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별 담장 허물어지고 전문과목 표방 낮아져
2009.07.26 21:58 댓글쓰기
[기획 2]의료계에 불어 닥친 진료영역 파괴 바람에 각 진료과별 담장은 허물어지다 못해 이젠 흔적만 겨우 확인 가능한 수준이다. 최소한의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수가 상황을 이기지 못해 폐업을 신고하거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채 비급여 진료에 목메달 수 밖에 없는 개원의들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 이 것이 2009년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주소이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이러한 의료계 내부의 모습들을 주요 사례별로 짚어봤다.[편집자주]

지난 4월. 대한미용웰빙학회 춘계 특별심포지엄 행사장에는 발 디딜 틈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회원 수가 이미 8000여 명에 육박한 미용학회는 이날 심포지엄을 찾은 회원들에게 피부 및 성형에 관해 최신 술기 등을 소개했다.

학회명과 달리 이 곳을 찾은 의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출신은 제각각이다. 학회를 설립한 한공창 전 회장만 해도 산부인과 출신이다. 그는 “4년 전 산부인과의 어려운 현실을 직감하고 노화방지 에스테틱 쪽으로 틀었다”며 “이에 관심을 보이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 회장의 설명대로 행사장을 찾은 의사들은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비뇨기과 등 전공이 서로 달라 일일이 확인하는 게 멋쩍을 정도였다. 이미 과별 신경전 수준을 넘어 개원가의 진료 영역이 테마별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한마디로 복마전이 된 셈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미용성형’

미용성형, 이른 바 ‘쁘띠성형’이란 외과적 수술방법에 의존해야 하는 기존 수술과 달리 간단한 시술을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어의 ‘조금’이라는 뜻인 쁘띠를 가져와 성형에 붙인 말로, 주사를 주입하거나 실로 꿰매는 게 대부분이다. 매몰법을 이용한 쌍꺼풀 수술, 보톡스, 필러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시술이 간편한데다 미용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높아지면서 이를 진료과목의 하나로 편입시키기 위해 개원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성형외과 입장에서는 탐탁치만은 않다. 같은 의사로서 생존에 거센 위협을 겪고 있는 동료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무리 손쉬운 듯 보여도 환자에게 직접 시술하는 것인 만큼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살아남기 위해 여러 수단을 찾는 행위 자체야 나무랄 수 없다”면서도 “다만 정확한 시술을 펼쳐야 환자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있는 만큼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나온 것이 바로 미용외과 전문의라든지 국제미용성형외과 전문의와 같은 유사 전문의 또는 인정의들이다. 타과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미용외과에 진출하기 세운 임의학회들을 기반으로 비전문의로서의 ‘딱지’를 떼기 위함이다.

13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용관련 한 학회는 “미용수술은 안과, 이비인후과, 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등 여러 전문 과목에 걸쳐 추구되는 종합의학”이라며 “성형외과가 미용수술을 자신의 전문 분야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학회는 “의료계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편협한 시각과 배타적 사고,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국제경쟁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며 자신들의 학회 활동에 대해 “미용수술과 관련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의료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지켜보는 성형외과 의사들은 답답하다. 대한성형외과학회 소속 한 전문의는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기초적인 상처 치유과정부터 복잡한 재건수술까지 체계적으로 배운 상태에서 미용수술을 배우게 된다”면서 “오랜 수련과정을 통해 관련 지식과 술기를 쌓은 성형외과 전문의와 그렇지 않은 이들이 행하는 미용성형에는 질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오히려 안과와 이비인후과처럼 엉뚱한 피해를 보는 곳도 생겼다. 오랫동안 자신의 전문분야로서 각 분야에서 성형수술을 해왔지만 최근의 영역파괴 바람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안과의 경우 눈꺼풀, 쌍꺼풀 수술을 비롯해 안검성형술 등을 하기 위해 엄연히 ‘안성형과목’이라는 진료과목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성형외과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이를 확대하려해도 신뢰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비인후과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코성형을 하는 이비인후과들이 늘면서 환자들이 “이비인후과에서도 코성형을 하냐”는 질문도 따라 늘었다.

