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건강보험정책 숨 막히는 의료계
2011.01.17 21:44 댓글쓰기
[기획 상]2011년 새해가 밝아왔지만 아직도 의료계는 신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1차의료 활성화 방안에 목을 매고 있지만 여전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건강보험이 통합된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저수가-저급여-저부담’ 원칙에 매몰돼 있는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정부 정책 흐름이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해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섣부른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이에 데일리메디가 지난 10년간의 정책 변화 흐름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해 봤다.[편집자주]

건보재정 위기, 10년 전부터 예고

건강보험재정의 위기, 이젠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됐다. 건보재정의 위기는 곧 정책의 대대적인 수정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위기와 일맥상통한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재정은 약 1조 3000억원의 당기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406배나 적자폭이 늘었다.

이러한 건보재정의 위기는 고스란히 의료계의 부담으로 전가되기 일쑤다. 가장 흔히 거론되는 사례인 10년 전 의약분업 시행 이후의 과정을 보면 명확해 진다.

의약분업 초기인 2001년의 경우 총 진료비 17조 8200억원 가운데 약제비는 23.5%인 4조 1800억원이었다. 하지만 2009년 집계된 자료에서는 약제비가 무려 11조 6500억원으로 커졌다.

총 진료비 규모가 39조 400억원으로 2배 가량 늘어난 사이 약제비는 3배 가까이나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약국관리료, 조제기술료, 복약지도료, 조제료, 의약품관리료 등 5가지 항목의 조제수가가 한꺼번에 더해지면서 발생한 기현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만성질환의 장기투약 시 약품비보다 기술료가 높은 경우도 있었다. 2000년 당시 의료기관의 진료비(11조 7216억원)의 불과 10% 수준이었던 약국의 진료비(1조 1906억원)는 2009년 기준 7조 8314억원에 달할 정도로 고공 성장을 해왔다.

이에 대해 연세대 이규식 규수는 지난해 말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 “획일적으로 강행한 의약분업은 약의 오남용 예방과 이를 통한 보험재정 절감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반대로 보험재정을 악화시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이러한 약제비 증가에 따른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했을까. 바로 의료계다.

단적인 사례가 바로 원외처방약제비를 의료기관으로부터 직접 환수하겠다는 움직이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개개인별로 의학적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고 과잉처방에 대한 근거도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건보재정 안정화를 핑계로 한 환수조치는 의약분업 이후 계속됐다.

특히 서울대병원이 공단으로부터 지난 2001년 6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진료한 일부 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에 대해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해 처방했다는 이유로 삭감당한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촉발된 이 문제는 여러 병의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소송 총액만 341억 2000여만원에 달한다.

의학적 근거를 따지기에 앞서 보험재정 안정화에 몰두한 결과 처방에 따른 이득을 취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방권자라는 이유만으로 의료기관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2010년도 수가계약 당시 부대조건 중 하나였던 약제비 절감만 놓고 보더라도 이러한 책임전가 양상은 확연히 드러난다.

당시 의원급과 병원급의 내년도 수가인상률을 각각 3.0%, 1.4%로 확정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약제비 4000억원을 절감키로 합의했다.

전년도에 비해 수가인상폭은 소폭 늘었지만 그에 따른 결과로 의사들의 양심적 규범에 맡겨야 할 진료권을 침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약제비 절감정책에 실패한 의료계는 2011년도 수가협상에서 발목이 잡혀 의원급 2.0%, 병원급 1.0% 인상,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굴욕적 수가를 또 한 번 감내해야 했다.

악순환 키운 선심성 보장성 확대

앞서의 사례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간을 새로 썼던 의약분업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면서 빚어낸 왜곡된 결과라면 이를 부추긴 건 무분별한 보장성 확대다.

건보재정이 악화일로를 걷는 데 이유로 연평균 보험료 수입 11% 정도 늘어나는 데 반해 진료비가 13%씩이나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6년 식대 급여화와 같은 선심성 보장정책이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식대 급여화가 이뤄지면서 2006년 한해에만 2086억원의 급여비가 추가로 지출됐다. 급여확대 당시 재정추계를 살펴보면 무려 5000억원의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한 전국 국공립병원의 식대만 하더라도 2009년 기준 건강보험에서 지출된 식대 총액은 9942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보장성 확대 정책은 의료계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한 쪽의 파이를 키우긴 위해선 다른 한 쪽의 파이를 줄일 수밖에 없어 의료계는 저수가에 매몰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보장성을 강화시키면서 의료계에 폐단을 불러온 사례가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자연분만 시 본인부담금을 아예 면제한 경우다.

환자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됐지만 건보공단의 통제에 따라 비현실적인 분만수가가 고착됐다.

이 때문에 의료사고 등 의료분쟁의 위험이 높고 진료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턱 없이 낮은 분만수가를 피하기 위해 전국의 분만장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실제로 대한산부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산부인과의 분만실은 2001년 1570개에서 2008년 935개로 7년 사이 635개(40%)가 줄었다. 비용을 강조한 결과 국민의 편익을 침해한 셈이다.

대한의사협회가 “큰 틀에서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무리한 보장성 강화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래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은 올 들어서도 또 한 번 ‘보장성 확대’를 약속했다. 정 이사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적정한 보장성 실현은 공단의 숭고한 사명”이라며 “보장성 확대정책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건보공단이 건보재정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수백억 원대의 성과급 돈 잔치를 벌인 데 이어, 공단 임직원들의 해외출장 예산이 지난 2007년 2억 8700만원에서 2009년 7억 9500만원으로 2.8배 증가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은 기억은 온데간데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장성 강화항목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미비하고 정부 주도의 우선순위 선정에 따라 사회적 수용가능성이 미약한 데 따른 문제”라며 “양적 보장성 강화에 치중하다 보니 요양급여 비용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켜 건보재정의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땜질식 처방만으론 답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보험재정기반 확충 등과 같은 실질적 대안을 마련해도 모자를 판에 조삼모사격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

지난해 7월 의료계를 한 차례 휩쓸었던 병리과 전공의들의 대규모 파업사태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병리과의 경우 상대가치점수 재분류를 통한 조정으로 평균 15.6%에 달하는 수가가 인하됐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지난 2008년 병리조직검사 수가 재분류(5개→13개) 및 적출범위 산정 기준 개선 당시 일정기간(1년) 동안 청구현황을 모니터링해 자연증가 수준 이상으로 재정소요가 증가한 경우 수가를 재조정하기로 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였다.

하지만 병리과의 수가인하는 사실 수가가 인상됐던 산부인과의 수가를 보전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산부인과는 지난해 7월 50%의 수가인상을 약속받고 한 차례 25% 수가가 인상된 데이어 올해 7월에도 다시 한 번 25%가 늘어날 예정이다.

당시 병리과 의사들이 “산부인과가 위기라서 살리자는 데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병리과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냐”면서 성토하자 산부인과 의사들 역시 “상대적으로 다른 과가 인하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고개를 가로 젓는 모습은 곳곳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사회보장성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 의료보험 정책상 당연히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내부의 분란만 조장시키며 이전투구로 바꿔버린 셈이다.

의협이 “건전한 건강보험 재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가입자나 공급자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 건강권 확보와 저수가로 인한 의료 공급자들의 상실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한 현안 문제들에 대해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높였던 목소리가 메아리로 되돌아오지 않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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