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8]'현재로선 의료전달체계 문제 투성이'
2010.07.16 22:00 댓글쓰기
‘전달’이란 사전적 의미가 무색한 의료전달체계. 지난 1989년 도입 당시부터 시작된 ‘의료전달체계 확립’ 구호는 지금까지도 의료계에서는 공염불처럼 들리는 것이 일상처럼 돼 버렸다. 그토록 오랜 시간 줄기차게 외쳐왔건만 나아진 점 하나 없는 의료전달체계.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나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니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벌써 도입된 지 20년이 지난 오래된 제도이니 이참에 싹 갈아엎고 새판을 짜야 하는 것인지. 의료전달체계로 시름이 깊어만 가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의료계의 내일을 위해 다소 극단적인 주제인 의료전달체계의 존속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두 사람, 유용론을 펼치는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 교실 최용준 교수와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임구일 원장(의료와사회포럼 사무총장/연세미래이비인후과)을 만나봤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두 사람은 하나의 주제 앞에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금과 같은 의료전달체계를 더 이상 끌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두 사람이 의료전달체계를 논하기에 앞서 전제로 내세운 부분이다.

이들이 말하는 의료전달체계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의료기관간의 경쟁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 이로 인해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인 의료공급 양상이 초래,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래 중심으로 특화시켜야 할 의원급 1차 의료기관에서 조차 병상을 갖추고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종합전문요양기관에서도 경증 환자에 대해 외래진료를 갈수록 확대하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환자들의 의료쇼핑 등과 같은 기현상마저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최용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상위 의료기관으로 넘어가는 일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현상이 왜곡돼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며 “이를 바로잡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임구일 원장 역시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대형병원으로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이미 수요와 공급 곡선이 무너졌다고 보는 게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의료전달체계는 살려야”vs “시장의 힘을 믿어보자”

의료기관들의 경영난으로 불거진 의료전달체계 논의 이면에는 국민의료비 적정화, 양질의 의료 제공 등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전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에 단순히 하나의 문제만 풀어서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다만 누가 어떻게 풀어 나가냐가 논의의 핵심인 만큼 최 교수와 임 원장간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렸다. 최용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를 순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보호 발전하자는 쪽에서 긍정론을, 임구일 원장은 어차피 무용지물인 상황이라면 이참에 시장의 힘에 맡겨보자는 측면에서 폐지론을 이야기했다.

먼저 긍정론을 이야기하는 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의료전달체계는 반드시 안고 가야합니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부분은 의료전달체계 방식에 대한 부분이지, 그 존재까지 의구심을 가져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1차 의료기관을 근간으로 개원의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정책적 방향을 잡아 간다면 의료서비스 성격상 자연스럽게 의료전달체계도 확립되리라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의료법의 기본정신에 따라 의원급 의료기관은 통원 치료를 주로 맡고,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 치료를 주로 담당하도록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에서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그는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므로 시장의 힘이 왜곡된다. 효율적인 의료자원 활용이란점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의료전달체계 개선노력이 시급하다”는 뜻을 전했다.

반대로 임구일 원장은 “의료전달체계가 국민 보건향상을 위해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정립하자는 뜻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이상론에 그치지 않았느냐”며 “이 기회에 의료전달체계를 비롯해 의료계의 판을 새로 짜자는 의미에서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이미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 30%를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없게끔 하는 의료전달체계는 의미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니, 폐지한다고 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임 원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쏠림현상을 막을 수 없다”면서 “결국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에만 눈을 돌리다가 전체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폐해만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의료전달체계 살릴까 or 버릴까

의료전달체계가 문제가 있다는 데는 같은 의견이면서도 이를 존속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서로 다른 두 사람. 의료전달체계를 이어나감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유용성과 이를 버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각각 물었다.

최용준 교수는 “세 가지 이유때문에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그는 의료의 질 문제를 따졌다. 최 교수는 “의료전달체계가 있음으로 인해 1차 의료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고, 이로써 예방적 서비스를 촉진하고 입원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양질의 의료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데 의료전달체계가 저변에서 기능하다”고 설명했다.

사회나 개인 모두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는 것 또한 의료전달체계의 유용성 중 하나로 꼽혔다.

