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꽉 찬 인턴의 고생만발 청춘일기
2009.10.06 22:00 댓글쓰기
‘뉴욕에서 의사하기’ 고수민 http://ko.usmlelibrary.com
‘의료와 사회’ 한정호 http://blog.hani.co.kr/medicine
‘수줍은 느낌의 미소’ 김현구
http://medwon.egloos.com


[화제 하. 닥터 파워 블로거 3인3색]블로그 시작 1년 6개월 만에 총 방문자수 600만명, 하루 평균 1만5000명에 달하는 방문자수를 자랑하는 스타 블로거 김현구씨(원광대학교병원)는 블로그 전문사이트 이글루스의 숨은 강자다.

의대에서 실습하는 학생을 뜻하는 폴리클(Polycle)이라는 닉네임으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그는 직접 만나보니 ‘수줍은 느낌의 미소’라는 블로그 이름대로 풋풋한 미소를 간직한 스물여섯 청년의사였다.

“이글루스 5주년 행사에 갔는데 사람들이 저보고 수줍음을 왜 그렇게 많이 타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수줍음쟁이라나. 그래서 그걸 그대로 블로그 이름으로 지었어요. 의사가 운영하는 블로그라는 분위기가 많이 안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그가 블로그를 개설한 2007년 말 처음 쓴 글 ‘의과대 생활이 진정 힘든 이유’는 다음 블로거뉴스를 타고 삽시간에 인기 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의대생의 노트정리법을 소개한 포스트에 400여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김현구씨는 ‘노트정리 이야기’ 시리즈를 아예 기획으로 연재하게 된다. 올해 초 연재를 시작해 현재 15차까지 연재 중인 그만의 노트정리 노하우는 구미에 맞는 학습법을 찾던 누리꾼들 사이에서 일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그가 알려준 대로 학습을 진행한 어느 고등학생은 “4, 5등급이었던 수학성적이 1등급으로 올라가는 기적을 경험했다”며 메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알맞은 필기구 선택 방법부터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해당 글에 관심을 가진 이는 비단 수험생뿐만이 아니었다. 블로그에서 인기를 끈 글을 묶어 책으로 내는 일명 ‘블룩(Blook)’ 출간 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온 것이다.

“노트정리법을 책으로 한 번 내보지 않겠냐고 출판사 4군데서 연락이 왔어요. 그중 중앙북스와 최근까지 얘기가 오갔는데 인턴 일하느라 바빠서 출간은 내년으로 미뤄둔 상태예요. 한참 정신없을 때 출판사에서 4월까지는 지속적으로 글을 써줘야 한다고 해서 아쉽지만 본업에만 충실하기로 했죠.”

의사 블로거로서 김현구씨의 블로그가 단연 눈에 띄는 이유는 ‘인턴일기’ 때문이다. 처음 기자가 그의 블로그를 주목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인턴일기’에는 말로는 다 못할 고된 인턴생활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병원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아직 앳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린이환자에게 “아저씨”라고 불린 굴욕적인 일화나, 늦깎이에 인턴을 시작해 갖은 고초를 겪다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고 만 동료 의사의 사연을 소개한 글에 몰입하다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의사와의 거리가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잔잔한 일상을 재치 있게 그리면서 때로는 의료계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예리하게 꼬집는 뛰어난 글 솜씨는 ‘글로 먹고 산다’는 기자를 부끄럽게 하는 수준이다.

“의사로서 성장해가는 일기를 남기고 싶었어요. 처음에 인턴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어떤 의사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우연히 보고 ‘나도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였고요 어려서부터 유난히 글 욕심이 많아서 고등학교 땐 글짓기대회에 응모해 300만원의 상금을 탄 적도 있죠. 글을 쓰면 당시 내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평범하면서 좋은 의사 되고 싶다”

“인턴 업무 외의 시간엔 글만 쓴다”는 김현구씨의 일상엔 사실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자리 잡고 있다. 학부시절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어려운 이웃들과 병원 근무로 접한 환자들의 딱한 사정을 블로그를 통해 알리고 성금을 모금해 전달하는 ‘나눔로그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지난해 촛불정국 때 이른바 ‘촛불 의료봉사’를 총괄하면서 서울-익산을 바삐 오간 현구씨는 당시 인터넷카페를 통해 자발적 후원금 1000만원이 순식간에 모이는 광경을 보고 나눔로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웹이라는 가상의 현실에서 모을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을 그 때 봤다”고 그는 회고한다.

지난 6월말 병원에서 만난 뇌종양 소아환자 지민이가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사연을 소개한 ‘열살 지민이의 뇌종양 수술비 마련을 도와주세요’라는 포스트로 현재까지 모인 성금이 500만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과 자녀 3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파지를 모으며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50대 여성 영미씨(가명)의 기구한 생활을 전하며 다시금 누리꾼의 손길을 이끌고 있다. 방송국에서 이러한 활동을 휴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지만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거절했다. ‘나눔’을 실천하고픈 순수한 의도를 매스컴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 현장르포 동행, 좋은나라 운동본부 등에서 한번 찍어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방송을 통해 성금을 모으면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죠. 결국은 정중히 거절했지만요. 지금은 나눔로그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이 대상자 분들에게도 더 좋을 것이란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렇듯 온라인에서 널리 퍼진 김현구씨의 ‘착하고 봉사하는 이미지’ 덕에 때로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느 날 대학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목격,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꿀밤을 때리게 된 현구씨는 당시의 격한 분노를 담아 글을 썼다. 김현구씨에게 있어서 블로그는 ‘나눔로그 프로젝트’나 ‘노트정리 이야기’와 같은 기획연재가 진행되는 계획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일상을 솔직히 기록하는 소통의 창(窓)이기도 하다. 사소한 다툼으로 얻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다소 흥분된 어조로 포스트를 남긴 현구씨는 다음날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제 의견에 동조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착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폭력을 쓰다니 실망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더라고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이라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럴 때 기분이 참…뭐랄까. 그 뒤론 일부러 부정적인 이미지의 글도 써보고 그랬어요.(웃음)”

의사로서 김현구씨가 가진 궁극적인 목표는 참의사가 되는 것이다. “멋진 의사보다 평범한 의사, 훌륭한 의사보단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웹상에서는 ‘의사 김현구’와는 별도로 ‘블로거 폴리클’로 남아있고 싶다는 김현구씨. 장장 2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봉사활동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한 개인의 ‘아름다운 힘’을 느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1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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