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7]한국 의료보험은 '1등' 전달체계는 '꼴등'
2010.07.15 21:25 댓글쓰기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제도 자체만으로 봤을 때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미국 건강보험제도 개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 전재희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캐슬린 시벨리우스 미국 보건부장관은 "한국이 전 국민 보험을 제공한다는데, 미국이 배울 게 많다.

미국은 한국의 보건의료 지출, 전국민건강보험의 경험을 듣고 싶다"며 “앞으로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보건의료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계속적인 정보 및 경험 교환을 기대한다”고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올해 3월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무보험자 3200만명의 건강보험 강제가입과 50인 이상 사업장의 건강보험 의무화(2014년) 등을 통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미국 국민의 95% 선까지 대폭 끌어올리는 ‘건강보험개혁법안’에 서명했다. 전국민 건강보험을 실시하는 한국과 그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건강보험제도를 가졌음에도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붕괴 일보직전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의료 제공에 대한 효율성을 높여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고, 의료 질을 높임과 동시에 서비스 제공의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현재 한국은 1차 의료기관과 2,3차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의 왜곡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책적으로 입원과 외래에 대한 통제기능이 없으며 각 의료기관별 기능분담이 돼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민간중심 의료공급에 따른 공공성 약화 및 병·의원 대도시 밀집, 개원의 중 90% 전문의, 병원급 기관의 외래진료, 의원급 기관의 입원서비스 제공 등이 현재 한국 의료전달체계의 현실이다. 국민의 소득증가, 평균수명 연장 등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의료서비스 수요자인 환자들의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서비스의 비용보다는 개인적 편익을 중요시하며 가벼운 질환도 최신 기술 및 장비를 이용해 치료받고자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 상황이 한국 1차 의료기관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1차 의료 활성화를 통해 의료전달체계 정립에 노력을 기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대만 의료전달체계 핵심 1차의료

가까운 나라 대만은 의료법에 따라 병·의원을 4단계로 구분하고 외래와 입원치료의 기능분담을 확실히 하고 있다. 대만의 의료기관은 크게 진소(診所)와 의원으로 나뉜다. 진소는 우리나라의 의원급 기관으로 외래환자의 진료만 허용한다.

의원은 다시 지역의원(district hospital), 구역의원(regional hospital), 의학중심센터(medical center)로 구분된다. 의원급 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소의 진료의뢰가 있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 외래진료 본인부담률은 종별 구분 없이 20%이지만 진료의뢰 없이 상급의원을 방문할 경우 단계별로 30~50%까지 본인부담률이 높아진다.

대만 의료전달체계의 또 하나 특징은 치료 경과 ‘통보’와 ‘계속치료’ 제도이다. 하위 기관의 진료증을 지참한 환자를 상급기관에서 진료한 경우 치료 경과 및 건의사항을 환자를 의뢰한 기관에 의무적으로 통보해야하며 환자를 계속 진료하기 위해서는 유효기간 1개월의 ‘계속치료증’을 발급해야한다. 상·하위 의료기관이 환자진료에 긴밀히 협조하면서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고 있다.

*네덜란드 의료전달체계 문지기 역할은 일반의(GP)

네덜란드 역시 철저한 기능 분담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의료전달체계는 기본의료, 1차, 2차, 3차 의료서비스로 구분된다.

기본의료서비스는 질병예방과 건강검진 및 요양, 환자이송 등을 포함한다. 1차 의료서비스는 주로 가족의(family doctor) 역할을 수행하는 일반의(GP)가 담당한다. 일반의는 통상적인 경증 질병을 진료하며 일반의의 의뢰가 없으면 2차 진료를 담당하는 전문의가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네덜란드 1차 진료에서 일반의는 문지기(gate keeper)역할을 한다. 경증 질병에 대한 전문의의 진료를 억제해 과도한 의료비용 지출을 막고 외래진료시 의약품의 처방률을 낮추는 역할이다. 유럽국가 외래진료 처방률이 평균 75~95%인 반면 네덜란드 처방률은 50%에 불과하다. 2차 의료서비스는 일반의들의 의뢰에 근거해 전문의가 진료한다. 네덜란드 개업 전문의들은 3~6인이 함께 진료하는 집단 개원방식으로 진료소를 운영한다. 3차 의료기관인 병원은 소수의 전문의사만 고용하고 대부분의 입원진료는 개업 전문의와 계약을 통해 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개방형 체계로 운영된다.

