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사태 겪고 우리도 많이 변했다'
2010.04.11 22:00 댓글쓰기
[기획 6]보건의료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에게 있어 의사는 정책 파트너이자 대상자, 의료공급자로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일반 국민을 대변하되 의료계의 목소리도 수용해야 하는 복지부로서는 때때로 난감한 입장에 부딪히기도 한다. 2000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의약분업이 그랬고, 최근 리베이트 쌍벌제·총액계약제 추진 등으로 다시금 확산되고 있는 투쟁 분위기가 그렇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복지부에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복지부가 바라보는 의료계와의 관계 지형도는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리베이트 쌍벌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기 무섭게 총액계약제 도입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의협 각 시도의사회는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고 정기총회를 기점으로 반(反)정부 운동까지 전개할 모양새다.

굳이 쌍벌제나 총액계약제를 내세우지 않아도 의료계에서 정부 정책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입버릇처럼 ‘저수가’를 달고 살면서 의약분업 도입 시기 격렬했던 투쟁기를 씁쓸한 추억처럼 회상하는 풍경을 의료계에서는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의사로서 소신진료할 권리를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지배적인 요인으로 언급된다.

의약분업 파동이 한바탕 몰아쳤던 2000년은 해당 정책을 주관한 복지부로서도 뼈아픈 해로 남아 있다. 흰가운을 벗고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선 의사들의 행렬을 저지하고 제도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슴에도 생채기가 남았다. 당시 벌어진 첨예한 대치 상황은 이후 보건의료관련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보다 민주적인 수렴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조귀훈 행정사무관은 “의약분업 홍역을 치르고 난 후 우리도 많이 변했다. 예전과는 달리 어떤 보건의료정책이든 정부가 독단적으로 수립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선택진료제나 의료기관전달체계 문제, 한의학 전문의제도 등을 추진할 때 의료계와 소비자단체 등 관련 인사를 TF에 공모해 반드시 포함시켜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모든 정책에서 의료계 인사의 협의와 민주적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정책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도 비난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실상 그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지정제, 건강보험 등 이미 도입돼 뿌리를 내린 제도 자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 제기하는 불합리한 수가 체계 같은 경우 단순히 ‘저수가’만을 문제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조 사무관은 지적했다. 애초 체계가 확립된 이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자생력을 갖고 이어져온 제도를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는 피해의식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적정부담 필요성 공감”

보건의료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를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지만, 복지부도 구조적 측면에서 의료계의 주장을 반영해 보완할 계획은 세워두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건강보험료를 점차 올려서 수가제도를 개선할 생각은 갖고 있다”며 “국민들도 ‘이 정도 서비스면 더 내도 괜찮다’하는 방향으로 점차 의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적정부담, 적정급여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보건의료정책 일변도는 공급자 위주로 돌아갔다는 것이 복지부의 견해다. 수요에 따른 의료기관의 양적 팽창을 장려하면서 의료계에는 일부 특혜가 주어진 반면 소비자주권 측면에서는 배려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관련 제도로 선택진료제와 의료기관 정보 공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을 꼽을 수 있다.

선택진료제라는 미명 하에 환자들은 실제적인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진료비 부담만 늘고 있으며, 의료분쟁조정법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제기된 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중 민감한 의료기관 정보 공개 문제에 관해서는 복지부도 개선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복지부 핵심관계자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해당 병원의 수술성공률이나 감염 위험, 전문의 보유비율 같은 사안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지금껏 정보 공개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의료계 나름대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며 “비급여 의무고지를 시작으로 차츰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선택권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기관이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는 복지부가 안고 있는 오랜 고민거리다. 영리병원 개설 허용을 비롯해 한·의·치 협진, 의료채권제도 등의 사안은 같은 맥락에서 복지부가 추진 의지를 보인 정책이다.

복지부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이에 부응해 적절히 변화하는 의료정책을 세우려 하고 있다. 여기에 함께 나아갈 조력자이자 정책 대상자로 의료계와의 호흡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보건의료정책과 조귀훈 행정사무관은 “지금까지 의료시장이 가격 경쟁 없이 공급통제 위주로 흘러와 국제 감각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해외환자 유치나 유헬스 경쟁 등으로 도태되는 의료기관도 생길 수밖에 없겠지만, 막혔던 제도를 함께 바꿔나간다는 열린 마음으로 바라바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의사단체 등에서 내는 성명서도 유심히 보고 있는데, 의료계에서도 어느 한쪽이 망하게 된다는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같이 읽어야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고언(苦言)을 던졌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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