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戌國恥(경술국치) 100년 한국의료 일본 넘봐
2010.03.31 02:53 댓글쓰기
[기획 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역사가 E.H.카가 남긴 이 말은 역사가 지닌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내린 명언으로 흔히 언급된다. 지나온 나날과 지금 이 순간이 교감하는 현장이 역사라면, 2010년이라는 글자가 달력에 선명한 올해, 우리에게는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10년 8월 22일 한반도를 일본 제국에 양도하기로 합의한 한일병합조약.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치욕스런 병탄의 역사가 한세기 지난 시점에서 일본에 견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의료의 위상을 데일리메디가 짚어봤다.[편집자주]

●● 임상 적용 발 빠른 한국

다빈치로 대표되는 로봇수술에서도 한국은 빛나고 있다. 신의료기술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는 일본은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밟으며 다빈치 임상 적용을 미뤄오다 한국이 저만치 앞서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일부 병원이 다빈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임상연구 단계로만 승인을 받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경 임상 적용 국가 공인을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다빈치 로봇수술 기기에서 발견된 일부 결점을 보완, 업그레이드된 수술로봇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지만 다빈치의 견고한 특허벽에 부딪혀 주요한 기능을 포기하는 수모를 맛봤다. 기기와 술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로봇수술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미국에서 개발된 수술로봇 다빈치는 임상면에서 한국이 가장 선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유럽 등지에서 전립선암 환자에 한해 주로 적용했던 로봇수술은 한국에 건너와서 갑상선암, 방광암, 부신종양 치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각 대학병원마다 경쟁적으로 다빈치를 도입해 연일 ○○○례 갱신 등의 뉴스를 쏟아내는 모습은 한국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직장암 로봇수술의 대가로 불리는 김선한 고대안암병원 교수(외과)는 “10여년 전 일본 대장항문학회에 가서 로봇수술을 접했는데, 다빈치보다 우수한 수술로봇을 만들고도 특허에 부딪혀 기능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제품화에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런 과정에서 한국이 임상적용을 이끌고 나가니까 아차 싶은 것 같다”면서 “친한 일본 의사들한테 물어보면 몇몇 분야에 있어서는 미국까지 갈 필요 없이 한국에서 배우면 된다는 얘길 그들끼리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로봇수술”이라고 덧붙였다.

2002년 일본 요코하마 소화대학북부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는 조주영 순천향대병원 교수(소화기내과)는 2006년부터 매년 일본위암학회의 초청을 받고 있다. 조주영 교수팀은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위암학회 학술대회에서 5년 연속 소화기내시경 분야 국제 세션을 주관하는 성과를 거뒀다. 내시경 하드웨어 시장의 99%는 일본이 잡고있지만, 임상 적용에 있어서는 로봇수술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한 수 위라는 분석이다.

조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영미권 국가에 비해 위암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치료술기 등에서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며“곧 진행 예정인 관련 국책사업도 일본보다 먼저 추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역사와 전통 격차가 기초의학 성패 갈라

그러나 해방 이후 부지런히 일본을 추격해온 한국이 유일하게 극심한 격차를 실감하는 분야가 있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튼튼한 집을 짓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기초의학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초의학을 전공한 교수는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미 1874년 메이지유신 이후 독일식 의료제도를 토대로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온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열악한 인프라다.

대한당뇨병학회 박성우 이사장은 “한국의 기초의학 수준도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기초의학이 100년 이상 앞서 있는 일본과는 같은 잣대로 볼 수 없다. 그만큼 깊은 전통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기초 다지기는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투자해야 성과가 나타나는 만큼 단기적인 안목으로는 일본을 따라잡기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당뇨병학회는 올해로 16회째 일본당뇨병학회와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해오고 있다. 박 이사장은 “20여년전에 비해서는 (일본에) 굉장히 많이 접근했다”며 “공식적인 학술행사는 양국 의사들간 친목을 다지는 성격이 강하고, 이외에도 많은 소그룹이 결성돼 연구를 같이 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도 변했고, 우리도 많이 올라가서 대등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정맥 관련 인프라는 교수와 기초연구사를 포함해 일본이 1000여 명, 한국이 60명 규모일 정도로 수적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 김영훈 학술위원장은 “궁극적으로 부정맥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신약 개발도 중요한 리서치 영역임에도 불구, 심장 영역에서도 마이너로 꼽히는 부정맥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사 국가고시에 해부학, 생리학, 미생물학 등 기초의학 과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기초의학이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고 있는 풍토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국내 각 대학 의학교수 담당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추진, 전국18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을 대상으로 실시한‘의대·의전원 일제고사’는 기초의학 과목을 시험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이사장 임정기)는 의과대학에서의 표준화된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USMLE 등 선진국의 의사시험 평가항목을 반영한 임상종합시험과 기초종합시험을 구성, 의대·의전원이 동시에 치르는 민간 주도의 평가시험체제를 구축했다. 연구비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의료의 미래를 책임질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당뇨병학회 박성우 이사장은 “임상과 같은 응용 분야는 실력만 갖추면 빠르게 업적을 나타낼 수 있지만, 기초는 한 해 농사를 짓듯 씨를 뿌리고 가꾸는 행동을 최소 수십년 반복해야 목적을 거둘 수 있다”며 “기초의학 교수를 대학에서 잘 대우해주고,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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