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고수 부상 한국, 중국에 밥상 내주나
2011.01.03 21:30 댓글쓰기
1885년 조선 고종 때 미국인 알렌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학 의료기관이 세워진 이래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와 명민함으로 100여 년 만에 세계 정상급 수준의 명의들이 탄생했다. 이를 전수받고자 찾아오는 외국의사들도 늘고 있다.

특히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사들이 한국 의학연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의학 역시 놀라운 기세로 뒤 따라오고 있다. 특히 한류열풍에 힘입어 미용성형을 배우려는 의사가 급증, 한국행 미용성형 연수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신성장 동력 중 하나인 의료산업의 대표격이 의료관광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사들이 떼를 지어 한국 연수행을 택하고 있어 한국 의술이 새나가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급부상한 만큼 한국 의술도 언제 따라잡힐지 모를 일이다. 한국 의술의 자리를 고수하려면 중국을 경계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 의술은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위치에 이르렀다. 때문에 한국 의술을 배우고자 해외의 상당수 의사들이 한국을 찾고 있는 추세이며 그에 따라 해외환자도 늘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유럽이나 아메리카대륙 보다는 동남아권 의료진이 주로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실제 2008년 가톨릭대학교 중앙의료원으로 연수를 온 해외 의료진은 모두 39명이다. 이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이집트인이 1명, 몽골인도 1명, 나머지 37명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2009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 33명의 해외연수자 중 콩고, 인도, 몽골, 미국, 러시아, 독일, 베트남 등 소수를 제외하면 무려 20명 이상이 중국인이다.

아주대학교병원의 경우도 2007~2010년 현재까지 총 22명의 의료진이 다녀갔는데 이중 중국인이 5명, 인도 3명, 방글라데시 2명, 베트남이 12명으로 전원이 동남아권 의료진이다.

원자력병원 상황도 매 한가지. 베트남 35명, 몽골 2명, 이집트 1명, 중국 2명, 일본 2명, 인도네시아 2명, 말에이시아 2명, 필리핀 2명, 파키스탄이 2명으로 이집트 의료진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아시아권이다.

기하급수 늘어난 중국 의료진 ‘떼 지은 연수’
한 두 명이 아니다. 한 번에 30명씩 떼를 지은 중국인들의 수술시연 참관이 이어지고 있으며, 학회 등록 인원은 몇 백 명이 넘어서고 있다. 지난 봄 대한성형외과학회 학술대회에는 무려 200명이 넘는 중국 의료진이 참여했다. 때문에 학회 곳곳에서는 중국어 특유의 시끄러운 상황들이 연출됐으며 학회 대회장이 마치 명동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학회에 몰려든 중국 의료진을 보면서 김 원장(48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국 학회에 중국 의사들이 대거 등록했다. 떼로 몰려다니는 저들에게 앞으로 내 밥상을 내줄 것만 같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금은 한국의 술기와 의료 시설, 환자 대응법 등 한국의료를 하나하나 배우기 위해 찾고 있지만, 그들에게 수술경험이 쌓이면 한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오던 중국 환자들까지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대한성형외과학회 이택종 회장은 “과거 우리가 그랬듯 선진국의 의료기술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가까운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와 세계 각 국에서 한국 의료기술을 배우러 온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료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택종 회장은 “의료기술 유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서 “중국 쪽으로 산업기술이 넘어가듯 의료기술 또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에서 배워가는 의술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 의료진이 상당수가 된다”면서 “중국은 한국보다 의료 개방에 있어 더 빠른 속도를 보여 자칫 한국의 의료개방이 늦어질 경우 중국에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특화된 질환의 의료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실력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다”고 이 회장은 설파했다.

한류 열풍 속 감춰진 함정
소녀시대, 카라 등 걸 그룹의 동남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신(新)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때문에 ‘걸 그룹 따라 하기’ ‘걸 그룹 닮아 가기’ 등이 유행하면서 한국행 성형수술이 줄을 잇고 있다.

