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피는 의사들 '흡연의 늪' 속사정
2010.08.06 22:20 댓글쓰기
병원건물 근처에서 흰 가운을 입고 담뱃재를 터는 모습은 옛일이 됐다. 금연구역인 병원 건물 밖에서도 흡연이 전면 차단되는 추세여서 허공을 떠돌던 연기조차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의료진들은 여전히 독립적인 공간이나 외부에서 공공연하게 흡연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해무익한 담배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금연전도사 격인 의사들이 스스로 담배를 끊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금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왜 의사들은 담배 한 개비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의사들의 ‘흡연의 늪’, 그 무게감은 어느정도 일까.편집자주]

쉼 없이 돌아가는 병원 생활 속에서 잠깐 짬을 내 삼삼오오 모여 담배 피우던 시절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고 있다.

병원 건물이야 당연히 금연구역이지만 병원 외곽이나 부속 건물 등에서 공공연히 흡연을 즐기던 의사들의 설 곳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병원들은 잇따라 공식적으로 ‘담배 없는 클린 병원’을 선포하기 시작, 병원 밖까지 그 감시망을 넓혀가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흡연이 불가하니 병원 밖 출입구 등이 흡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오고 가는 환자 및 보호자, 방문객들에게 간접흡연·담뱃재·악취 등으로 인한 불편함을 야기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료진을 포함한 직원들 스스로가 금연을 실천토록 해 환자에게 금연을 유도할 수 있는 근본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병원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뒤집어 보면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재하지 않고서는 내부 식구를 흡연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다.

환자 접촉 많은 40대미만 의사 흡연율 33.8%

2007년 가정의학회지에 실린 ‘우리나라 의사 흡연율 및 흡연 행태’ 논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팀은 대한의사협회에 등록된 전국 의사들 중 대표할만한 표본을 추출, 1153명에게 흡연 상태 및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 회신을 받아냈다.

분석결과 조사대상자의 흡연율은 29.9%였다. 40대 미만의 흡연율이 33.8%로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의사의 경우 34.9%가, 여성의사는 2.3%가 흡연 중이라고 답했다.

반면 보건복지부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2009년 하반기 흡연 실태를 조사한 결과 흡연율은 남성 43.1%, 여성 3.9%로 집계됐다.

연령, 성별, 직업 분포 등이 달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의 흡연율은 대체적으로 일반 인구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는 얘기다.

연구를 진행한 서홍관 박사는 “의사들의 전체 흡연율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의사 흡연율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라면서 “특히 남자의사들이 여의사에 비해 흡연율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의사집단 중에서도 환자들과의 접촉 기회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40대 미만 또는 남의사의 흡연율이 높은 것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다.

서 박사는 “본인의 건강문제 뿐만 아니라 국민 보건 측면에서도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들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는 의사 집단 내부의 금연교육과 운동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전공의 “수련 과정 스트레스, 담배 한 모금으로 위안”

하지만 병원 밖을 배회하며 담뱃재 털 곳을 찾고 있는 의사들 또한 나름의 이유를 털어놓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2년차 레지던트는 “고등학교 때부터 피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면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매번 하지만 바쁜 생활에 고달플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수련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워낙 크다보니 동기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하는 담배 연기 한 모금이 큰 위안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병원 내·외에서는 흡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담배를 끊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같이 피우는 사람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금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의대생을 비롯해 전공의 시절 금연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흡연기간이 길어질수록 끊을 수 없다는 불문율이 의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흡연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흡연자인 의사들이 처음 흡연을 시작한 연령은 10대인 경우가 60.3%로 가장 많았다. 반면 지금은 금연했으나 과거 흡연을 했던 의사들의 흡연시작 연령은 20대가 67.7%로 가장 많아 일찍 시작할수록 금연이 쉽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교수 “수술 후 긴장 풀릴 때면 담배 생각나”

칠순을 넘긴 한 대학병원 교수는 “50년대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 중간에 10년 동안 끊은 적도 있었지만 한창 때 다른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거리가 많아져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면서 “나이 들수록 끊기 힘드니 의대생이나 전공의 때 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명의로 알려진 이 교수는 “수술을 비롯해 연구하고 병원 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로 쌓이다 보니 찾게 되는 것은 담배였다”고 고백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수술을 해야만 하는 외과 계통 의사의 경우 흡연 의존도가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老)교수는 “그럴 법도 한 것이 정신적으로 긴장 한 상태에서 수술을 집도하고, 끝난 후 긴장이 풀리면 담배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긴장의 연속인 의사 직업 특성 또한 흡연 인구에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어린 후배들에게 금연하라 권한다는 그는 “미국이나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담배 피우는 의사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유럽에는 아직 피우는 의사가 상당수 있지만 그조차도 과거에 비해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하면서 “주변을 봐도 10명에 한 2명쯤”이라며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실을 그려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담배 없는 병원’

애연가인 의사들이 또한 요즘 들어 느끼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은 건강 걱정 뿐만 아니라 피우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금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도 없는 진료실에서 한 번씩 태우기도 했지만 요즘은 절대 불허하며 독립적 공간인 교수연구실에서조차 힘들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려면 병원 밖으로 아예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당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환경 개선이 가장 중요시 되는 덕목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한 뼘의 담배 연기조차 없는 깨끗한 병원이라는 이미지 구축이 환자 유치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강력하게 금연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뿐만 아니라 의료진들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국가적 차원의 금연 운동과 더불어 병원에서도 이미지와 실질적인 환경개선을 위해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방향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흡연 의사 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며 그럴 수밖에 없는 외부 구조 또한 형성됐다. 효과적인 병원 경영과도 맥을 같이하는 ‘병원 금연風’으로 인해 한 흡연 교수의 말처럼 조만간 “담배 피는 의사는 예외로 분류”되는 시대가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의사 손에 들린 담배 한 개비의 무게감이 천근같이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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