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의대 '100% 합격을 향해' 총력전
2009.09.24 21:35 댓글쓰기
[기획 4]서양의학 도입 100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되는 의사 실기시험에 대한민국 의료계는 한껏 고무돼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각 의대 및 의학전문대학원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까.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예시문항을 주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않은 만큼 제각기 닮은 듯 달랐던 의대별 대응전략을 데일리메디가 밀착 취재해봤다. 실기시험 대비과정에서 뚜렷한 색채를 나타낸 의대 및 의전원 5곳의 전략을 전격 공개한다.(가나다순)[편집자주]

‘알아서 준비’ 분위기 속 CPX교재 ‘주목’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떨어지면 지들만 손해지 뭐, 별 수 있나요. 허허.” 올해 초 발표된 의사 국가시험에서 88.4%로 전국 최저 합격률을 기록한 고려대는 실기시험이 도입돼도 합격 여부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관련 교육을 총괄하고 있는 의학교육학교실 김병수 주임교수(종양혈액내과)는 “정상적인 커리큘럼 하에서 자연스럽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도하고 있다”면서 “국시 실기시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커리큘럼의 내실을 다져 평소 실력으로 합격하게 만드는 것이 시험의 기본 취지이지, 국시에 초점을 맞춰 학원식 교육을 하는 행태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TOEIC, SAT와 같은 영어시험에 비유하면서 “뿌리가 있어야지, 표면만 핥아서 패스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실제로 일부 의대에서 매년 자행되고 있는 ‘고의적인 유급을 통한 국시 합격률 높이기’ 수법을 두고 “고대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정직한’ 합격률임을 강조했다. 고대는 실기시험 대비와 관련, 실습기간 중 임상교수에게 “학생들이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이 배우게 하라”고 권고 지침을 내리고 향후 커리큘럼 재개편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실기시험 대비 교재다. 고대에서는 지난 7월 ‘의사 실기시험 대비 CPX 가이드북’(군자출판사)을 출간했다. 김병수 교수를 비롯해 김형규 교수(신장내과), 최성재 교수(류마티스내과) 등 의대 교수진이 주축이 돼 만든 책의 분량은 무려 451쪽. 김병수 교수는 “처음에는 교내에서 쓰는 핸드아웃용으로 제작하려고 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덩치가 커졌다”며 “이참에 내·외부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평가받기 위해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정식 출간된 실기시험 대비용 교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 OSCE 대비와 관련해서는 36항목에 대한 자체제작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아낌없는 투자 아래 내실다지기 ‘총력’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부산대는 실기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기시험이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다른 의대와 다를 바 없지만, 그 대상자가 첫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의전원 1기생이라는 사실은 부담을 배가시킨다. 앞서 올해 첫 의전원 졸업생을 배출한 가천의대, 건국대, 경희대, 충북대는 100% 합격을 기록하면서 자질 논란을 잠재웠다. 실기시험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의전원 완전전환 대학이 100% 합격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부산대는 지난 2005년 2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부산의학시뮬레이션센터를 설립했다. 규모를 키워 올해 1월 이전한 의학시뮬레이션센터는 24개의 방과 시뮬레이션룸을 따로 배정해 넉넉한 공간을 자랑한다. 이밖에 방송, 시설면에서 국시원과 동일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시험 대비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OSCE 자체 동영상을 제작, 올해 초 의과대학 e-러닝 컨소시엄에서 동영상부문 1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실기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임선주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부산대 김인세 총장이 마취과 의사 출신이라서 의전원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며 “하드웨어가 빵빵하게 갖춰진 만큼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강화’를 위해 부산대가 꺼낸 카드는 무엇일까. 임 교수는 “시험 개별 항목마다 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 실습프로그램에 내실을 기했다”며 “예를 들어 ‘심장진찰 항목은 순환기내과’ 하는 식으로 요일·시간을 각각 배분해 시뮬레이션센터에 와서 스킬을 익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7월 말부터 4주간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종일학습’을 진행했다. 오전에는 자율학습을 하고, 12시부터 6시반까지는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환자-의사 역할을 해보는 식이다. 임선주 교수는 “학생들이 롤플레이를 통해 서로 판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학생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기시험을 목전에 둔 9월 1~2주에는 그간 학생들이 어려워하던 부분을 브리핑하는 ‘총정리 강의’가 오전 동안 진행됐다. 그야말로 치밀하고 꼼꼼한 완벽대비인 셈. 임 교수는 “첫 시험인 만큼 학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지도해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트레이닝 충분” 시험대비 이상無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3, 4학년 임상실습 때 많이 겪어봐서 무난히 치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의학교육실 강석훈 교수는 서울대 의대의 의사 실기시험 대비전략을 묻는 질문에 자못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 같이 답했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기보단 학생들의 실력을 믿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CPX에서 중시하는 PPI(의사-환자 관계) 같은 경우 이미 트레이닝이 충분히 돼 있다. OSCE도 각 진료과를 돌면서 실습한 내용이 아니냐”며 “그래도 첫 시험이니 만큼 학생들 부담을 덜기 위해 모의시험을 보게 했다”고 말했다.

