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 도입 '5년'…꺼지지 않는 '불씨'
2009.12.23 21:52 댓글쓰기
[기획 1]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이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 1995년 처음으로 도입 필요성이 논의된 지 14년만이다. 의전원 취지는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통해 ‘교양과 전문성이 갖춰진 의사’를 양성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6년제 의사 양성체제(기초교육 2년+전문교육 4년)로는 급속히 발전해 가는 현대과학 기초에 대한 이해와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수준 높은 교양 교육이 미흡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의전원은 다양한 전공의 학부 졸업자를 의료계로 끌어들여 대학원 수준의 전문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인접 학문과의 교류를 증대시켜 기초의학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및 생명과학의 발전을 주도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우수한 의학자 양성이야말로 의전원을 도입하는 궁극적인 취지이자 이유였다.

추진 배경
4+4 vs 2+4, 논란 시발

의전원 설립은 1996년부터 구체적인 가지가 뻗어 나왔다.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의학교육 학제를 학사학위 소지자 가운데 입학생을 선발하는 4+4제와 대학교육 2년 이상(의예과 포함) 이수자 중 선발하는 2+4제로 이원화, 대학에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는 2+4제에 근간을 둔 사안이 의학교육계의 합일된 의견이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교육과학기술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1998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과부-의학계 간에 갈등이 시작됐다. 제1기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4+4를 기본으로 하는 의학교육 학제를 정하고 이를 전체 의과대학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 했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는 이에 반발하며 “의학교육 전 과정을 최소 2년 이상으로 다양화하고, 의학교육을 학부수준이 아닌 대학원 수준으로 인정하며, 임상수련과 중복되는 일반대학원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는 건의문을 내놓았다.

도입기
정부 “4+4 원칙” 학계 “수용 불가”

2002년 본격적인 청사진이 그려졌다. 교과부는 1월 ‘의전원 도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은 4+4를 원칙으로 하되, 한시적으로 의과대학 체제와 전문대학원 체제 중 대학 자율로 선택하도록 하며 동일대학 내 복합체제 개설을 2009년까지 인정할 방침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밝힌 도입 배경을 요약하면 △질 높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고급 전문인력 양성 체제 구축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과정 도입 유도 △과도한 대학입학 경쟁 완화 △연구중심대학과 진료중심대학으로 특성화 촉진 △기초학문 분야 보호 등이다.

기본계획이 발표되자 의학계는 전국 41개 의대학장들이 “수용불가” 입장을 천명하는 등 또 다시 반대 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당시 한국의과대학학장협의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현행 2+4제도를 근간으로, 의예과를 수료하지 않은 학생도 진학할 수 있는 제도가 우리 실정에 맞는 학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입시과열 해소에 대해서도 “의예과 입시과열은 그대로 전문대학원 입시과열로 지연되고 학문분야에 혼란과 파행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2002년 2월 기본계획 발표 후 의전원 전환 신청을 접수 한 곳은 10개 대학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대, 고려대, 가톨릭대 등 주요 의과대학들이 전환신청을 하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대학은 기존 의대 체제에 손을 들어줬다.

도입 후
BK21 등 대학 관련 사업과 의전원 전환 연계

이에 교과부는 새로운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2005년 5월 한시적으로 2+4와 4+4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2002년도 기본계획을 철회할 의사를 밝힌 것이다.

대신 2단계 BK21 등 대학관련 사업과 연계할 의사를 비쳤다. 이는 전환 하지 않을 시 대학 경쟁력을 좌우할 연구중심대학으로의 길이 원천봉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총 7개 대학이 2단계 BK21사업 선정을 앞두고 의전원 전환 의사를 피력했다. 교과부의 대학 관련 사업 연계 방침이 대학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다.

일부 대학들은 의대 캠퍼스의 서울 이전, 교수 증원 등 교육외적인 개선을 보장받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로써 의전원 전환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의학교육계와 팽팽한 기(氣) 싸움을 한 교과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마침내 2006년 2월 ‘전환추진 기본원칙’을 발표했다.

내용은 △현재까지 미 전환 대학은 정원의 50% 범위 내에서 보장형 입학을 대학 자율로 2009년까지 시범 실시 △기 전환 대학은 2009년까지 기존 전문대학원 체제 유지 △의·치의학 제도개선 위원회를 구성해 2009년 의사양성체제에 대한 종합평가 실시 후 향후 정책방향 제시로 요약된다.

기본원칙이 정해진 후 무려 10개교가 비전환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추가로 의전원 전환을 신청했다. 전면 전환 여부는 유예됐지만 BK 연계 등의 방침이 철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입 후 5년
학제 자율선택권 목소리 높아져

의전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판단은 2009년도 종합평가로 일단락되고 표면적인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대학들 움직임은 오히려 바빠졌다.

2007년에 들어서면서 가톨릭대, 한양대 등은 자체적으로 의전원 교육과정 방향설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새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또한 가천의대는 의전원 도입 이후 ‘제1회 가천학술제’를 열어 의전원에서 실시한 의무석사 학위논문 연구결과를 발표 하는 등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주요 의과대학들이 의전원에 힘을 실어주면서 학생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졌다. 2008년 의전원 수시 모집에서는 가톨릭대, 연세대, 인하대, 전남대, 고려대 등이 정원을 넘겼고, 고려대 1.92:1, 연세대 1.56:1, 인하대 1.37:1처럼 예상보다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대학들 사이에서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학제 선택 자율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각 대학 특성을 고려하자는 차원이다.

지난 11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영아 의원의 ‘의사 양성체제에 관한 해당 대학의 입장’ 조사 결과, 의전원으로 전환한 경상대, 전북대, 제주대가 자율권이 부여될 경우 의대로 회귀할 것이란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2009년 6월까지 앞서 의사를 피력한 대학들을 포함해 총 27개 대학이 의전원 전면 혹은 부분 전환을 선택했다.

이제 의전원의 최종 전면 전환 여부는 내년쯤 그 윤곽이 드러난다. 대학들이 학제 자율성 보장을 원하는 상황에서 2009년 의사양성체제에 대한 종합평가가 어떻게 실타래를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2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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