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협상 관전포인트 3단계
2010.10.17 12:38 댓글쓰기
[기획 4]올해는 '합의'할 수 있을까. 내년도 수가협상이 목전에 다가온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의약단체 대표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각자 전투태세를 정비하고 있다. 만성적인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내세워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보공단과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며 각오를 다지는 의료계. 최후에 웃는 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번 수가협상은 지난해 수가 결정부대조건으로 제시된 약제비 절감,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으로 떠오른 총액계약제, 실거래가 상한제 도입 등으로 예전보다 변수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에서도 약제비 절감 약속 이행 여부가 병 ·의원의 수가 인상폭을 결정하는 데 결정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편집자주]

1. 약제비 절감 약속은 어떻게

병·의원은 2010년 공단과의 수가협상이 결렬된 후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를 통해 의료수가를 각각 3.0%, 1.4%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환산지수는 병원 64.3원, 의원은 65.3원이다. 당시 건정심 의결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패널티 적용’을 받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부대조건으로 제시된 방안이 약제비 4000억원 절감이란 조건이다. ‘공짜 점심’은 없었던 셈이다.

약제비 절감 기준은 2009년 3~8월 병의원의 약제비 총액인 5조1617억원에서 의원과 병원 비율에 맞춰 4000억원을 배분해 의원 1776억원, 병원 2224억원으로 책정됐다. 절감액을 기준으로 그 이상을 줄인 경우 절감액의 50%를,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미절감액의 50%를 수가 인하에 반영하게 된다. 이에 2011년 수가협상에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의료계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의료계의 약제비 절감 노력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올해 초 대한의사협회는 처방총액인센티브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약제비 절감대책을 마련, 적극 홍보에 나섰다. 이에 더해 다빈도 처방 성분별 전체 약품 목록과 약가 관련 정보를 제공해 비용 대비 효능이 뛰어난 의약품을 알리는 데도 주력했다.

비슷한 시기 대한병원협회는 이성식 보험위원장 및 이사 등 추천위원 17명을 주축으로 병원급 약제비 대책 TF를 구성했다. 약제비 관련 내부자료를 토대로 병원 내 절감 방안을 본격적으로 강구하기 위해서다.

2. 총액계약제 발언·쌍벌제 시행 ‘쇼크’ 확산

의료계의 이 같은 노력은 지난 3월 건보공단 정형근 이사장의 ‘총액계약제 시행’ 발언으로 구심점을 잃었다. 정 이사장은 현 건강보험제도가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초래한다는 점을 들어 유관 단체와의 논의를 거쳐 2012년부터 총액계약제 시행에 돌입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리베이트 쌍벌제가 국회 보건복지위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반발심에 불을 붙였다. 의사협회는 마침내 약제비 절감운동 파기를, 개원가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면서 약제비 절감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악재 속에서도 약제비 절감 약속을 지켜 내년도 수가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현실인 처사임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이다. 수가협상 시즌이 점차 가까워오면서 의사단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3. 주춤했던 절감 약속 막판 속도 낼까

의협 보험위원회와 각과 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는 지난 7월 열린 연석회의와 의약품특별대책위원회에서 약제비 절감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주시의사회 송병주 홍보이사는 “약제비 절감을 위해 회원들끼리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대책을 상의하고 있다”면서 “지난 반모임 때 약품 가짓수를 줄이고, 고가약 처방을 자제하자는 얘기가 나와 이행하고 있다. 많은 회원들이 약제비 절감에 공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의협 정국면 부회장은 “약제비 절감을 위해 그 동안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다만 리베이트 쌍벌제나 총액계약제 등이 부상하면서 의료계가 상당한 혼란에 봉착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상당기간 노력에 주춤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나름대로 애써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절감 노력이 주춤해지면서 원만한 수가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3~4월 약제비 증감 현황을 보면 현재로서는 목표달성이 어려워 보인다. 정부 당국에 의료계 현실을 잘 이해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설마’ 올랐던 수가가 다시 깎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당초 건정심에서 부대조건을 결정할 때 약제비 절감이 되지 않으면 조정률을 마이너스로 하겠다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의원급 수가를 올려주는 방법을 고심해서 정했을 것이고, 의료계는 기대에 부응해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내놨다.

공식적인 집계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약제비 관리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에서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비 관리개발부 박영희 차장은 “의사단체에서 약제비 절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개한 노력들을 주시하고 있다. 변수가 생기면서 불만이 고조된 상황은 의협 등을 통해 전해 들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의사들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기상도 흐림…각 직역단체 동상이몽

수가협상에 참여하는 공급자단체들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전략을 다듬어나가는 중이다. 지난해 조금 더 ‘양보’한 단체나 부대조건을 내세워 패널티를 면한 단체 모두 사정이 나아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의협 정국면 부회장은 “그간 워낙 낮은 수가 체제에서 신음하다 작년에 소폭 오르면서 그나마 안도했다. 의료기관이 겪는 경영상 어려움이나 처참한 수가 수준을 고려한다면 그 이상으로 올라야 하지 않냐”며 “국민들에게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물리치료가 급여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줄었던 한의계도 물러설 수 없다는 태세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물리요법이 급여화되는 이점이 생기면서 수가 조정률은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결정됐다”면서 “올해는 최소 6~7%는 올라야 한의사들도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관계자는 “공동연구 결과 등을 보면 치과계에서의 인상요인이 가장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치과는 급여로는 완전히 손해고, 비급여로 손해를 보전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과다 경쟁에 돌입하면서 예전보다 운영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매년 ‘양보’한 만큼 올해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스스로 정한 원칙 얼마나 지키느냐가 관건"

시민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병·의원 건정심 의결에 ‘패널티 적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칙이 깨졌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입자단체는 약제비 절감과 관련해 의료계가 얼마나 충실히 약속을 지켰는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약제비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성과가 좋지 않으면 보이콧을 전개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쌍벌제가 통과될 때 의료계에서 약제비 절감 운동 파기로 화실을 돌린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에 불과하다”며 “실질적인 절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작년 인상액은 올해 분명히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합의사항에 대한 원칙을 보건복지부가 고수한다면 의사단체가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며 “스스로 정한 원칙을 얼마나 지킬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