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관심 급증…조사·판결 환자중심 추세
사법부 '직접 손댄다', 경찰도 전담 수사팀 신설
2015.04.07 18:24 댓글쓰기

[기획 3]

故 신해철 씨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아지며 제도적 한계에 대한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실제 각 계에서도 그 필요성을 인식, 의료사고 관련 각종 제도를 환자 중심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간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가 주장했던 사안들이 사회적 지지를 받아 무대 중앙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우선, 서울지방경찰청은 올해 3월 늘어나고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광역수사대에 의료사고 전담 수사팀(이하 의료수사팀)을 신설했다. 이 팀은 수사관 7명, 검시조사관 1명 등 8명으로 구성됐다.


일선 경찰서에서 의료과실 관련 사건을 접수하면 이를 의료수사팀에 보고, 의료수사팀은 상해 정도나 사회적 이목 집중 여부 등 사안의 경중을 따져 직접 수사 여부를 결정한다.


사망이나 뇌사 등 피해가 중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경우 수사팀이 현장에 급파돼 부검과 증거확보 등 초동수사를 함께하며 직접 수사한다.


법원도 의료사고 대응성을 높이기 위한 체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 시작 전 증거 수집을 위해 법원에 증인신문·검증·감정·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민사소송 등에서 일반 국민들이 의료기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충분한 증거나 자료가 없어 절차상 불평등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다.


만약 의료기관 등이 문서제출 명령을 거부하면 재판부는 원고 측 주장이 진실하다고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사실상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의료기관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내놓은 ‘사실심(1·2심) 충실화 마스터플랜’ 중 일부로, 대법원은 올해 초 ‘사실심 충실화 방안 연구 위원회’를 구성·운영하며 도입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예방적 수단 ‘환자안전법’


국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공동발의한’환자안전법(환자안전및의료질향상에관한법률안 제정법)’을 지난해 12월 통과시켰다. ‘환자안전’을 제명으로 한 법률안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환자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다.


환자안전법은 ‘종현이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故 정종현 군은 지난 2010년 5월 29일 백혈병 투병중인 당시 아홉 살로 정맥에 맞아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 주사를 척수강에 잘못 맞아 사망하며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이 일었고, 입법에 큰 몫을 했다며 그를 기리고자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환자안전 사고의 보고·분석 및 의료기관으로의 보고시스템 구축 ▲처벌 조항 삭제 및 자율보고 체계 확보가 핵심이다.

우선, 환자안전 사고의 보고·분석, 보고시스템이 구축된다. 의료인 등 보고 주체는 자율적으로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한다. 보고 주체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데, 의료인으로 한정하지 않아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게도 그 권한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문기관은 위해사건을 분석, 그 결과를 보건의료기관에 통보하는 보고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또 환자안전 사고를 발생시킨 사람이 그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자율보고를 한 경우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 따른 처분을 감경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처벌 조항은 전면 삭제했다. 기존 오제세·신경림 의원이 낸 법안에는 환자안전관리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처벌 조항이 있었다. 논의 과정에서 이를 삭제했는데, 이는 의료계의 수용성을 높이고 법 제정에 무게를 둔 결과다.


다만,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환자단체연합회는 국회 통과 하루만인 지난해 12월 30일 성명을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할 당시 의료계의 반대로 환자안전법의 각종 벌칙 조항이 삭제돼 제재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환자안전법을 소위에서 통과시킬 당시 “그간 보건의료 관련법은 공급자 중심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요자 중심인 ‘환자안전법’을 제정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고, 환자안전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평했다.

 

사후적 절차 녹인 ‘신해철법’

환자안전법이 통과되자 모든 시선이 오 의원의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으로 쏠렸다. 신해철법은 신청인 한쪽의 조정신청만으로도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된다.

 

현재 의료분쟁조정법 27조 8항은 조정신청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거나, 14일 간 응답하지 않으면 중재를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절차가 개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신 씨 사망 이후 관련법 개정 필요성이 있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됐지만, 정작 심의를 담당하는 복지위는 이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법안을 심의대에 올리지 않았다.


심의를 진행할 만큼 논의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실제 의료계와 환자단체 측 모두 해당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우선, 신해철법에 담겨있는 자동조정 개시는 의료계에서 강경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다. 조정신청이 남발될 수 있고, 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측면 때문이다.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도 반기지 않는다. 시민단체에서는 ‘원용금지’ 조항과 현직 검사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개정안은 ‘조정 절차에서의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인 진술이나 생성된 감정서 또는 상대방이 제출한 자료는 민사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재가 결렬돼 소송을 진행할 경우 중재 과정에서 생성된 이해관계인의 진술, 감정서, 상대방이 제출한 자료 등을 법원에서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환자에게 중재원의 중재안 수용을 사실상 강제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판단이다.


