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女)의사 전성시대 또 다른 '슬픈 단상'
2009.07.01 21:58 댓글쓰기
[기획]최근 몇 년 사이 의료계에는 여성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더 이상 ‘여자 수석졸업생’과 ‘여자 외과의사’ 등이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의대의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2005년 4명 중 1명꼴이었던 여학생 비율이 2006년엔 2명 중 1명이더니 이후 여학생 수가 남학생 수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 정도 증가 속도라면 수년 내로 남녀 의사 비율이 비슷하게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성 의료인력이 증가하면서 의료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여교수 채용과 승진 문제를 비롯해 전공의 선발과정의 불평등을 비롯해 의료현장에서의 차별대우, 성폭행, 임신과 육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의료계 여성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가 이것 뿐일까.



우리나라 전국 41개 의대에서는 매년 평균 3000명 이상이 새롭게 의사면허를 취득’ 배출되고 있다. 지난해는 3058명이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을 졸업했다. 이 중 41.6%인 1274명이 여학생이었다. 과거 전체 인원의 약 30% 수준을 유지하던 의대 여학생 비율과 비교했을 때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이처럼 여학생 수가 급증한데는 여러 사회적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전원 제도 도입이 가장 크다.

의전원은 남학생에 비해 결혼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과 군복무로 인한 시간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여학생에게 더 넓은 진입통로가 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의과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28.3%이고, 의전원의 여학생 비율이 53.2%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경향대로라면 이들이 사회에 나가 남의사 반, 여의사 반인 시대를 만들 날도 머지않았다. 그야말로 의료계에 여풍(女風)이 몰아치는, 여의사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여의사 증가에 따라 의료계 내부에선 여의사의 권리 신장 및 복리후생 등에 초점이 맞춰져 여러 논의가 이뤄져 왔다. 그러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또 있다.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의 특성상, 여의사 증가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급 차질을 빚고 있다.

물론 여의사 증가는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다양성을 지닌 의사가 배출된다는 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를 독려하면서도 그 상대적인 부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방부 고민 커…수요 커지는 군의관 수급 숙제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곳은 역시 국방부이다. 국방부는 군 의료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군 특수의학 분야에 맞는 의학교육과 진료, 연구를 맡을 국방의학원을 설립해 군의관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의과대학 및 의전원에 여성 비율이 증가하고 의전원 입학자 중 군필자가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향후 10년 후에는 현재 입대자원 대비 절반수준 정도의 의무복무 군의관 인력확보가 예상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 최근 3년간 입대한 단기군의관 수 변동추이를 살펴본 결과, 2007년도에는 812명이었던 것이 2008년도에는 729명, 2009년도에는 860명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군의관 수급에 영향이 없으나, 병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되는 2015년 이후에는 부족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현재는 총 41개 의과대학 중 27개 대학만 의전원으로 전환됐지만, 이후 의전원이 확대되면 군 의료 입대자원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내용을 담아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박진 의원(한나라당)은 국방의학원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의료계는 “국방부의 국방의학원 설립이 의사인력 과잉과 민간의료기관과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고 반대하면서도, 국방부가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료계는 현행 의대정원이 늘어나지 않는 선에서 국방의학원 설립을 막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군의관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학생 증가에 따른 병력 감소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정부 부처는 또 있다.

공중보건의사를 총괄하는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군의관을 먼저 배치하고 공중보건의를 배치하기 때문에 군의관이 부족하다면 공보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여자 의대생 증가와 의전원 확대 등에 따라 군의관이 부족하다는 전망에 따라 공보의 수급현황에 대해서도 연구용역을 맡겨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공중보건의 현황을 살펴보면 2000년 3321명에 이어 매년 증가해 2005년 5194명, 지난해 5049명, 올해 5318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또한 국방부와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보건소, 교도소, 국립병원, 병무처 등으로 파견되는 공보의 부족현상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으나 향후 발생할 문제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공보의가 줄어든다면 복지부가 갖고 있는 공보의를 활용한 공공의료서비스 강화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근무여건이 열악한 교정시설에 지원되는 인력이 줄어, 재소자가 외부병원을 이용하고 이에 투입되는 국가예산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전영진 대변인은 “올해는 3개 대학 의전원생만 졸업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10개 대학 의전원 졸업생이 쏟아지는 내년부터는 공보의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 것 같다”면서 “대략 20~30%는 줄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이어 “이처럼 공보의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공보의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예산절감 차원에서 공보의를 지방중소도시 병원에 배정하고 있는데, 이처럼 불필요한 공보의 배정은 줄여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 같은 군 의료인력 감소는 여의사가 전체 의사에서 20%를 차지하던 때에서 40%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맞는 어두운 이면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10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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