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인년 '뜨거운 감자' 그 사건 후(後)
2010.12.30 21:45 댓글쓰기
격동적인 2010년이었다. 금년 의료계에는 냉온이 교차하며 희비가 엇갈렸던 사건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태풍의 눈을 비껴간 듯 고요하지만 정작 관계자들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범사회적인 논란으로까지 확장, 2010년을 뜨겁게 담금질했던 굵직한 사안들 가운데 ▲불법 인공임신중절 논란 ▲병리수가 인하 사태 ▲GE 진단의료기기 한방 병ㆍ의원 납품 파장 등 적잖은 진동을 일으켰던 사건들의 뒷 행적을 데일리메디가 쫓아가 보았다.

▶불법낙태 논란 시끌… 결국 실태조사
2009년 말부터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서 시작된 낙태 근절 운동이 2010년 초 급기야는 의사 간 고소·고발로 비화, 사회적으로 ‘불법 인공임신중절’ 문제가 촉발됐다.

산부인과 개원 의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불법낙태 병원에 대한 법적 고발을 진행하면서 이후 산부인과 관련 단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의 움직임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낙태 문제의 당사자격인 의사와 여성 그리고 병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일시적으로 낙태 가능한 병원이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급기야 원정낙태를 주선하는 브로커 영업까지 성행했다. 실제로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는 중국 연길 등지로의 원정 수술을 소개하는 글과 브로커들이 나타났다.

가는 방법, 병원 명 및 의료진 이름, 임신 주수별 수술비용과 환전 팁까지 상세한 원정 수술 길을 알려주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중국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진료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 산부인과의 경우 일요일에도 사전 예약 시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비 및 수수료, 입원비, 병실사용료, 식대비 포함해 60만원(항공료 제외)이다” 등 공공연하게 퍼진 원정 수술 정보로 인해 낙태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전문병원을 비롯해 산부인과 개원가에 인공임신중절 중단이라는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팽배해짐에 따라 한국 여성들은 그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다. “서울 쪽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려 달라”는 글 밑으로 “원정낙태를 도와주겠다”는 브로커들의 댓글이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불법 낙태 병원 선상에 올라 법적 고소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산부인과 개원가는 극도로 민감한 모습이다. 특히 정부가 발표한 종합계획 가운데 의료계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 대목은 ‘실태조사’ 실시 여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한참 논란이 될 당시부터 개원가에서도 보다 강화된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때보단 많이 차분해진 분위기지만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고 분위기를 대변했다.

실태조사의 경우 실질적인 낙태 건수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의문점은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박노준 회장은 “현재 개원가에서 추정하기로는 낙태가 많이 줄었다고 파악한다”면서도 “실태조사가 시작되면 해당 병ㆍ의원에 대한 불이익 등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낙태 시술 가격 인상을 비롯한 여러 부작용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실제로 11월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계약,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종합계획을 발표한 후 실태조사를 위해 하반기에 예산마련을 했다. 연구용역 사업 기관을 선정해 2011년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낙태 문제가 사회적으로 촉발된 지 1년 정도가 됐다. 정부의 예방 대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상황이어서 한 돌 정도가 훌쩍 지나야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면서 “생명을 존중하고 예방을 위한 기본 정책 방향은 확고하다. 예산 편성을 비롯해 앞으로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병리검사 수가 인하 충격, 그 이상의 발전으로 도약”
의료계에서 금년 한해 누구보다도 고단한 여름을 보낸 곳은 다름 아닌 대한병리학회다.

병리 수가 인하가 전격 발표되면서 전공의, 개원의, 대학교수 등 병리학회 전 회원들의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 중심에서 살짝 빗겨선 현재, 향후 학회의 행보가 가장 궁금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병리학회는 “당시 상황과 달라진 것은 전혀 없으며 앞으로를 예의주시할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의료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12월 1일 마감한 2011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도 수가 파동으로 인한 여파는 계속됐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만이 가까스로 정원을 채웠으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고려대병원, 건국대병원, 단국대병원, 한양대병원 등 대부분의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미달 사태는 이어졌다.