이에 대해 대한이비인후과개원의협의회 이의석 회장은 “코성형이야말로 이비인후과 의사만이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를 성형하기 위해서는 코의 내골격과 외골격 모두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데 이때야 말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지식과 술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코성형은 심미적 치료와 기능적 치료 모두를 복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코를 높이는 것만 성형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오해가 크지만 더 어려운 비과 질환도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하고 있는 만큼 코성형에 대한 의문을 거둬달라”고 강조했다.

피부는 피부과 전문의에게

피부과 : 피부과는 피부 및 그 부속(머리카락, 손, 발톱 등)의 질환과 성인 질환(성병)을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대한피부과의사회가 설명하는 피부과의 정의는 이와 같이 내려져 있다. 쉽게 말해 피부과는 피부병과 성병을 다루는 임상과로, 내과적 치료와 피부외과적 치료를 동시에 시행하는 곳이란 소리다.

또한 피부과의사회는 아예 혼란을 피하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피부과 전문의를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란 코너를 따로 마련해 두고 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피부과의사회에 따르면 피부과 전문의를 구별하기 위해선 첫째, 진료과목이 피부과로 돼있는 곳은 전문의가 아니니 병원 간판부터 살필 것. 둘째, 병원 대기실에 붙어 있는 전문의 자격증을 확인하고 더불어 피부과개원의협에서 발행한 인증패 비치 유무를 볼 것. 마지막으로, 그래도 아리송하면 홈페이지를 통한 직접 검색하거나 전화로 문의해 달라고 하고 있다.

진료영역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너도나도 진료과목으로 피부과를 내세우고 피부박피, 레이저 시술, 점 등 잡티 제거, 보톡스 주입 등 비급여진료를 하고 있어 생긴 웃지 못 할 상황인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제11차 여성비만노화방지학회 춘계학술대회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학회에서는 지방파괴주사로 불리는 PPC(phosphatidy-lcholine)와 자가혈 피부재생술인 PRP(platelet rich plasma), 흉터 성형술인 Scar revision 등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피부치료법이 핵심 연제로 채택돼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대학에서 내과전문의 과정을 마친 한 개원의사의 변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목동에서 내과로 출발했다는 A모 원장은 지금은 비만클리닉, HPL, 사각턱, 종아리축소술, 피부재생술까지 미용분야 전반에 걸쳐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일단 여러 수익구조를 찾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시작했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라 환자가 크게 늘고 있지 않지만 환자 비율로 따져보면 내과 환자와 미용관련 환자가 반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지켜보는 피부과의사회는 분통을 터트렸다. 피부과의사회측은 “타과 전문의, 일반의는 피부과에 대한 전문지식을 전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며 “이들로부터의 시술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의학과로 변신한 산부인과

이처럼 식을 줄 모르는 영역파괴 전쟁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산부인과다. 저수가에 저출산까지, 2중고에 시달려온 산부인과는 다른 과와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더라도 여성질환을 총망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요실금 치료 문제로 “여성의 요실금 치료를 누가 하는게 맞냐”며 비뇨기과와 신경전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가 되버렸으며, 최근에는 산부인과의 진료가 유방암진료, 유방성형, 미용성형, 피부 레이저 시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워지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회원들에게 산부인과 진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성기능, 유방, 요실금 등 주제에 대해 교육 등을 진행하며 추후에는 비만과 피부과, 성형 분야에 대해서도 다룰 방침이다. 의사회측은 “의료엔 신성불가침이 있을 수 없다”면서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진료 영역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회 역시 이를 거들고 나섰다. 산부인과학회는 “현재 우리나라 산부인과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하면 이제는 산부인과 진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여성 토탈 케어에 대한 방향’을 연구해야 할 때”라며 ‘유방질환 해외연수 장학제도’ 도입을 시사했다.

의사회와 학회의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개원과에서는 산부인과 대신 ‘여성병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산부인과 대신 ‘여성의원’을 간판으로 내건 서울의 한 원장은 “명칭 변경 이후 환자들의 발길이 늘었다”며 “대부분 미용관련 문의를 하는 환자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미용 쪽을 다룬다고 해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가졌던 꿈마저 버린 것은 아니”라며 “여성들을 위한 의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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