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 신드롬…병(病) 드는 의료전달체계
2010.07.06 21:47 댓글쓰기
[기획 1]지난 1989년 7월 1일 의료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당시에도 대학병원 등과 같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했던 탓인지 정부는 의료기관을 종별로 나누고 이에 따라 1차와 2차, 3차로 진료체계를 확립하기로 했습니다. 이른바 의료전달체계가 우리 눈앞에 다가 온 것이지요.

그 후로 꼬박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의료계의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요? 아닙니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과 같이 덩치 크고 힘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블랙홀처럼 환자들을 빨아드리며 ‘3분 진료’란 악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KTX가 개통된 이후로는 그나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진료받기를 희망하던 환자들마저 ‘서울’을 외치면서, 하루 1만 명의 외래 환자를 보는 곳이 등장했을 정도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내딛습니다.


이러한 쏠림현상으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요?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각 시도의사회 정기총회 자리에만 가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1차 의료기관 의사들이 모두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오랜 시간 밤잠을 잊어가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됐으니 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2차 병원의 시름도 깊어만 갑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야 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냐고. 그나마 1차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들이 3차로 바로 건너뛰려는 현실 속에서 1차 의료기관의 작지만 알찬 기능을 쫓기에도, 3차 의료기관의 화려함을 따라가기에도 모두 역부족이라고 한탄합니다.

이제와서 책임 소재를 가리기는 힘듭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원가로 쏟아져 나오는 의사들의 수적 조절에 실패하고 환자들의 접근성만 외쳐오던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곤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사회 의사 수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라는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옵니다.

‘무조건 큰 병원’을 외치는 환자들의 야속한 발걸음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가슴만 쓰라릴뿐 이마저도 허무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원격의료마저 시행하려고 한다고 하니, 환자들이 의료전달체계가 있는지 조차 잊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대책은 없을까요. 그나마 지난해부터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 모두들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2010년, 의료분야를 국가적 신성장동력으로 꼽는 정부가 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오매불망 기다립니다. 올바른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기를….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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