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 사무장병원 의사들
2010.10.07 22:00 댓글쓰기
[기획]지난 7월 초 한 성형외과 전문의의 양심선언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던 S씨는 자신이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였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의료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던 사무장병원의 실체가 당사자인 의사에 의해 공개된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홈페이지에 올린 양심선언문을 통해 “병원의 실질적 소유주는 비의료인이었다”며 “그동안 실컷 이용 당하고 지금은 병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취재과정에서 의료전문 변호사를 통해 만난 K씨 역시 치를 떨며 사무장병원의 늪에 빠졌던 과거를 술회했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정년을 맞은 K씨. 퇴임 후 집에만 있기가 무료해 개원을 고려했지만 신경 써야할 일이 많아 접으려던 차에 사무장병원의 제안을 받았다.

70을 바라보는 나이 탓에 일반적인 자리를 찾을 수 없었고 더욱이 봉직의의 3~4배에 달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병원 개설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이 현지조사를 나오더니 얼마 후 복지부로부터 수억 원의 환수금과 그에 따르는 영업정지 또는 환수금의 5배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납부하라는 처분을 받았다. 아울러 9개월 면허정지 처분도 내려졌다. 변호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해 봤지만 답이 없었다.

●●'갈 곳 없는 의사들' 불나방 자처
위 사례에서 보듯 최근 사무장병원에 연계 혹은 고용된 의사들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고 형사처벌까지 당하는 사건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난으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개원의보다 높은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사무장병원으로 진로를 택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그 폐해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성형외과 전문의 취득자는 2008년 59명에서 지난해 65명으로 늘었지만 개원을 한 의사는 2008년 31명에서 지난해 2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물론 이들이 개원 대신 사무장병원을 택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척박해진 의료환경을 감안하면 결코 무리한 추측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사무장병원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어 사무장병원을 택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비의료인에게 의사면허를 대여해 의료기관을 개설토록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뿐만 아니라 면허 대여자가 해당 의료기관에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추가로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의사들이 사무장병원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은 바로 ‘의사수 증가에 따른 과열경쟁’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실제 수 년 전부터 연간 3000명 이상의 의사가 배출되면서 이미 대학병원과 개원가는 포화상태에 달한지 오래다. 과열경쟁에 따른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의료기관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 개원을 하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개원의 꿈을 접고 봉직생활을 고려해 보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물론 영상의학과나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일부 인기 진료과는 예외이지만 다른 진료과는 임금 수준이 예전만 못하다는게 정설이다. 대학에 남는 것은 더더욱 요원한 얘기다. 결국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전문의 초년생들에게 ‘무(無)자본 고(高)임금’으로 손짓하는 사무장병원의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사무장병원을 택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의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의사회 고위 관계자는 “주변 사무장병원 원장은 30~40대의 젊은의사들”이라며 “개원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을 피하고 고소득을 얻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반 중소병원에 취직한 봉직의들이 한 달에 800만원을 받는 반면 사무장병원 의사들은 1000~3000만원을 받는다고 하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업은 함께 처벌은 나홀로
하지만 이들이 사무장병원의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대부분 진료에만 전념할 뿐이고 병원 행정업무나 경영업무는 사무장이 전적으로 담당하는게 일반적인 형태.

때문에 사무장은 병원의 경영 목적을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불법적인 의료광고를 내보내고 심지어는 병원셔틀버스를 이용해 환자들을 유인하며, 자동차 환자의 경우 속칭 나이론 환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브로커를 고용해 불법적인 환자 유치전을 전개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가격을 낮추는 덤핑진료로 환자를 끌어 모은다. 그런데 이 같은 불법적인 경영 행태가 발각될 경우 의료법상 의료광고위반, 환자유인, 형법상 상습사기 등의 형사적 책임과 그에 따른 행정적 책임은 고스란히 의사의 몫으로 남는다. 사무장은 의료인이 아닌 만큼 의료법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로서는 의사면허를 지켜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금전적 해결방법을 찾는다던지 아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사무장병원 의사들의 처참한 말로는 그동안의 행정처분과 법원 판결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9년 의사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가 아닌 이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의사 12명이 처벌을 받았다. 이들 의사는 짧게는 45일에서 길게는 6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발표한 의료기관 부정행위 실태에서도 올 상반기에만 벌써 면허대여 의사 8명이 입건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외법률사무소 최재혁 변호사는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의료법상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무장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법적 책임이 의사에게 있는 만큼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겠지만 보다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한 순간에 떠 안은 빚더미
사무장병원 원장으로 근무하다 적발된 의사는 면허정지 처분 이외에 진료비 환수에다 해당 병원의 채무까지 전부 떠안아야 한다.

실제 서울고등법원은 사무장병원 개설자인 A씨와 한의사 B씨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진료비환수처분 취소소송과 관련, 최근 1심 판결을 번복해 사무장인 A씨에 대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진료비 환수처분 대상은 사무장이 아니라 의료기관 개설자인 한의사라는게 판결의 요지다. 또 지방의 모 사무장병원에서 원장을 지낸 의사 C씨는 진료비 38억원 환수에다 병원 부도대금을 그대로 떠 안으면 25억원의 부채까지 생겼다.

대법원 판례 역시 사무장병원 의사들의 처참한 말로를 예고한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3년 “병원 운영에서 이익이나 취득한 재산,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사 개인에게 귀속되며 의사가 아닌 동업자는 약정이 무효로 돌아간다”고 판시했다. 결국 대출금 반환 채무는 전액 의사 개인의 채무로 봐야 한다는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사무장병원이 도산해 사무장이 도주하면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낸 원장이 채무, 세금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하고 면허정지와 진료비 환수까지 당하기 때문에 결국 다치는 건 의사”라고 말했다.

최근 사무장병원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달함에 따라 당국과 의료단체 등이 나서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기는 하지만 살기 위해 사무장병원으로 뛰어들 예비 불나방 의사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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