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서 던진 올 최대 이슈 '1·2·3차 병원'
2010.01.24 21:55 댓글쓰기
올해 의료계의 화두는 단연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이 같은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국회 정책토론회가 잇달아 열리고 개원가를 중심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의료계와 국회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은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불을 지폈다. 개원가의 위기의식이 정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전망이다. 더욱이 원격의료에 대한 개원가의 반응은 공포에 가깝다. 의원 경영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우려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상황. 최근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관련한 토론회가 많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 규모의 경제로 대변되는 의료계 왜곡 현상도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극단적인 대형화는 개원가뿐 아니라 지방 의료계에도 현실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이젠 생존을 위해서라도 의료전달체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개원가와 지방 의료계 전반에 뿌리내렸다.[편집자주]

대형병원 초대형화…벼랑 끝 몰린 개원가

원격의료에 대한 위기감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불을 지폈지만 위기의식이 근저에는 대형병원의 초대형화가 자리한다. 이른바 감기환자까지 싹쓸이하는 수도권 대형병원 블랙홀 현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극단적 대형화는 통계가 입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밝힌 '2009년 건강보험 요양기관종별 지급실적 현황(11월 누계)'에 따르면 종합전문병원과 병원급의 진료비 증가율을 증가한 반면 개원가는 감소 추세다.

지난해 11월 종합전문병원의 진료비는 5조6606억원으로 2008년 같은 기간보다 19.5%가 증가했다. 기관당 월매출도 116억원으로 2008년 동기간 100억원원보다 17%나 늘었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 지급실적은 8조1535억원으로 08년도 같은 기간 7조5282억원에 비해 8.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단순 진료비 총액은 증가했지만 총진료비에서 의원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의원의 점유율은 22.8%로 2008년 동년보다 0.9% 줄었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이 지난해 4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외래 의료기관 종별 심사실적'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진료비 점유율은 대형병원과 달리 개원가는 꾸준히 감소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각 종별 외래 진료비 점유율은 종합전문병원이 9.9%에서 15.7%, 종합병원은 10.2%에서 15.9%로 6%가량 늘어 총 31.6%를 차지했다. 반면 의원은 74.6%에서 60% 수준으로 떨어져 2001년 이후 14.6%나 하락했다.

서울 초대형병원의 외래 1만 시대가 도래한 점도 개원가의 위기감을 부채질했다. 외래환자를 초대형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개원가의 항변이다.

사실상의 대면진료로 인식되는 원격의료가 대형병원 위주로 이뤄질 것이란 위기감도 작용했다. 대형병원에 더는 환자를 뺏길 수 없다는 것이 위기의식의 출발점인 셈이다.

골머리 의협…쏟아지는 해법들

문제 인식이 커지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긴급처방에 나섰다. 의협은 최근 '의료전달체계 제도 개선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의협을 비롯한 개원가의 해법은 의원급 의료기관은 외래,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으로 업무기능을 개편해야 한다는 게 기본 뼈대다. 종별 의료기관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자는 원칙론을 내세운 것이다.

1차에서 2차 3차로 이어지는 현행 의료기관 회송체계를 어기면 재정적 페널티를 부과하고 대형병원 의사의 1인당 환자 수를 제한하는 차등수가제 도입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유상 진료의뢰서 도입 목소리도 크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정책이사는 "유상 진료의로서에 충분한 진료정보 등을 담으면 중복진료를 피하고 의료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중소병원협의회 권용욱 회장은 "1차 병원에서 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형병원으로 가는 시스템이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대형병원의)환자 본인부담금을 올려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연구원은 지난 23일 의협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1 의뢰서 1회 병원외래방문'을 제안했다. 또 의원급 의료기관의 외래환자 본인부담금 인하 또는 전액 보험재정 부담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 의료계는 환자가 해당 지역의 대형병원을 거쳐 수도권으로 이송하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진현 연구원은 지난해 'KTX의 건강영향 평가' 보고서에서 서울지역 빅5 병원의 1일 외래환자를 대폭 제한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원가의 지방 의료계의 핵심 주장은 환자가 대형병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1·2차 의료기관의 경영난을 타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다. 합리적인 수가체계 도입도 같은 맥락이다.

주치의제도 해법될까…의료계는 난색

현재 의료전달체계 해법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주치의제도(단골의사제) 도입이다. 보건당국을 중심으로 이 같은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위기의식의 공통분모가 커졌음에도 해법을 제시하는 나침반은 의료계와 행정부, 입법부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보건산업진흥원 이신호 보건의료산업본부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토론회에서 "주치의제를 통해 환자의 의료쇼핑 등 부적절한 의료이용을 개선할 수 있다. 국민 의료비 총액도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복지가족부 노길상 보건의료정책국장도 "주치의제를 도입하면 의료기관은 월급 형식의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환자를 자주 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 본부장의 의견을 거들었다. 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도 현행 행위별수가제의 한계를 언급하면 수차례 주치의제 도입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국회 입법조사처가 '고령사회 대비 주치의 제도 도입 검토' 보고서를 발간하고 "한국은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인프라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인식은 보건당국의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제한할 수 없으며, 90%가 넘는 전문의 과잉 현실에 부적접하다는 의견이 많다.

의협 이재호 정책이사는 여러 차례 국회 토론회에서 "메이저병원을 선호하는 현 상황에서 주치의제는 국민의 의료 선택권을 제한할 것이다. 특히 전문의가 비약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인력 양성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병협 이 송 정책위원장은 "현행 의료전달체계는 1차 의료기관에서 바로 3차로 이동하는 왜곡된 상황이다. 중소병원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요구했다.

국회, 제도정비 움직임 가세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면서 국회 복지위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다. 이미 직능출신 의원실을 중심으로 주치의제와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할 의사를 밝힌 곳이 많았다.

문제는 대다수 의원실이 주요 해법으로 주치의제 도입을 강조하는 등 보건당국과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의료계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한 셈이다.

한 야당 의원실은 원격의료 반대를 전제로 주치의제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실은 3차 병원의 가중 수가를 1차 병원으로 분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복지위 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올해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다. 다만 주치의제는 의료계의 전향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협 한 임원은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단골의사제에 의료계가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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