싸우지 않으면 패배한 것이다. 직원과 환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공동대책위원회 측은 ▲학교법인이 폐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말의 소통이 없었다는 점 ▲소식이 알려진 뒤 외부에 공개한 명분인 '경영악화' 근거, 자문 결과 등 구체적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특히 문제삼고 있다.
외래 중심 전환 및 리모델링으로 활로 모색 끝 폐원 결정···직원들 당혹
실제 서울백병원은 지난 20년 동안 1745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지만 2016년 경영정상화 TFT를 꾸려 타개를 시도했다. 그러는 동안 병원 외래공간 등의 리모델링 공사는 무려 7년 동안 지속됐다.
병상을 350개에서 지난 2017년 276병상, 2019년 233병상, 2021년 199병상을 거쳐 지난해 122병상까지 줄이고 외래 진료 중심으로 전환했다. 야간 응급수술 비중도 줄였다.
뿐만 아니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전공의 수련을 포기하고 인턴 수련병원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시도가 이어지던 중 이번 폐원 추진은 너무나 갑작스럽다는 게 공대위 입장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경영컨설팅 전문업체 엘리오앤컴페니로부터 "해당 입지에서 더이상 의료관련 사업은 모두 추진이 불가하고, 의료기관 폐업 후 타용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근거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노조는 폐원 소식 전까지 이 자료를 열람할 수도 없었다는 전언이다.
특히 지난해 교육부의 '사립대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 개정으로 교육용 자산이었던 부지를 상업용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자, 곧바로 폐원이 추진됐다는 점도 직원들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현재 서울백병원 부지 가치는 약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보건의료노조 김동민 서울백병원 지부장은 "백병원 경영정상화 TFT 측과 경영 정상화 방안, 폐원 추진 명분 등을 전혀 공유받을 수 없었다"며 "만약 폐원된다고 해도 직원들 거취가 문제인데, 외부에 고용승계한다는 얘기만 하고 구체적인 협의도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서울 중구 유일 대학병원이 단지 적자라는 이유로 대책 없이 졸속적으로 폐원하면 서울 도심 의료공백이 커진다"면서 "학교법인, 백중앙의료원, 서울백병원, 공대위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