*佛 건강보험 개혁, 1·2차 의료기관 긴밀한 협조

2005년 프랑스는 의료보장 제도를 더 높은 수준의 지속가능한 체계로 전환하고 국민의 평등 건강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건강보험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의 주 내용 중 하나는 의료전달체계 전면 개편이다. 이 개혁을 통해 주치의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의료전달체계를 1차 의료담당자 주치의, 2차 의료담당자 위탁의로 정비했다.

프랑스는 1996년부터 일반의들을 대상으로 주치의 제도를 도입했으나 의사 10%지원, 국민 1%만이 신청하는 실패를 경험했다. 전문의가 많고 자유로운 병원선택이 가능했던 기존 체계를 활용하지 못했던 탓이다. 이후 프랑스는 주치의 자격 제한을 없애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면서 2009년 국민 85% 주치의 등록이라는 성과를 냈다.

프랑스의 보험가입자와 16세 이상 가입자의 가족은 의무적으로 주치의를 지정해야한다. 주치의는 치료의 첫 단계를 담당해 환자를 적절한 의료이용 단계로 안내하고 예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주치의는 환자에 대한 모든 의료기록을 종합해 ‘개인의료기록부’를 작성할 의무가 있다. 주치의가 환자의 모든 의료기록을 관리하기 때문에 환자 의료이용시 정보의 연속성이 보장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2차 의료서비스는 전문의인 위탁의가 담당한다. 위탁의는 기본적으로 주치의가 의뢰한 환자를 담당하지만 환자의 지속적 치료가 필요할 경우 주치의와 긴밀히 협력해 치료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한다. 주치의와 위탁의 협력이 프랑스 의료전달체계 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프랑스 역시 주치의 소견서 없이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경우 진료비가 할증되며 환자가 부담하는 장치를 마련해 의료서비스 기능분담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 전체진료 90% 책임지는 1차의료

영국은 국민 97%가 1차 의료서비스 제공자인 주치의에 등록돼있다. 주치의는 일반의가 맡고 있으며 평균 2000명 정도의 환자와 가족의 진료 및 건강관리를 담당한다.

건강검사, 성인 건강진단(16세 이상), 노인 건강검진(75세 이상), 어린이 성장·발육평가 등을 주치의가 맡는다. 영국 역시 응급환자를 제외하고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는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영국의 주치의가 하는 진료는 국민보건 서비스 예산의 15%만 사용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의 의료간섭이 심한 대표적인 나라지만 점차 내부시장 경쟁 원리를 도입해 의사들에게 다양한 성과급을 지급,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형 의료전달체계 수립 논의 절실"

해외 사례를 통해본 한국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기본 골격은 의료기관의 기능분담과 1차 의료의 체질 개선 그리고 앞으로 행해질 원격의료 등에 차세대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안 마련 등이다.

전문가들은 의원과 병원의 통원진료와 입원진료의 본인부담률을 조정하거나 적절한 패널티를 부과해 경증 환자가 상급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것을 막는 유인책을 강구해야 한다하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대한중소병원협의회 권용욱 회장은 “1차 병원에서 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형병원으로 가는 시스템이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대형병원의)환자 본인부담금을 올려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바 있다. 무분별한 대형병원 이용을 막기 위해 적절한 규제책을 마련해 의료기관 간의 기능을 재정립 하자는 주장이다. 1차 의료서비스의 근본적 강화방법으로 주치의 제도 도입 또한 논의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진석 교수는 건강정책동향 <심층분석> 기고를 통해 “집 근처에 있는 동네의원이 아니라 더 비싼 비용을 내면서 대형병원으로 몰려가는 환자들에게 행정적 불편함과 추가 비용을 더한다고 해서 대형병원 쏠립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주치의 제도는 의원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다. 의원과 환자를 신뢰로 결합시키고 대형병원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주치의 제도 도입을 통해 1차 의료기관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공공의료 기능을 강화해야한다는 논리다. 현재 개원의 90%가 전문의로 구성된 한국은 의료수준이 높아 의사들에게 주치의 제도에 대한 교육을 조금만 시행하면 제도 정착은 매우 쉽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더불어 주치의 제도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지금까지 자율적으로 의사를 선택했던 환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 1차 의료를 담당해야 할 개원의 중 전문의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 주치의를 관리할 제도적 인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주치의 제도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앞으로 추진될 원격 의료 등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민간조직 중심의 우리나라 의료공급에서 서비스 공급 행태를 개선하는 것은 갈등의 소지가 크다. 따라서 현재 있는 제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보완할 수 있는 대승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훌륭한 건강보험제도를 가진 한국이 그에 버금가는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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