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의 비극 '유형별 수가계약'
2010.10.18 22:13 댓글쓰기
[기획 5]유형별 수가계약이 지난 2007년 도입된 이후 공급자인 병원과 의원, 한의원, 치과, 약국 등은 각각의 입장과 상황을 배경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도입 4년째인 지금, 당초 의도와 달리 유형별 수가계약은 삐걱대고 있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 하다 보니 결국은 서로간의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수가계약=파이 나눠먹기 싸움’으로 변질돼 버린 까닭이다.

이전투구로 변해버린 유형별 수가계약
지난 2007년 유형별 수가계약이 도입될 당시만 해도 기존의 통합 수가계약 방식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이었다. 이전 제도로는 통상 수가협상이 결렬될 경우 안고가야 할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컸던 데 반해, 유형별 수가계약은 일부에서라도 계약이 체결돼 원활한 수가협상이 진행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수가계약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한 병원계 인사는 “통합 협상으로 수가계약을 진행하다 일이 틀어지면 결과적으로 계약 성사율이 제로가 되버린다. 이는 공급자나 가입자 어느 쪽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유형별 계약의 근본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인식은 개원가도 마찬가지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종율 보험이사는 “각 직역별로 처한 상황이나 원가 등이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분리해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유형별 수가계약의 원뜻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도입 4년 만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단이 매번 협상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5개 직역 중 건강보험재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의원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또 이들 직역에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나머지 3개 직역에서 계약이 체결되면 계약율 60%란 통계의 함정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한정된 자원(건강보험재정)을 가지고 수가협상이 진행되다 보니 겉으로 서로간의 협력과 단결을 외쳐도 각 직역별 눈치 싸움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수가결정을 위한 협상 시한을 앞두고 공단 재정운영소위원회에서 협상 가이드라인을 동결에서 총액 2% 미만에서 인상으로 선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눈치전이 치열했었다. 가뜩이나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 지 고민하던 찰나에 협상시한을 이틀 앞두고 가입자측의 가이드라인이 결정되자 서로간의 이익을 최대한 부합시키는 방향에만 골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특히 매번 협상결렬이 되풀이 되는 의과 즉, 병협과 의협의 경우 이러한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병협과 의협쪽 수가계약 담당자가 “한 번도 공급자끼리 우리 파이를 뺏어간다고 눈 흘겼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우리 것을 신경 쓰기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직역의 문제까지 생각하기 힘들다”면서도 “다만, 협상과정에서 다른 직능은 어느 정도나 제시했을까 정도의 관심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를 지켜봤던 비(非) 의과쪽 공급자단체 한 관계자는 “유형별계약은 공급자간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많이 있다. 어제 오늘 있었던 일도 아니고, 모르는 일도 아니”라며 “드러내놓고 심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급자단체 간 상생의 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각 직역별로 균형 잡힌 수가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상급병원으로 진료비가 집중되는 측면이 크다”면서 “사정이 이쯤 되면 병협에서 먼저 상급병원 증가 억제책이 나와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과쪽 공급자 단체 한 관계자도 “힘을 모아도 모자를 판에 고정된 파이를 나누라고 하니 각 직역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수가계약 방식에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행 수가계약 방식은 나갈 돈을 먼저 계산하고 들어올 돈을 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나는 돈 이 뿐이니 이 것밖에 못 준다’하는 식의 방식은 수가계약이라고도 할 수 없다”면서 “결국 당연히 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라도 하라는 격”이라고 성토했다.

해법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지금 당장으로선 이 같은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건보공단에서는 아예 수가계약 방식을 유형별 계약에서 총액계약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총액이란 또 다른 파이에 매몰돼 각 공급자 단체 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재료비 등의 비중이 서로 다른 의료행위들이 동일한 환산지수 인상률을 적용받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비용구조가 유사한 행위를 묶어 분류한 유형별로 계약을 맺자는 주장도 나왔다. 충북대 강길원 교수는 지난 7월 보건행정학회지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각 유형의 비용 인상률을 객관적으로 산출할 수 있어 환산지수 인상률 결정이 용이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산지수에 대한 연구용역결과가 상이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곱씹어 보면, 앞서와 같이 각 직역간 유형별 수가계약의 폐단을 줄이는 쪽으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각 유형의 계약 담당자를 선정하는 문제에서부터 갈등이 빚어질 수 있고, 도입이 된다하더라도 정부의 추가 재정지원 없이 현재의 빠듯한 건보재정 살림살이에서만 지불구조가 계속되는 한 완전한 해결은 기대하기 힘들다.

때문에 공급자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최소한 수가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일방적으로 공급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관행만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공급자 단체의 공통된 목표인 적정 수가 보장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간의 연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이와 함께 수가 문제에 있어 양대 축을 형성하면서도 계약사항에서 빠져있는 상대가치점수 역시 계약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총점고정제로 묶여있는 현재의 상대가치점수도 가치점수를 기반으로 계약을 통해 유연하게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병협 정영호 보험위원장은 “총점고정제 하에선 이미 행위간 형평성이 깨져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떻게든 수가계약서 환산지수를 높게 받으려는 하는 현상이 직역별로 발생한다”면서 “수가계약이 완전해지려면 상대가치점수도 이상적으로 마련돼야 하는 만큼, 앞으로 새로운 방식의 평가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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