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로 가야' vs '의학전문대학원 찬성'
2009.12.29 21:30 댓글쓰기
[기획 5]민감한 사안이지만 단호했다. 인제의대 이병두 학장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제 개편이 아닌 교육과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결해야 할 것은 학제가 아니라 의학교육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도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책 외적인 요소인 BK21 사업과 연계시키고 의전원에 한해 교수정원을 증가해줬고, 예산지원을 제공하는 등 유인책을 통해 반 강제적인 전환을 유도했다”고 꼬집었다.

의전원 도입 반대 논리를 펴기 전에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는 게 이 학장의 지론이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이 의사의 질적 향상과 의학의 발전을 목표로 ‘좋은 의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의전원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진짜 취지는 고교 입시 과열 완화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체제를 유지하든 본질적으로는 같은데 이런 이유 하나로 의대 체제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논리가 불충분하다”며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BK21 지원금과 정책적 지원이었고 이에 몇몇 대학들이 의전원으로 전환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의전원 주창자들이 표면적으로 의전원을 도입해야 하는 취지를 말할 때 기초 과학자 양성, 사교육 입시 열풍 해소, 다양한 소양을 갖춘 학생의 유입 등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느 것 하나 의대체제보다 휠씬 낫다는 근거가 없다는 게 이 학장의 생각이다.

오히려 그는 “의전원으로 가기 위해 사교육비가 늘어났고, 입시 열풍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이공계는 더욱 황폐화되고 있다”며 “의전원에 입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직업의 안정성 때문인 것을 감안하면, 기초의학보다 임상의사 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 같은 이유는 의전원 도입 취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지방의전원에서 그 지방출신 학생들이 아니라 대부분 수도권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어 나중에 인턴, 레지던트 때 그 병원으로 남지 않고,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와 의료 인력 수급이 전체적으로 불균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점 중에서 그는 동일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등록금은 비싸고, 학위는 석사를 주고 있는 실태에 대해 비판했다.

“의전원 타당치 않아, 학제 선택은 학교에 맡겨야”

이 학장은 “의대생과 의전원생은 대부분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며, 교육과정은 모두 인정평가를 통해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럼에도 등록금은 두 배 이상 차이가 있고, 학위 또한 의전원 졸업자는 석사, 의대 졸업자는 학사로 차등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전원이 갖는 장점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는 “의대생에 비해 의전원생이 들어올 때부터 목적의식이 뚜렷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의전원 장점이라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의학적 지식이 많은 것은 표면역량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실력이 있어야 좋은 의사며 의료윤리를 가르치려면 윤리적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이는 어릴수록 교육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학장은 그럼 이미 도입돼 운영되고 있는 의전원 제도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는 “만일 의전원에서 의대로 돌아간다고 결정을 하면, 발표 후 5년의 기간을 두고 돌아가면 된다”며 “편입 비중을 지금보다 확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면 된다. 가령 일반편입, 학사편입 비중을 확대하면 의전원을 하지 않고도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영국처럼 2+5제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방향도 제시했다. 본과 4학년을 마치고 예비면허를 주고 본과 5학년 때 제대로 된 실습을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인턴 과정을 없애고 졸업 후 바로 레지던트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지금보다 일반편입을 늘려 다양한 학생들이 의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군의관 복무연한도 27개월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의학전문대학원 정성광 원장은 현재 의전원협의회장이다. 기본적으로 정 의전원장은 의대, 의전원, 50대50 병행의 3가지 의학교육체계로 운영되는 것은 많은 낭비와 혼란이 초래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책적 단일화를 이뤄야 하며,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로 의사양성제도 또한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임을 강조했다.

정 의전원장은 “전문대학원 체제는 교육부문의 글로벌화이며, 과거로 회귀한다는 것은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것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의전원 체제가 흔들리면 다른 전문대학원이나 교육체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의전원 체제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전원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정 의전원장은 “처음부터 의료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제도가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라며 “해방 이후 50년 동안 똑같이 지속돼 온 의학교육체계를 이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경북대는 의전원으로 완전 전환한 대학으로 여러 긍정적인 효과와 장점 덕을 보고 있다. 정 의전원장은 학생, 교수, 시설면에서 지난 몇 년간 대학이 얻은 효과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그는 “의전원 학생들이 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성이 있으며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의사 전달 능력이 과거의 학생들에 비해 휠씬 우수했다”며 “설문조사에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과거 의대 졸업생보다 사회봉사나 선교활동에 대한 의지가 휠씬 강했다”고 말했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정책적 단일화 이뤄야”

특히 예상과 달리 몇 년 만에 기초의학 지망자도 몇 명 나왔다는 정 의전원장은 “기초 연구를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없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고, 올해 우리 학교 학생 중에도 2명이나 기초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에 비하면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교수들 또한 많은 충원이 이뤄져 교육과 연구에 질적, 양적인 향상을 보였다. 정 의전원장에 따르면 SCI 논문 증가, 연구비 수주 확대, 각종 연구센터 유치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으며, 의과학과 신설과 MD-phd 과정 신설로 타학문과의 연계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연구 활성화 및 대학원생 증가, 심화수업 가능, 실험실습의 강화 등이 이뤄졌다.

더불어 정 의전원장은 “의전원 학생들만 위한 학생생활관이 신축됐고, 학생회관을 개보수했으며, CBT실, 실험동물실, 임상수기 센터 완공, 학생열람실 및 학생체육시설이 확충됐다”며 “의전원으로 완전 전환한 대학들은 많은 노력과 인적, 물적 보강을 통해 교과과정이나 학사운용을 안정적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전원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2배 이상 비싼 등록금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각 대학이 커리큘럼과 학생 편의시설을 바꾸는 등 인재양성을 위해 얼만큼, 어떻게 투자했는지에 따른 대학의 문제라는 게 정 의전원장의 전언이다.

그는 “이전의 싼 등록금으로 딱 필요한 만큼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나을지 몰라도 국제적 수준, 미국과 같은 의학교육을 제공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며 “우리학교도 의전원으로 바뀌면서 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의전원장이 특히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의전원 첫 졸업생이 배출됐고, 제도가 정착단계에 들어간 시점에서 ‘아예 없던 일’처럼 회귀된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부분이다.

국민과 대학들이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한 대학 자율에 맡겨 학제를 선택하는 것은 시장경쟁논리를 교육부문에 적용하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정 의전원장은 “예전처럼 의대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학교 입장에서는 쉬울지 몰라도 의전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1만 여명의 학생들, 입시관계자들, 학부모들을 모두 설득할 수 있을지, 엄청난 혼란과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전원을 운영해 본 결과 보완돼야 할 점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직 법률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한점을 꼽았다. 정 의전원장은 “의전원 국시 자격문제라든지 학위 문제와 같은 논란들은 국회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어 놓고 미리 법률적 정비를 해놓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의전원에 걸맞는 교육을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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