최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구분이 제도의 본 취지에 맞게 잘 정립됐다는 가정 하에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정보를 탐색하는 비용, 상대적으로 저렴한 1차 의료기관을 이용했을 때 경제적 이득분이 고스란히 사회전체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효율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적인 면에서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면 의료전달체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두고 고민해봤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지 짚어봐야 한다”면서 “지역에서 환자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1차 의료기관의 모습을 남겨뒀을 때 의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의료전달체계를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임 원장은 “규제와 보호적 성격이 강한 의료전달체계는 더 이상 시장에서 소용이 없다”면서 “차라리 제한적 성격이 강한 의료전달체계를 풀고 시장의 논리에 맡겨보자”고 주장했다.

의료전달체계에 있어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진료의뢰시스템을 거치는 것과 가격의 차별을 두는 것이지만, 이미 1차 의료기관을 3차 의료기관으로 가기 위한 관문쯤으로 여기는 소비자의 모습을 본다면 유명무실하다는 소리다.

특히 가격으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일련의 논의들조차도 생명과 건강이라는 특수한 시장 환경 속에서 의미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때문에 그는 “이미 1차 의료기관이 3차 의료기관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오히려 의료전달체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는 폐단을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의료전달체계의 대표적인 폐단은 바로 종별가산율제다. 저수가 기조 속에서 정부가 이를 보전하는 방법으로 행위별수가제에 상대가치 개념을 도입, 덩치를 키운 대형병원들에게 일종의 자본 보상격인 종별가산율이란 기이한 제도를 삽입했다는 것이다.

임 원장은 “외래 환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일반 개원가와 다를 바 없는 진료를 하고서도 대학병원에서 종별가산율로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도록 한 게 바로 의료전달체계”라며 “진정한 의미에서 의료전달체계를 살리려면 이를 없애자는 발상의 전환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의료전달체계의 존속 여부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른 만큼이나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란 현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최용준 교수는 현행 체제에서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임구일 원장은 건강보험 민영화와 같이 시장원리를 대폭 도입하는 쪽에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현행 제도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시범적으로 도입한 뒤 정책의 효과가 입증되면 법적 구속력을 통해 강제화하는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단기 정책을 병행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효성 있는 진료의뢰 및 회송절차를 확립하고, 의료기관의 기능정립을 위해 수가 및 본인 일부 부담금의 수준에 차이를 두도록 하는 식의 단기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또 중기목표로 병상의 신·증설을 규제하자는 쪽으로 접근, 상급종합병원의 무분별한 병상 확대가 유인 수요 창출로 이어져 의료전달체계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을 원천적으로 막자고 했다.

임구일 원장은 현행 의료전달체계는 공급자간의 경쟁만 부추기므로 이를 폐지하되 공급자 뿐만 아니라 보험자, 소비자도 경쟁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 원장은 “단일화된 보험체계 아래에서 의료전달체계를 아무리 개선해봐야 결국 공급자 사이의 경쟁만 심화시킬뿐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의료보험간의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면 명문화된 의료전달체계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시장원리에 따라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현행 의료전달체계에서는 대형병원 특실에서 진료를 받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고스란히 안고가면서 대형병원의 이득을 더욱 챙겨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신에 완전 자유경쟁 체제는 현실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나기 힘든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이 서로 다르듯 1차 의료기관과 상위 기관사이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구분 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임 원장은 덧붙였다.

이들 사이에 시각 격차는 주치의제도 도입에서 더욱 벌어졌다. 최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1차 진료의사를 양성해 이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1차 의료의 질적 수준을 구조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며 “이는 전문의가 1차 의료를 맡음으로써 발생하는 개인적·사회적 비효율도 교정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임 원장은 “공급자만 컨트롤 하겠다는 정부의 또 다른 규제책 가운데 하나”라며 “이미 수많은 전문의들이 1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는 커녕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조차 못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최용준 교수와 임구일 원장의 시각은 의료전달체계의 존속 여부에 대한 가정을 전제로 한 출발이었기에 어느 쪽도 옳다그르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의료전달체계를 개선, 확립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현실에 이른 상황에서 한 번쯤은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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