이처럼 전공의 수급까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병리학회 서정욱 이사장은 “현재 의료행위 분류 연구 작업과 더불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병리과를 위해 어떠한 부분이 개선돼야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개선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음을 전했다.

수가 충격을 감내하면서 ‘책임의식’ 역시 학회 내에 더욱 도드라졌다. 이번 의료행위 분류 작업만 해도 과거에는 지원자들에게 그 몫이 돌아가곤 했지만 이번 연구팀은 각 지회 및 연구회 대표들이 차출돼 16명의 팀을 구성, 책임의식을 높였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병리과 수가 개선을 위한 근거를 쌓아 장기적인 전략을 꾸려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위탁연구 사업은 기관 내부의 정책적 검증을 통해 병리 수가 문제가 전체 의료 개선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그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청주 등 학회 지회들을 직접 방문하는 등 현실적인 상황 파악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는 “연말 학회에서 미국을 방문, 미국병리학회와 미국한인병리학회와의 협력을 통해 현지상황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는 한편 제도적인 개선 여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가 충격이라는 큰 소용돌이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민감한 개원가 문제 등 남은 과제가 훨씬 많다.

한 개원의사는 “일반적으로 경쟁은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지만 병리 개원의들의 경쟁은 현실에서 검체수거대행료만 상승시킬 뿐”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외부 병리검사 수탁 기관을 통해 진단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심사의 투명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학회에서는 지난 7월 수탁검사기관에 대해 인증 보류 철퇴를 가하는 등 질 관리에 나섰다.

서 이사장은 “개원가와 병리검사 수탁기관 간에 투명성이 보다 확보돼야 할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병리검사 질이 떨어져 오진율로 인한 부작용을 비롯해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실망의 늪을 막 빠져나오려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수가 인하의 충격이 보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비전 선포와 타임캡슐 제작을 통해 학회가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체질 개선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GE 진단의료기기 한방 병·의원 보급 파문
2009년 1월 한의사를 상대로 초음파기기 광고 전면 철회를 선언했던 GE헬스케어코리아가 2010년 3월까지 한방 병ㆍ의원에 초음파기기를 납품한 사실을 지난 6월 말 인정함에 따라 의료계는 또다시 들끓었다.
GE 측에서 공식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한의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1월 2일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의약육성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의료계에서는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각 지역의사회를 통해 GE 사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자체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한의계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여전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소재 산부인과 개원의사는 “GE 사태가 논란이 된 후 사실상 바뀐 것은 없다. 현대 의료까지 침범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인식에 대부분 변함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GE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로 개원가는 이번 기회를 통해 문제의 종식을 원하는 모습이다.

의협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조정훈 위원은 “GE 논란 직후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격앙돼 있는 상태다. 현대과학에 대한 부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진단기기 사용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는 관련 내용으로 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이 부실하다고 판단, 감사원에 복지부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한방 병·의원에 도입된 현대진단의료기기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 그 결과 상당수에서 초음파 외에 다양한 현대의료기기를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단속 등 후속조치가 없다는 주장이다.

조정훈 위원은 “복지부에 질의를 요청했으나 세 차례 미뤄지다가 결국 ‘죄송하다. 답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검토해보고 추가 답변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심평원에서 조사까지 했지만 단속권한이 있는 기관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열변했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하기 보단 한의학계에서 검증받은 한방 진단기기를 사용·개발해야 한다는 근본적 해결책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높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현재 한방진단기기를 개발하는 연구를 활발히 수행 중에 있다”고 전하면서 “체질 진단과 관련한 진단기기를 연구해 정확도 확보 등에 만전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곳에서 개발 중인 기기는 안면진단기, 음성진단기, 피부진단기, 지능형 맥진 로봇 등이며, 이르면 내후년 연구 완료 후 상용화로 연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한의사들이 한방 진단기기에 대한 정확도 등에 만족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만큼 성과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최근 시연하는 자리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의료기기 사용 문제의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한방진단기기 개발 전망을 보다 밝게 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