덩달아 그들 국가의 의사들도 한국 성형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행을 택하고 있으며,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대학병원의 연수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의료연수는 단기 프로그램의 개원가 교육이다.

실제 금년 봄부터 시작해 본격적으로 해외 의사들의 미용성형술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원진성형외과는 중국 의료진이 가장 선호하는 개원가 교육기관이다.

강남일대 성형외과들은 미용성형기술 부문 및 시장 규모면에서 두각을 나타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원진성형외과에서 단기 프로그램 교육을 받은 해외 의사는 지금까지 대략 400여 명이 넘는다. 지금도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며, 올해(2010년) 4분기까지 약 500여 명의 의사가 참관할 예정이다.

원진성형외과 박원진 원장은 “해외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방문했던 수많은 의료진들은 높은 수준의 성형술기에 감탄하고, 시설과 규모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박 원장은 “중국 의료진의 경우 우리병원과 중국 국제미용협회 및 중국 주재병원들이 논의해 일정을 잡고 그 일정에 따라 30여 명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주요 일정은 병원소개와 원내 시설, 수술 장비 등에 대한 안내와 환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 및 고객관리 시스템을 소개한 후 의료시술 참관이 이뤄진다.

박 원장은 “의료시술 참관의 경우 시술받는 환자의 동의를 구한 후 진행하고 있으며 참관이 종료된 이후 중국 의료진의 한국 의료진에 대한 질의 시간으로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참관으로 인해 한국의 의술이나 노하우가 해외로 빠져나가진 않을 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박원진 원장은 “이렇게 단기 간 진행되는 연수프로그램으로 한국의술이 해외로 유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성형 의료기술이나 노하우가 한 두 차례의 참관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면서 “현재의 발전된 한국 의료서비스는 오랜 시간 국내 의료진들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성장해 온 것이고, 그 격차는 보여 지는 것 이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의술의 유출은 비단 이런 단기 프로그램에 의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의료의 각박한 현실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는 의사들로 인해 유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다수 속 소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지만 중국으로 진출한 의료진은 중국인들 틈바구니에서 경쟁하려면 더 많은 술기를 보여주고 전수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 원장의 생각이다. 때문에 박원진 원장은 수술 참관에 있어 일정 거리를 두고 진행한다. 수술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에만 제한적으로 오픈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의사에 노하우 전수해야 진정한 고수”
어찌됐던 해외 의료진의 연수가 급증한다는 것은 한국 의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만큼 국제적 위상도 올라가고 경제효과도 엄청나다.

하지만 그게 다 일까? 한국 의술을 배우려는 외국인 의사의 수가 늘수록 한국 의술이 더 이상의 노하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간에 특히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중국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연수를 받으러 오는 수련생들이 모두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권이라는 것이다.

한국 의술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이지만 선진국 의료진은 한국을 찾지 않는다. 이것도 한국 의료가 풀어야할 또 하나의 과제다.

8개 산하병원을 거느리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경우, 미국인 의료진은 최근 3년 간 단 한명 뿐이었다. 그것도 장기 연수가 아닌 3개월짜리 단기다.

이와 관련, 한 대학병원의 교수는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제한적인 국적을 넘어 수련생의 다양성이 갖춰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의술이 적용되는 환자의 신체적 특징 때문에 가까운 동남아인들이 주를 이룰 수도 있지만 한국 의료의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할 때”라고 피력했다.

대한성형외과학회 이택종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도 한국으로 연수를 오고 있는 수가 늘고 있다”면서 “선진국 의대생을 비롯해 전임의와 전공의 등이 한국을 찾아 한국 의술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택종 회장은 “간이식이나 위암 등의 종양분야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앞서 나간다고 평가해도 될 것”이라면서 “미용성형 등 미국보다 앞선 의술을 가진 분야에는 한국연수를 희망하는 의료진이 줄을 잇고 있다. 해외연수자 다국화는 한국 의술의 실력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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