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의사 3인이 말하는 한국 연수생활
2010.12.31 03:13 댓글쓰기
[기획 4]의료에서도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다. 이미 주요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전문병원 단위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외국인 의사들을 만나기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과거 국제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신분변화가 있었듯, 다른 나라의 의료를 발전시키는 데 우리가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과거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지로 선진 학문과 고급 술기를 배우러 떠나던 때와 비슷하다.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한국에 머물다 돌아간다. 명의로 소문난 의사들의 술기를 잠시나마 배워 가는가 하면, 아예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고선 하는 말은 모두 한결같다.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보고 배워간다”. 이들을 감동시켰던 것들은 무엇일까. 데일리메디가 외국인 의사 3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료의 매력을 살펴봤다. 앞으로도 “한국으로”를 외치는 외국인 의사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하면서….

먼저 자신들 소개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앨빈 엥 킴 호크(Alvin Eng Kim Hock, 이하 앨빈)) : 싱가폴 공립병원(Singapore General Hospital)에서 외과 전문의로 근무 중인 앨빈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7월 한국에 들어왔고, 현재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6개월 과정으로 연수 중입니다.
●앨리스 SC 고(Alice SC Goh, 이하 앨리스) : 제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세르당병원(Serdang Hospital)에 근무 중인 안과의로, 한국에는 지난 5월 1년 과정으로 들어왔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 안과에서 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나가모토 야스츠구(永元康嗣, 이하 야스츠구) :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쿠루미 대학병원에서 부정맥을 전공하고 있는 야스츠구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꽤 된 편이예요. 작년 5월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으로 연수받으러 왔으니 벌써 1년이 훨씬 지났네요. 2년 과정으로 온 만큼 앞으로 좀 더 배우고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다들 머나 먼 타국 땅으로 연수를 떠나기로 한 데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그동안 연수지로서 각광 받아왔던 곳 대신, 한국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앨빈 : 싱가폴 병원에선 외과 구분이 여기처럼 세분화돼 있지 않습니다. 굳이 제 전문분야를 말하자면 소화기외과 정도가 되겠네요. 연수를 받기로 한 것은 위암 때문이에요. 위암에 대해 관심과 전문성을 높이고 싶은데 싱가포르에선 워낙 환자가 적어 경험을 쌓기 힘들었거든요. 사실 원래 미국을 가려고 했다가 한국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죠. 미국에선 잘해야 일주일에 1~2개 정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라면 매주 10건 이상 경험할 수 있거든요. 위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김형오 교수와 국제학회에서 쌓은 친분도 한국을 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앨리스 : 말레이시아에서는 3년 과정의 펠로우십 과정 가운데 2년은 말레이시아, 1년은 해외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한국을 택한 이유요? 글쎄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할까요. 연수지로 한국을 선택하기 전에 한 번은 학회 겸 여행 삼아 한국에 온 적이 있었어요. 다들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찰나 한 국제포럼에서 삼성서울병원 김윤덕 교수님을 뵀어요. 안성형 분야에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좋은 인상에 김 교수님과의 인연을 더해 한국행 티켓을 끊었죠.
●야스츠구 : 일본에선 해외로 연수를 떠나는 의사들이 많지는 않은 편이예요. 특히 저처럼 장기 연수를 떠나는 의사들은 더욱 드물죠. 저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에요. 부정맥 분야에서 아시아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 고대안암병원 김영훈 교수님과 저희 교수님의 친분이 두터웠죠. 덕분에 병원에서 큰 결심을 해 주셔서 2년 과정의 장기 연수를 받으러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한국에서의 연수생활은 어떤가요?

●앨빈 : 현재는 병원 인근에 숙소를 마련해 따로 지내고 있습니다. 생활환경이 달라 불편한 점이 있을 순 있지만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신경 쓸 새도 없네요. 연수과정이 상당히 빡빡한 편이죠. 매주 월요일은 하루종일 수술이 있는 날이어서 참관합니다. 위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케이스에서 고급 술기들을 볼 수 있죠. 화요일은 주로 외래를 돕니다. 금요일에는 컨퍼런스에 참가합니다. 병원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여서 무척 기다려지는 날들 중 하루 입니다.
●앨리스 :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요. 워커홀릭이라고 할까요?(웃음) 김윤덕 교수님의 진료나 수술 등을 참관하면서 안성형의 새로운 술기를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죠. 나머지 개인적인 시간들도 주로 병원에서 보내는 편이에요. 병원 ID카드면 식당에서 밥을 해결할 수 있고, 헬스장에서도 운동도 할 수 있으니까요. 또 인터넷으로 새로운 논문을 검색하거나 고향 친구들과도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죠. 아, 말레이시아의 저희 병원으로 연수활동을 정리해 보내는 일도 중요한 일과랍니다.
●야스츠구 : 연수 생활 자체는 일본과 많이 다르지 않은 편이에요. 더군다나 이 곳에서 워낙 오래 있다 보니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 동료들과도 생활이 별 차이 없네요. 매일매일 시간에 쫓기듯 살고 있죠. 하하. 하루 종일 의국에서 생활하면서 교수님 회진을 따라다니는가 하면, 시술 장면을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일들이 이미 일상생활처럼 돼버렸습니다.