7월 22일~27일까지 5일간 이뤄진 모의시험에서는 CPX 8문항을 4일간, OSCE 12문항을 3일간 테스트했다. 교수와 펠로우로 구성된 진료과별 채점단이 하루 24명씩 3일간 피드백을 담당했다. 시험은 오전 8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진행됐다. 강 교수는 “채점 결과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채점한 표준화환자(SP)가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해줬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OSCE는 다른 의대와 동일한 공동교재(‘기본임상술기지침’)를 구입하도록 하고 CPX는 자체 제작한 105쪽 분량의 제본을 무상으로 배포한 상태다. ‘CPX 학생지침서’라는 명칭이 붙은 해당 교재는 올해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 내년엔 좀 더 보완할 계획이라고 강 교수는 밝혔다. 시험대비용으로 별도 제작한 동영상은 없지만 본과 2학년 2학기 수업인 ‘환자의사사회’에서 신체검진 항목을 강의한 동영상을 학생들이 이미 시청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는 반응이다.

강석훈 교수는 실기시험 도입으로 모든 의대의 학사 일정이 변경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실기시험 일정과 맞추기 위해 학생들의 방학이 실질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면서 “개인적인 바람으론 학생들이 방학을 즐길 권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 의대가 머리를 맞대 기존 커리큘럼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동 해결과제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10년 전부터 실기시험 방식 ‘익숙’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1997년 의대를 설립한 성균관대는 1999년 본과 1학년부터 PBL 과정을 통해 임상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해왔다. 실습 또한 본과 1학년부터 매주 2시간 ‘환자와 의사’ 과목을 통해 일찌감치 기본적인 임상학습을 마스터해온 상황이다. 성균관의대 내과학교실 최윤호 교수는 “임상수업을 원래부터 일찍 노출하는 게 우리의 기본 원칙”이라며 학풍을 소개했다. 10년 전부터 CPX, OSCE를 익숙히 학습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윤호 교수는 “본과 1~2학년 때부터 웬만한 기본 임상수기교육을 모두 하며, 평가방법도 현재의 OSCE 채점 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평가는 본과 1학년 학기말 고사 때 OSCE 10문항을 보고 본과 2학년 말 OSCE 또는 CPX 형태의 10문항을 치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본과 3학년 2학기 때도 병동실습을 마치고 기본적 진료능력 평가를 실시하는데, 서울·경기 CPX 컨소시엄이 조직된 이후로는 본과 4학년 여름에 매년 실습평가를 해오고 있다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국시 실기시험 방식은 4년 동안 충분히 익숙해져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평소 대비가 철저했다고 해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기자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8월 10일은 CPX 컨소시엄 평가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병원 지하 3층에 위치한 의학시뮬레이션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 출신 코디네이터는 “매년 하는 컨소시엄 테스트에서 실기시험 대비 쪽에 좀 더 포인트를 맞춘 평가”라고 이를 소개했다. CPX 컨소시엄에서 원조하는 표준화환자(SP)외에도 자체적으로 SP 교육을 담당하는 트레이너 조교를 두고 있는 성균관대는 상시 SP를 모집해 훈련, 수업 등에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임의로 선정된 CPX 주제는 ▲우리아이 예방접종 ▲심한 급성복통 ▲간헐적 피로감 ▲가슴 답답 ▲어지럼증 ▲허리아파 ▲불안 ▲가슴통증 ▲남편폭력 등 10항목이었다. 최윤호 교수는 “학습이 부진한 학생이 있기 때문에 난해한 문항을 집중 반복하는 등 별도의 추가 교육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성균관대는 9월초 일주일에 걸쳐 국시원에서 공개한 모든 문항을 리뷰하는 ‘총정리 학습’을 병행했다.

꼼꼼한 모의시험으로 ‘집중 대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짝수시험지 문제 확인”, “종료 2분전”

8월 7일 오전 10시 36분. 연세의대 뒤편에 새로이 자리 잡은 임상시뮬레이션센터에서는 실제 실기시험과 동일한 형태의 모의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연세의대 임상 Practice위원회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박인철 교수(응급의학과)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국시랑 똑같이 해보자는 생각에 점수 배점도, 시간도 동일하게 책정하고 CPX와 OSCE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방식까지 그대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의대와 마찬가지로 “평소 임상실습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자부하지만, 시험공부는 또 다른 문제라고 판단,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집중 대비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국시원이랑 동일한 환경에서 모의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 시험대로 CPX와 OSCE를 번갈아 보게 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CPX 표준화환자(SP) 활용 문제가 걸려 있어서 그렇다. 자체 SP를 넉넉히 보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대학은 지역 CPX 컨소시엄에서 SP를 들여오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CPX는 CPX대로, OSCE는 OSCE대로 시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연세대가 국시원이 제시한 조건과 동일한 시험환경을 조성해 모의시험을 치른 것은, 그만큼 실기시험 대비에 대한 열망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인철 교수는 “일부 교수는 ‘학교가 학원이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중간지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중순 다른 의대보다 뒤늦게 임상시뮬레이션센터를 설립한 연세대는 업그레이드된 시설과 규모로 주목 받고 있다. CPX&OSCE 술기실습실과 시뮬레이션실이 별도로 편성돼 있는 것은 기본, 대형 슬라이드를 볼 수 있는 강의실도 마련돼 있다. 박 교수는 “예전부터 만들자는 얘기는 나왔는데 예산 문제로 좀 늦게 지어진 감이 있다”며 친절히 내부를 안내했다. 올해는 실기시험 대비 전용 공간으로 쓰일 것이지만 내년부터는 시뮬레이션실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