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2월 의대정원 확대 정책 발표 여파로 간호사들의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면서 경영난에 휩싸인 수련병원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다.
정부는 진료지원(PA) 간호사를 1만3000여명에서 2만명까지 늘려 의료현장에 배치하고 전문의와 PA간호사 중심 상급종합병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병원들은 이미 채용한 간호사 인력도 발령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정사태 안갯속…무한정 대기 ‘웨이팅게일’ 올해 6376명
기존에도 신규 간호사들은 합격한 병원에 입사하기 위해 약 1년 씩 기다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을 일컫는 ‘웨이팅게일’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난 지 오래다. 기다린다는 뜻의 ‘웨이팅(Waiting)’과 간호사 대명사 ‘나이팅게일’을 합친 말이다.
그러나 금년에는 이 웨이팅게일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야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에 신규 채용된 간호사 10명 중 7명이 발령이 연기됐으며,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은 내년 모집 계획마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간호협회(간협)가 금년 8월 20일 서울 중구 소재 간협 서울연수원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실태가 드러났다.
간협 조사에 따르면 올해 신규로 채용된 간호사는 총 8390명이지만, 미발령된 대기자는 6376명(76%)에 달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올해 졸업한 간호사를 채용한 곳은 1곳에 그쳤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상급종합병원에 채용됐지만 지금까지 발령이 무기한 연기된 신규 간호사가 76%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대형병원들이 내년 신규 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없어 예비 간호사들이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 채용 계획을 가진 병원도 4분의 1이었다. 상급종합병원 41곳 중 “의정사태가 안정되면 채용하겠다”고 답한 곳은 10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31곳은 “올해는 채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올해 3월 말과 올해 6월 말을 비교해도 간호사 수가 줄었는데 이는 이례적인 경우라는 설명이다.
간협에 따르면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수는 해당 기간 내 7만2994명에서 7만2800명으로 194명 줄었다.
간협 관계자는 “3~6월은 간호사 수가 늘어나는 시기인데 올해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며 “병원들이 신규 채용·교육비를 아끼고 기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某국립대병원, 간호사 채용 중단 ‘497명’…기존 간호사도 강제 무급휴가 등 고용 불안
채용이 중단된 간호사 규모는 단일기관에서 많게는 약 500명에도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사 중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금년 4월부터 5월까지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5월 기준 비상경영을 선포한 곳은 총 52곳이었다.
신규 간호사 채용 중단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은 영남 소재 A국립대병원이었는데, 이곳은 497명의 채용을 중단했다.
이어 ▲경기 소재 B사립대병원 268명 ▲충청 소재 C사립대병원 250명 ▲영남 소재 D사립대병원 150명 등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채용돼 일 해야 할 신규간호사들은 언제 채용될지 모른 채 대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에 근무하던 간호사들도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무급휴가·무급휴직, 연차·휴가 사용 등을 강요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무급휴가, 근무시간 단축 등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임금삭감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경우 계약만료와 동시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 기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신규 간호사들이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금년 7월 ‘싱가포르 의료인 채용 설명회’에는 의사 200여명 뿐 아니라 간호사 100여명도 참석해 눈을 빛냈다.
한편, 앞서 가을 쯤 대형병원들이 간호사 채용을 재개할 가능성이 점쳐진 바 있는 가운데 최근 대형병원 일부가 간호사들을 현장에 배치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최근 순차적으로 지난해 모집했던 간호사들을 발령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