한국 연수의 장점은 뭐라고 보시나요?

●앨빈 : 위암을 배우러 온 관점에서 보면 정말 많은 케이스들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1600병상 정도 되지만 연간 위암수술 건수는 150례 정도죠. 분당서울대병원은 절반인 800병상 정도지만 건수는 500~600례로 4배 가까이 되고요. 특히 다양한 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위암의 조기 발견과 치료로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한국이 위암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죠. 위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케이스를 여러 술기를 통해 접근해 볼 수도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앨리스 : 음, 우선 잘 발달된 시스템을 꼽고 싶네요. 여기 와서 가장 놀랐던 일 중 하나가 각종 환자 데이터나 논문들을 한 눈에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정리돼 있다는 점이거든요. 교수님 회진을 따라다니기 전에 미리 환자들에 대해 과거 병력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해야 좋을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논문을 쓸 때에도 환자들에 대한 데이터 분류가 간편하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새로운 시도가 많다는 점도 배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마나이프를 예로 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주로 신경외과에서 쓰는 장비라고 여기는데 한국은 안과에서도 감마나이프를 활용한 시술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야스츠구 :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형성돼 있다고 할까요. 바쁜 일상이야 일본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바로 교수님들의 열정이었어요. 여기 교수님들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처럼 외국에서 온 의사도 예외는 아니죠. 더군다나 일본과 달리 한 가지 분야에서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도 잘 잡혀있습니다. 일본에선 전문과에 대한 선택 없이 수련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여기는 의사가 된 이후 곧바로 자기에 대한 진로를 결정하더군요. 진작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를 잡고 출발하는 셈이죠.

단점도 많이 보셨을 텐데요

●앨빈 :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제 동료들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한국에서 인턴을 비롯해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밟고 있는 의사들은 사생활이란 게 없습니다. 언제나 병원에서 살고 있죠. 병원에 달라붙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일주일에 120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1~2주에 한 번 정도씩 집으로 돌아가는 일들을 많이 봤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볼까요. 미국에선 주당 60시간 이상 일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실수가 의사에게는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법이거든요.
●앨리스 : 아무래도 언어 문제가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까요?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다들 이렇게 묻더군요. ‘앨리스, 한국을 가려는 이유가 뭐야? 거기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잖아’ 김윤덕 교수님께 배우기 위해 간다는 데는 모두 동의를 하면서도 연수지로서 한국에 대해선 걱정스런 시선이 많았죠. 물론 병원 안에서 의료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지만 환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불편함이 있는 게 사실이죠. 더군다나 연수기간동안 한국에서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면허를 따려고 했는데 죄다 한국어여서 포기하고 말았어요.
●야스츠구 : 저는 시스템적인 부분을 말하고 싶어요. 외국인인 제 눈에도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환자들이 몰리는 일은 매우 심각해 보였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일부 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이처럼 다른 지역으로 멀리 이동해 진료를 받으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의료자원이 이렇게 몰리게 되면 다른 지역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에서조차 환자들을 정상진료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료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조언 부탁

●앨빈 : 한국은 세계적 명의가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습니다.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을 만큼 인구도 충분하고, 또 의사들이 각각 세부 전공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를 잘 살린다면 앞으로 세계 의학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물론 저처럼 한국에서 연수를 받았던 사람이 고국으로 돌아가 주위 의사들에게도 한국을 연수지로서 적극 추천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앨리스 : 일단 한국이란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게 더욱 중요할 것 같아요. 단적인 예로 삼성서울병원만 해도 그렇죠. 말레이시아에서도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모두들 잘 알고 있습니다. 안과의사에겐 김윤덕 교수님도 물론 유명하신 분이고요. 하지만 삼성이란 브랜드와 김윤덕 교수님의 명성을 삼성서울병원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여기 와 있는 동안 중국이나 캐나다 학회에서 발표할 때 삼성 로고가 들어간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명함을 돌린 적이 있어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해서죠. 한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의사들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야스츠구 : 일본에서 한국을 간다고 할 때 다들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이 한국보다 적어도 5년 정도는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렵게 찾아 온 연수기회인데,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한국에서 배운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아시아에서 부정맥이라면 둘째가 서러울 분한테 배우는 거니 다른 데 갈 필요가 있나요? 세계화를 추진하려는 한국도 이러한 맥락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영훈 교수와 같은 국제적인 스타교수를 보다 많이 배출하는 일이 중요한 거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 의사들의 시선도 달라질 겁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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