또 ‘검사로 재직하고 있거나 10년 이상 재직했던 사람 1명’을 감정위원으로 둘 수 있도록 했다. 현직 검사 한 명을 필수적으로 두도록 한 측면에서 그 참여 범위를 넓힌 것이다.


시민단체는 현직 검사가 감정위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조사, 과실 및 인과관계 규명 등에 있어 보다 실효성 있고 핵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해당사자 양측의 문제제기에 국회는 논의 자체가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다. 실제 심의 법안을 협의해 심사대에 올리는 여야 간사 모두 이러한 뜻을 내비쳤다.


새누리당 이명수 법안소위장 겸 여당 간사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조정신청을 수용하지 않으면 중재가 개시되지 않는 현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본다. 조정률이 너무 낮다”며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그는 “무분별한 중재 신청을 방지할 수 있도록 일정 기준 이상의 의료분쟁에 대해서만 자동개시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등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야당 간사도 “이해관계자 간 의견이 엇갈리고 의원 간 의견 차이도 있다. 환자는 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 의사는 전문가로서 환자에게 제공할 서비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부작용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환자와 의료계에 공을 넘겼다.

 

선진국, 의료사고 줄이는 예방시스템 구축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들은 의료사고를 두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일찍이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과 정책을 마련해왔다.


2006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는 5개의 국가가 5년 동안 5개의 환자 안전문제 발생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이 파이브스(High 5s)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현재 참여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트리니닷 토바고, 미국 등이다.
프로젝트 하에 환자 안전을 위한 표준화된 운영 프로토콜(SOP)이 구축됐다. ‘종합적인 영향 평가 전략 구축’, ‘데이터 수집 및 보고 분석’, ‘전자 협력학습 공동체 설립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무려 1975년부터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인 ‘조정소’와 ‘감정위원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현재 각 지역 9개 조정소와 감정위원회가 설치돼있다. 독일에서 발생하는 의료과오사건 약 4분의 1이 이곳에서 다뤄지는데, 조정 성립율이 90%에 달한다.


높은 조정 성립율의 비결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데이터’와 ‘의료과오 보고시스템’이다. 독일은 의료과오사건 데이터들을 파악해왔으며, 독일 연방 통계 조사가 해당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후 시대 흐름에 맞춰 시스템도 변화했다. 2003년 독일의 모든 감정위원회와 조정소들이 전자 통계 설문지를 이용해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지표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컴퓨터 정보처리방법인 의료과오보고시스템(MERS)을 통해 관련 데이터들을 통일적으로 파악해왔으며 이는 다시 연방 통계로 집계된다.


통계를 바탕으로 ‘어떤 질병 또는 어떤 치료법에서 의료과오가 예상되는지’, ‘어떤 진료과목에서 의료과오가 잘 발생하는지’ 등 다양한 정보가 제공된다.

 

병원도 의료과오 체계적인 관리

 

독일 오펜바흐 소재 3차병원 ‘사나 클리니쿰 오펜바흐(Sana Kinikum offenbbach)’ 성형외과 전문의 류승민 박사는 “독일의 새로운 통계시스템은 의료과오 원인을 분석해 이에 대한 재교육, 의료의 질 관리에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근접오류 보고 시스템(CIRS)’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뻔한 ‘근접 오류’에 대한 보고체계로 2014년부터 독일 병원들에게 의무화됐다.


사나(Sana)병원은 2010년부터 이를 도입했다. 시스템에 사건이 접수되면 자동적으로 의료사고 예방 부서에 통보된다. 보고자는 익명처리 된다.


병원 내 의사, 간호사, 의료 질 향상 팀장 등 각 분야 인원으로 구성된 ‘의료 질 향상 팀’이 이를 관리하고 있다. 팀은 일주일에 한 번 긴급성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리스크 범위가 크거나 재발 확률이 높을 경우 임원진에게 보고하고, 오류를 분석해 책임자에게 알린다.


책임자의 피드백이 오면 사건이 종결되고, 이는 다시 CIRS에 게시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들은 독일 모든 병원 내 네트워크를 통해 또 다시 취합되고, 매달 대표 사례들이 소개된다.


독일병원들은 WHO의 하이파이브스 프로젝트 안건 중 하나였던 ‘환자안전 체크리스트(Surgical Safety Checklist)’도 지역 실정을 맞게 바꿔 사용하고 있다.

외과의사, 마취과 간호사, 마취과 의사, 수술 간호사가 환자 동의서 여부부터 수술 절차 준비에 관한 세부 내용을 체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실제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8개국의 수술 관련 데이터 7688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 수술 환자 사망률이 시행 전 11%에서 시행 후 7%로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류 박사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어떤 부분이 더 필요한지 한 눈에 볼 수 있다”면서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의료과오를 줄이려면, 관련 데이터들을 모으고 분석해 그 결과에 대한 충분한 피드백과 이를 기반으로 병원 내 교육 및 예방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허지윤·민정혜·오준엽 기자 (webmaster@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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