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수첩] '탈모'라는 키워드가 화두다.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공약이 큰 파장을 불러왔다.
국민 여론과 각 대선후보 캠프 모두에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인지 이후 임플란트와 연속혈당측정기, 가다실 등 다양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잇따라 등장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특정 질환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겠다는 공약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어떤 분야에 급여를 적용하는 게 정당한지, 먼저 고려해야 하는 더 중요한 질환들이 많은지를 논의하는 것은 이미 소모적인 상황이 돼 버렸다.
예를 들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제의 급여화를 바라고, 희귀질환자들은 고가 치료비 부담을 덜고 싶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임플란트 급여 확대가 간절할지도 모른다.
최근 고가 치료제 관련 포럼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각 질환에 분배하는 것에 실무자들도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사실 앞서 말한 질환들은 이미 조금씩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병적인 탈모의 경우 이미 급여가 가능하다. 임플란트는 보장 대상이 조금씩 확대돼 현재 만 65세 이상, 특정 소재에 대해 급여를 적용한다. 연속혈당측정시스템 또한 센서와 송신기에 급여가 적용돼 있다.
대선후보들 역시 급여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주장만 놓고 보면 마치 같은 질환으로 진단받은 모든 환자들의 치료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것처럼 보이고, 그에 따라 재정이 마구잡이로 소모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 제도는 의외로 진입장벽이 상당하다. 일부 국가에서 급여권 진입 후 재평가를 통해 보험료를 조절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견고하지 않은 재평가 제도 대신 급여권 진입 자체가 어렵다.
현재 뜨거운 감자인 당뇨, 치아 질환,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접종 등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급여 확대’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기나긴 절차가 요구된다.
일례로 임플란트 급여 확대의 경우, 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치과계에서도 이미 수 년 전부터 급여 확대를 가정할 시 대상 환자, 급여 적용 치료재료, 수가 범위 등을 정부에 어떻게 제안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 중이지만 워낙 사례가 다양하다 보니 이렇다할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시 매년 770억 가량이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연간 탈모 치료제 시장 규모인 1100억원에서 추산한 금액이다. 소위 '1000만 탈모인'이라는 탈모 환자 규모를 고려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들어갈 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탈모 치료제가 급여화 됐을 때 소요되는 예산은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모든 환자에 조건없는 급여화'라는 조항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질병적 탈모 이외 질환이더라도 증상 정도나 약 복용 횟수 등 다양한 제한 조건이 적용 가능하다. 오히려 현재 이 공약을 지지하는 환자들이 실망할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결국 최근 남발되고 있는 건보 적용 확대 공약들은 해당 질환자들을 '희망고문'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성질환이라고 해서 급여 논의가 뒤로 밀려야 하는 당위성은 없다. 다만 이들 공약이 실현됐을 때 환자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
이 같은 이유에서 '급여 확대'키워드가 남발되는 것은 더욱 우려된다. 소위 가벼운 질환으로 여겨져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한 번 더 실망하게 만들고, 질환 한 가지의 급여화를 두고도 치열한 논의를 전개하는 의료계 관계자들을 '힘 빠지게' 만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