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는 의료계 보는 전문가들 시각
2010.04.09 04:20 댓글쓰기
[기획 5]최근 의료계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사회주의 의료(socialized medicine)’다. 정부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한다는 뜻에서 의료공급자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의약분업 이후 촉발된 의료계의 불만은 해를 거듭할수록 쌓여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차례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고, 정부와 의료계의 대결구도는 더욱 고착화됐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불만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면서 의료인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부당청구 사례를 의사집단 모두의 모습으로 비치게끔 유도하고 있으며, 정부가 해결해야 할 비용부담을 의료계에 떠넘기고 있다는 주장도 흔하다. 의료인의 전문성을 외면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급기야 전국의사총연합회는 최근 한 유력일간지에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광고를 실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주장이 모두 공감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특정 이익집단의 목소리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 데일리메디는 보건정책 전문가 4인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의료계가 주장하는 현 상황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봤다.[편집자주]

“정부는 의료계에 공정한 룰 제시해야”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채택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 규제를 모든 의미에서 사회주의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선을 그었다.

이규식 교수는 “의료공급자들이 사회주의 의료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러한 주장은 정부 간섭이 심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며 “그렇다고 해도 전통적인 사회주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료계가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건강보험 저수가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보면 낮은 것은 틀림없지만 지난 77년 이후 소비자물가보다 빨리 인상된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의료 특성상 수가는 분명히 낮은 편”이라고 재차 언급하면서도 “주목해야할 문제는 수가를 적용하는데 중소병원이 대형병원보다 불리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선택진료비와 차등수가제 등 원가보전 기회가 많은 대형병원에 비해 중소병원은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수가를 단순히 낮다 높다 식으로 판단하기보단, 그 재원이 전 의료기관에 형평성 있게 배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규식 교수는 “1~2인실을 운영하는 대형병원은 가산율과 진찰료 차등으로 운영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며 “지방 대형병원이 어렵다고 하지만 중소병원에 비하면 사정은 훨씬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의 불만을 해소하는 해법으로 정부가 공정한 룰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즉,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이 같은 불만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료기관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경쟁력이 없다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연지정제라는 규제가 지속되는 한 의료계는 공정한 룰을 적용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계, 자연스러운 경쟁구도 이해해야”
[인제대학교 이기효 보건대학원장]

인제대학교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은 의료계가 급변하는 의료시장 특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효 원장은 “의료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은 더욱 고급진료를 원할 것”이라며 “의료계의 어려움을 이해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면 퇴출되는 병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론 이러한 인식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의 잇따른 폐업이 문제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통계로 보면 병원 숫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며 “의원급 개별 공급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측면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대형병원과 브랜드로 무장한 전문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이 원장은 국내 건강보험 수가 수준에 대해선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원가조사를 예로 들었는데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수가를 놓고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의료공급자들이 말하는 처참한 수가는 원가 대비 수준을 파악하는 단계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보험수가가 높게 책정됐지만, 그만큼 원가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외국과의 단순비교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위별 수가를 적용받는 한국 의료기관의 경우 수가가 낮더라도 행위가 많아지면 일정 시점부터 수익을 보전받을 수 있는 프레임을 갖췄다고도 했다.

이기효 원장은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 수가의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각계의 입장이 다른 만큼 수치상으로 높다 낮다를 판단하는 것은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진 후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의사단체가 가중처벌 성격이 짙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쌍벌죄에 대해선 “자칫 의료인만 가중처벌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정부의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며 “형평성을 잘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룰을 만들고 예외 없이 추진하는 정부기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의료인, 강화된 시장논리에 적응해야”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는 “의료계가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건강보험 수가는 개별 하나의 단계로 보면 낮은 편이지만, 전체 틀에서 보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김양균 교수 역시 행위별 수가를 언급하면서 “현 수가 시스템은 진료가 많으면 의료기관이 벌어들이는 금액도 커지는 구조”라며 “이는 양이 늘수록 금액을 보존하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유발되는 것은 이러한 행위별 수가에 대해 순익분기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예를 들어 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하루 60~80명의 환자를 본다고 할 때, 이를 적정한 환경으로 보느냐는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일정한 진료의 질이 유지돼야 의료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더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양균 교수는 “의료계가 어렵다고 해도 일반 국민이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국민에게 의료계의 현실을 합리적이고 공감대가 가는 방향으로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료계의 시장판도에 대해 시장논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망하는 병원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 원칙을 의료계도 예외 없이 적용받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국민 인식이 높아지는 것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환경이 열악한 개원가의 어려움이 더 많을 것으로 봤다. 의료계의 우려 속에도 정부는 영리병원 등 의료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의료기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굳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김양균 교수는 “이젠 경영 능력이 부족한 의료인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개선하려는 업계의 노력을 이어가면서 시장 논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면허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해”
[동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신은규 교수]

동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신은규 교수는 최근의 의료환경이 의사면허자의 독점성을 탈피하는 구조로 변화하는 만큼,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신은규 교수는 “의료공급자는 특수한 면허소지자다. 하지만 최근의 의료환경은 급변하고 있다”며 “이젠 의사면허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을 예로 들며 “의료계가 불합리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더 큰 문제는 경쟁 중심의 의료시장 재편”이라며 “이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의 경쟁과도 비견된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의 불만이 개원가와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 파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원가의 불만은 어찌보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환경을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의료계가 건강보험 수가에 불만이 많다고 강조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집단도 많아서 끈기를 갖고 대화와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 국내 건강보험 수가 수준에 대해서는 “의료수가가 처담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외국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견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의료수가가 높은 나라가 경제발전 속도가 더딘 점을 정부가 잘 알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은규 교수는 “의료공급자들이 끈기를 갖고 다양한 이야기를 청취하고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의사단체가 불만을 제기한 쌍벌죄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면허를 가진 의료전문가 역시 기득권에 안주하기보단 자체적으로 자정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며 “지금 환경이 이러한 변화를 요구한다. 의료계도 논리를 펼치려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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