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건강보험정책 대안은 없나
2011.01.18 21:34 댓글쓰기
[기획 하]2011년 새해가 밝아왔지만 아직도 의료계는 신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1차의료 활성화 방안에 목을 매고 있지만 여전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건강보험이 통합된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저수가-저급여-저부담’ 원칙에 매몰돼 있는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정부 정책 흐름이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해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섣부른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이에 데일리메디가 지난 10년간의 정책 변화 흐름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해 봤다.[편집자주]

하석상대(下石上臺), 동족방뇨(凍足放尿). 정부 의료정책을 바라보는 의료계 시각은 차갑기만 하다.

의약분업,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정부가 국민의 권익을 신장시킨다며 추진한 정책들은 목적달성 실패라는 의문부호가 달리면서 의료계의 반감을 키웠고 더불어 건강보험 재정 위기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책실패에 따른 건보재정 위기의 책임은 지금까지 의료계에 전가돼 요양기관에 지급돼야 할 진료비들이 다양한 형태로 삭감됐으며 건강보험 재정안정 해법으로 제시된 대책들 또한 그 핵심에 의료계의 손해감수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보험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대부분이 급여비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정돼 있다”면서 “결국 행위 자체를 막거나 수가를 삭감하는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영호 위원장은 CT, MRI를 예로 들며 “보장성을 확대한다고 하더니 행위 자체가 늘어나자 가격을 인하를 예고했다”면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의료계에 떠넘기는 식이며 이런 부분에서 의료계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과의 수가를 인하해 타과의 수가보전에 사용하고 대책 없이 보장성을 강화를 추진한 뒤 문제가 생기면 또 수가를 인하하는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정부가 공급자와 합의를 진행하는 방식에 변화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안을 제시하고 합의가 안되면 그 책임은 의료계에 있다는 식”이라면서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합의의 틀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정부의 역할 강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박윤형 소장은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악화의 원인을 급여비 증가율에서만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윤형 소장은 “정부의 건강보험 관련 정책을 보면 재정파탄의 주원인을 분석하지 못하고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세계 유일의 단일보험체제에서 정부가 갖는 권한은 크지만 그 책임은 최소한으로 지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봉책만을 제시하고 있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적 재분배에 대한 새로운 프리즘을 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은 공급자는 물론 가입자들에게도 외면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편협한 사안에 매몰된 각개격파 식 처방이 아니라 재정확충, 수가, 일차의료 활성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시각만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복지부 “정부 추진 정책들 충분히 합의 가능한 수준”

그러나 정부가 바라보는 시각은 의료계의 시각과는 조금 다르다. 건강보험 수입 증가 폭 보다 지출 증가 폭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 일부 손해 감수는 불가피 하며 이를 일방적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박민수 과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현실을 외면하고 목적달성에만 목표를 둔 정책은 없다”면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공급자, 보험자, 가입자 간 충분히 합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총액계약제 등 의료계와 학계에서 합의 불가능한 고육책이라고 주장하는 정책은 정부가 현실적으로 당장 추진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정책들이며 일방적으로 추진할 이유도 없다는 설명이다.

박민수 과장은 “산업이 고도성장을 해도 산업계에 파이가 모두 균등히 돌아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료계 일부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를 마치 정부가 희생양으로 의료계를 지목하고 있다는 시각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도 건강보험 가입자의 보험료가 5.9% 올랐고 상급종합병원 본인부담률이 올라가는 등 가입자들의 부담도 확대됐다”면서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일방의 손해만을 강요해서는 달성될 수 없으므로 의료공급자들이 이런 부분에도 주목해줬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박 과장은 또 “일방 손해로 현재 건강보험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이는 정부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된 건보재정 운영이 모든 정책의 기본이 되므로 정부가 재정 확충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과 관련해 박민수 과장은 “2011년으로 만료되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에 대해 기재부와 다각도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 과장은 “현행 국고지원 틀로는 건보재정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정부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조만간 현실적인 대안 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학계 "재정확충ㆍ대타협 외 마땅한 대응책 없어"

정부가 이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위기국면을 타개할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어서 의료계는 더 암울하기만 하다. 학계 역시 제도개혁 수준의 대타협 말고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계는 건강보험 재정위기와 관련해 촉발된 일련의 사안들은 근본적으로 건보재정 확충만이 확실한 답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확충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정책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 윤석준 교수는 “현행과 같은 건강보험 시스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볼륨을 키우는 방법 밖에는 대안이 없다”면서 “결국 보험료 인상, 국고보조 확대, 급여비 지출 절감 등의 수단 밖에는 없는데 이 부분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이상이 교수도 “재정에 대한 확충 없이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공급자를 대상으로 한 흥정ㆍ협상 방식과 정책으로는 이제 그 어떤 목적도 달성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는 지난해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합의될 수 없는 제도개혁으로 21세기 건강보험을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제도의 존속에 초점을 둔 대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고려대 윤석준 교수도 “정부는 공급자가 반발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합의를 강요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대 이상이 교수는 다만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책 추진과정에서 수반되는 손해가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되지만 감내할 정도라면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서로가 인정해 줄 때 합의든 개혁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학계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결국 대안은 “현재 가용 가능한 건강보험 틀 내에서 현실적으로 국가가 이끌어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확충 노력과 제도 내 참여자들의 대타협 없이는 더 이상 한국식 건강보험제도 운영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이다.

세부 개별 정책으로 관점을 옮겨보더라도 해결과제만 산적했을 뿐 구체적인 논의의 틀조차 마련돼 있지 못하다. 오히려 정부의 책임 전가로 인해 의료계 내부의 불신만 팽배해 있을 뿐 미래에 대한 대책 마련이 힘든 상황이다.

2011년은 건강보험의 재정위기에 대한 논의가 가장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해다.

기본적으로 건강보험하나로 운동과 최근 무상의료 제안에서 보듯 보장성 강화에 대한 논의가 이미 정치적 이슈로 부상했다.

더불어 건강보험 국고보조가 올해로 끝나 정부의 지원에 관한 부분도 공식 논의돼야하며 약제비 절감, 일차의료 활성화 대책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다뤄져야할 시점이다.

현안에 대한 논의가 진정한 건강보험 지속성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핵심을 찌르는 합의의 틀 마련을 통해 보험자, 공급자, 가입자간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정부가 지금까지 보였던 미봉책 일변도의 자세를 유지한다면 의료계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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