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지 3년 '전공의 노조' 출항도 못해
2009.06.27 03:20 댓글쓰기
[기획]지난 2006년 국내 처음으로 설립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전공의 노동조합이 개점휴업 상태다. 노조원의 저조한 가입률과 활동 부족으로 별다른 활동을 찾아볼 수 없다.

전공의 노조는 의사들이 만든 첫 노조라는 점에서 설립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일반 노동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 종사자가 만든다는 사실이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출범 3년 됐지만 성적표 초라

사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노조를 만들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대한병원협회를 비롯한 병원계와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 설립했지만, 기대와 달리 활동은 매우 부진했다.

젊은 의사들의 수련환경 개선을 기치로 출범한 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살인적인 수련 환경이 노조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동력을 제공했지만, 바쁜 전공의들은 노조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은 전공의 노조 향배에 가시밭길을 예고한다.

간호사와 행정직 등 병원계 종사자로 구성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임금과 후생복지 등 전반에 걸친 권익을 주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물론, 의사 직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공의 노조 소식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의료계 신문에서조차 자취를 감췄다. 일각에서는 이미 “페이퍼 노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한다. 의료계의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전공의 노조가 잠잠한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의사의 ‘처우개선과 법적 지위보장’이라는 가치를 내건 전공의 노조의 현재 성적표는 초라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여전히 일선 전공의들이 척박한 수련환경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고, 노조라는 효율적인 카드를 쥐고 있음에도 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왜일까.

그 원인을 분석하면 여러 이유가 도출된다. 우선 전공의 노조는 노조원이 4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만 활동하기 때문에 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구조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상근직 확보와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모단체인 전공의협의회 역시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다.

더 큰 고민은 전공의들이 예상과 달리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련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전공의 노조의 동력이 감소하고 있다. 구체적인 노조원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활동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저조하다는 분석이다.

전공의들 대부분 사실상 노조활동 불가능

진료과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전공의 1년차가 되면 당직 등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체력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일정 부문 숨을 돌릴 수 있는 3년차 이상이 되면 전문의 시험이라는 관문이 전공의를 기다리고 있다. 4년차에는 전문의 시험뿐 아니라 자신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병원에 남을지, 아니면 봉직의나 의원을 개원할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사실상 노조 활동에 주력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연차가 짧을수록 교수나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다. 서울에 근무 중인 한 전공의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말할 내용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족한 시간을 쏟아가며 노조 활동을 해야 할 별다른 장점이 없다는 시각이다. 병원의 교수들 역시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는 전언이다. 서울 강북 대학병원 A 교수는 "레지던트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앞길 생각해서라도 노조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전공의협의회가 전면에서 폭력 사건이나 부실 수련 등 전공의 애로사항을 1차적으로 담당하기 때문에 굳이 전공의 노조가 움직임 필요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사실상 협의회가 노조에 준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굳이 활동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공의협의회 정승진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쉽게도 노조원을 확보하는 길이 어렵고, 일반 전공의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의사와 노조가 생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거부감도 많고, 전공의들 역시 개인적인 부당함이 생겨도 참고 넘어가는 경향이 많다”며 활동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정 회장은 “곰곰이 따져보면 노조원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며, 그렇다고 단위병원 대표를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조활동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협의회는 다음 정기총회에서 병원 대표자가 노조원이 되는 안건을 공식적으로 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전공의 처우 개선에 유용한 카드임은 분명

전공의 노조를 출범시킨 이 혁 전 전공의협의회장은 “일부에서 전공의 노조를 두고 ‘페이퍼 노조’라고 평가 절하하는 경우가 있으나, 설립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그동안 병원 측과 협상을 벌일 때 전공의 처우 개선의 유용한 카드로 활용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노조의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고 재차 강조했다. 사안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지역, 병원별로 전공의 급여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등 수련환경 양극화로 전공의 노조 필요성이 거론될 가능성도 일부 점쳐진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최근 64개 회원 병원의 내과 레지던트 3년차를 대상으로 2008년도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을 통해 연봉을 집계한 결과, 급여가 최대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전공의 간 양극화 현상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 64개 병원 중 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곳은 전체 3%에 불과한 2개 병원에 그쳤다. 45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 6%(4개), 4000만원 이상 4500만원 미만 14%(9개), 3500만원 이상 4000만원 미만 33%(21개), 3000만원 이상 3500만원 미만 30%(19개), 3000만원 미만은 14%(9개)로 확인됐다. 소득이 적고 수련환경이 열악한 병원을 중심으로 노조 활동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공의 노조는 설립 당시 의료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임 집행부의 고민이었던 노조원 확보라는 난관을 넘어설지 주목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0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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