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만 11회' 의료분쟁 휩싸인 길병원
2010.03.31 21:46 댓글쓰기
[단독]설 명절이 지난 2월 16일 데일리메디에 한 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가천의과대학 길병원의 잘못된 진료로 환자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이후 한달여 기간 동안 데일리메디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제보자를 만났고 환자가 전원해 아직까지 진료를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이야기도 들었다. 길병원 측도 접촉, 병원 입장을 확인했다.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법안의 핵심인 입증책임 조항이 빠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지난 20여 년간 지연됐던 의료분쟁 법안이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전문영역이라는 이미지로 국한됐던 의료가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의 대칭이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의 고발이나 확인이 점차 늘고 있다. 이번 길병원 사례를 통해 의료기관들이 처할 수 있는 환자 및 보호자와의 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편집자주]

의료분쟁 발단
인천지역 최대 의료기관인 가천의과대학 길병원이 한 여성과의 분쟁에 휘말려 1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한 달여동안 치료 받은 바 있는 조모씨(64)의 부인 손모씨(55)는 “길병원에서 남편이 치료받은 기간 동안 잘못된 처치와 진료로 상태를 악화시켰다”며 지난해 초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손 씨와 진료기록 등에 따르면 지난 2008년 9월 남편 조 씨는 집수리를 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 동네 의원에 일주일간 입원했지만 몸에 고열이 나는 등 상태가 악화되자 8일 만에 가천의대 길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졌다. 길병원에서는 여러 검사를 실시한 후 입원을 권유, 조 씨는 감염내과에 입원했다. 4일이 지난 후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는 간병인의 연락을 받은 후 손 씨가 병원에 도착해보니 환자의 상태는 크게 악화돼 있었다.

이후 병원은 위(胃)에 출혈이 있다며 내시경 시술을 수차례 반복했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주치의는 위(胃) 절제를 권했다. 이 상황에서 손 씨는 “병원 의료진을 신뢰할 수 없다”며 환자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입원 20여 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환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손 씨가 직접 나서서 지인을 통해 서울대병원 의료진에 연락, 입원 수속 후 129 구급차를 통해 이송하게 돼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진료를 받게 됐다.

환자와 병원측 입장 팽팽
손 씨는 남편이 길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 중 ▲감염내과의 내시경 실시 ▲내시경을 11번씩 같은 방법으로 시행 ▲과다한 항생제 투여 ▲가족이 다른 병원에 전원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아 환자상태가 크게 악화됐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또 “환자상태 악화로 치료가 길어지는 동안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길병원에서 720만원(헌혈증 28장 제외), 서울대병원 6000여 만원, 지역 의원에서도 1000여만 원의 진료비와 간병비 등 억대에 달한다는 것이다.

손 씨는 “길병원은 심지어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원무과에 근무하는 친척에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협박까지 했다”며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이 곳의 행태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같은 환자 측 주장에 대해 길병원은 “내시경을 통한 시술이 많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 상태에 대해 내시경과 색전술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의료진 고유의 권한으로 생각된다”며 손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병원은 또한 “손 씨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내시경 시술은 감염내과가 아닌 소화기내과에 의뢰, 전문의 4명이 번갈아가며 시행됐으며 환자는 이미 감염 상태로 이송돼 왔기 때문에 항생제를 부득이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병원은 특히 “전원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주장은 병원 시스템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사실은 있지만 환자를 잡아두고 이곳 의료진의 치료만을 받게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환자측 주장을 일축했다.

병원 리스크매니지먼트 파트의 한 관계자는 “작년 3월 환자 측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병원장이 직접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할 만큼 각별히 신경 써왔다”며 “다만 지시사항이 전달 도중 누락돼 본의 아니게 시간이 경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병원의 100% 과실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보상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점에 도의적 책임을 느껴 진료비 감면 등을 제안한 바 있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병원이 다른 직원을 볼모로 협박했다는 주장은 가당치 않다”며 “현재는 환자가 약자라는 생각에 지켜보고 있지만 더 이상의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병원과 환자들에게 피해가 올 경우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대병원 주치의 관점-의료소비자시민연대 판단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를 담당했던 의료진은 “이전 병원에서의 진단과 그에 따른 의료행위가 의료사고였는지에 대한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며 중립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환자에게 발생한 위궤양은 비스테로이드 계열의 염증약을 복용한 결과이며 이곳 병원에서는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이 많아 위식도십이지자 내시경 검사를 실시한 후 색전술로 치료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은 진료기록을 통해 “화농성 척추염에 대한 치료는 내시경적 지혈술로 인해 시간이 경과돼 척추후만증이 더 진행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환자의 화농성 척추염 치료에서 균배양 검사상 MSSA가 검출돼 나프실린을 사용했고, 수술적인 치료를 예정했으나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면서 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길병원 측이 합의할 가능성은 배제한 채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고 여긴 손 씨는 이 문제를 의료소비자시민연대를 통해 제기했다. 시민단체 권유로 ‘화농성 척추염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 치료가 적절했는지’와 ‘가막성대장염의 발생에 대해 의료진의 치료상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부설 솔로몬 번역분석센터에 진료기록을 의뢰했다.

결론적으로 이곳 센터에서는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이 발생한 환자 치료에서 10여 차례 내시경 검사와 내시경적 지혈법을 시행한 가천의대 길병원의 치료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기록이 첨부되지 않아 환자의 증상은 확인되지 않지만 네 번째 내시경 시행시 환자는 혈액 응고덩어리 형성과 핼색소 수치 감소로 출혈이 많은 상태였으므로 혈관조영술과 색전술이 이뤄져야 하는데도 하지 않아 화농성 척추염은 악화돼 치료방법이 달라졌으며 척추의 후유증도 더 악화됐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감염 악화로 항생제 치료기간이 길어지므로 가막성대장염이 발생돼 힘든 치료과정을 겪었고 현재 과민성장후군이 남게 됐다고 결론내렸다.

양측 감정싸움으로 확대…해결 실마리 난망
현재 환자는 증상이 호전돼 지역 의원과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외래를 통해 진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영구장애’ 판정을 받을 만큼 몸 상태는 좋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까지 병원 보상팀과 환자 측은 몇 차례 전화 통화와 함께 만남을 가졌지만 주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전적 보상 부분에서도 양 측이 제시한 안에는 괴리가 너무 커 원만한 합의를 기대하기 힘들뿐 아니라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손 씨는 변호사와 소송을 협의 중이다. 아울러 한국소비자원에 구제와 함께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며, 의료소비자시민연대의 도움을 받아 병원 앞에서 규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병원 측은 고액 보상금 등 환자 요구가 너무 과하다고 판단,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허위사실 유포와 병원과 환자에 피해가 오는 행동을 할 경우 법적인 조치 등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현재로서는 양측 간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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