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진출 성공한 의사의 '영어論'
2009.10.04 21:43 댓글쓰기

‘뉴욕에서 의사하기’ 고수민 http://ko.usmlelibrary.com
‘의료와 사회’ 한정호 http://blog.hani.co.kr/medicine
‘수줍은 느낌의 미소’ 김현구 http://medwon.egloos.com


[화제 상. 닥터 파워 블로거 3인3색] 진료 틈틈이 컴퓨터 앞에 앉아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의사들이 있다.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등 다양한 신분으로 의료직에 종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고 댓글로 반응을 살피는 파워 블로거들. 사이버 공간에서 이들이 누리는 인기는 여느 연예인이나 작가 못지않다. 블로그에 게재한 영어학습법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를 책으로 출간한 ‘뉴욕의사’ 고수민씨, 거침없는 사회 비판으로 쓰는 글마다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소화기내과 전문의 한정호씨, 고된 인턴생활의 면면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인턴일기’의 주인공 김현구씨를 만나 의사로서의 삶과 블로그 관리의 쏠쏠한 재미를 들어봤다. 댓글 하나에 울고 웃는 블로거 닥터 3인이 풀어놓는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공개한다.[편집자주]

흔히들 ‘영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번쩍 뜨이는 방법론을 제시할수록 돈이 모이는 우리네 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르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인기 강사가 집필한 교재 3권 정도만 독파하면 영어가 술술 흘러나온다던지, 몇 번 깜박이는 단어만 보고 있으면 어휘는 완벽 마스터할 수 있다든지 하는 광고로 독자를 현혹시킨다.

여기 날마다 새로운 영어학습법이 빗발치는 시대에서 “영어공부는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그저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는 이가 있다. 우직한 자세로 영어정복과 미국 진출에 도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뉴욕에서 의사하기’의 인기 블로거 고수민씨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뉴욕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부속 몬티피오레 의료센터(Albert Einstein College of Medicine, Montefiore Medical Center)에서 재활의학과 전공의 3년차로 근무 중인 고수민씨는 한국에서 원광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1993년 군의관을 제대하고 잠시 개원의로 발길을 돌린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미국행을 결심, 미국 의사시험과 영어를 함께 공부하면서 장장 5년간 수험생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고씨는 이 기간 축적해둔 미국 의사시험에 대한 정보와 영어공부 노하우를 지인의 조언으로 현지에 와서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한다. 오늘날 총 방문자수 1500만명에 육박하는 ‘뉴욕의사’ 블로깅의 태동이다.

고수민씨는 최근 블로그의 인기 포스트로 자리 잡은 ‘영어공부 제대로 하기’ 시리즈를 가다듬어 책으로 펴냈다. 서점에 가면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 내 생애 마지막 영어공부법’이라는 제법 거창한 제목을 단 영어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제 책이 기존 영어교재와 가장 다른 점은 영어 학습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만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웃음) 책의 서두부터 영어가 꼭 필요한 사람만 공부하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어는 열심히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든가, 오래 열심히 한다고 해도 결국 원어민처럼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처음엔 반발이 거세지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써본 결과 대다수가 오히려 의욕이 솟았다고 해주시고, 현실을 파악하게 됐다고 격려해주셔서 책을 낼 용기가 생긴 겁니다.”

140byte 미만의 짧은 글만 올릴 수 있는 트위터(twitter) 같은 블로그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서 고수민씨가 올리는 글은 다소 ‘양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그의 블로그에서 포스트 하나만 클릭해도 한없이 늘어나는 스크롤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친절하면서도 명료한 설명이 쏙쏙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술술 잘 읽힌다.

“설명이 자세한 이유는 아마도 제 자신이 어려운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복잡한 개념을 설명할 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걸 가장 쉬운 말로 바꾸고 또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다보니 의사가 되고 나서도 환자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병에 대한 설명이라도 이해가 순간적으로 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죠.” 이렇게 설명하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고수민씨는 미국에서도 후배 전공의들에게 ‘참 잘 가르쳐주는 선배’로 통한다.

누가 봐도 친절하고 상세한 포스트 작성에 그가 투자하는 시간은 평균 서너 시간. 여기에 댓글 관리 등 전체 블로깅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갈 때가 다반사다. 지난해 매주 3개의 글을 올리면서 의욕을 불태웠던 그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현재는 1개를 업데이트하는 수준으로 줄였다.

대신 포스트 하나하나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구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방침이다(‘뉴욕의사’ 블로그를 정기 구독하는 누리꾼만 2만 명 이상이다). 매주 1개로 줄였다고 해도 글 분량에 댓글 관리시간을 생각하면 전업 블로거가 아닌 그로서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것 같다.

“포스트가 일주일에 하나 정도 나오는데 주로 글을 쓰는 시간은 목, 금, 토요일 저녁입니다. 목·금요일은 병원에서 퇴근하고 아이를 재운 후 밤 10시경부터 한 시간정도 쓰다가 잡니다. 글도 일단 탄력을 받으면 더 잘 써지는 경향이 있어서 때로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몰두하기도 하죠. 그래도 다음날을 위해 되도록 늦게 자지 않으려고 해요. 이렇게 이틀간 총 2~3시간을 투자해서 글을 대강 써놓고 토요일 저녁엔 써놓은 글을 다듬는 작업과 사진 등 추가 작업을 합니다. 그러고는 일요일 저녁 최종적으로 한 번 더 보고 발행을 하죠.”

월·화요일에는 퇴근 후 댓글을 다는 데 한 시간 가량을 쓴다. 오직 수요일만이 고씨가 정한 ‘블로그 휴일’이다. “주중 낮에 일을 하고, 주말 낮은 가족들과 보내기 때문에 특별히 가정과 일에 소홀히 한다는 느낌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짐작은 했지만 ‘스타 블로거’가 되는 일이 예삿일은 아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시간안배, 다양한 관심사를 흥미롭게 풀어낼 줄 아는 남다른 글 솜씨와 센스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상업성’이 목표는 아니지만, 고씨는 블로그 광고를 통해 이러한 노고를 금전으로 일부 보상받고 있다. 현재 고씨의 블로그에 실리는 광고는 총 4개. 이 중 유료광고를 게재하는 2개 업체에서 월 20만 원가량의 광고비를 받는다. 소소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지만 누리꾼들과의 소통 결과로 얻는 수입인 만큼 심리적 만족감은 상당하다.

“2008년 초 방문자수가 폭증해서 지금 수입의 거의 10배를 올린 적도 있었어요. 그 후로 서서히 줄어들긴 했지만요. 저 같은 경우는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즐거움을 얻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블로그 수입에 만족합니다.”

누리꾼의 친절한 건강정보 길잡이이자 영어선생님으로, 해외진출을 꿈꾸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멘토로 앞장서온 고수민씨는 필경 현지 환자들에게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의사가 될 것이다. 그가 미국의 중심 뉴욕에서 탁월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명성을 떨칠 그날을 기대해 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1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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