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만 믿고 다른 병원으로 가도 될까
2008.12.29 21:52 댓글쓰기
[기획 1]다리가 후들 거렸다. 장장 7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친 후, 노곤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켜자 5분 간격으로 십 여 통의 전화가 남겨져 있었다.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병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 지난해 가을 돌연, P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L선배였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라고 중얼거리며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얼른 짐 싸라. 우리 이 병원에서 다시 호흡을 맞춰 보자. 이사장도, 재단도 센터를 '밀어주기'로 약속했고, 장비도 최신 장비로, 연구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우리 둘이 함께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있겠냐."

나는 올해 초 까지만 해도 지방 소재 A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심혈관센터 소장으로 지냈다. 지방 병원에다 흉부외과라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어느 누구 하나 문 두드리는 전공의도 없었고, 손발을 맞추던 스탭들조차도 하나둘 씩 서울行을 택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사실 내가 앞으로 '칼잡이'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까맣게 잊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명예와 비전에 대한 그림은 어느새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선배의 '야심찬' 목소리가 귀에 꽂히는 순간, 그제서야 신경 세포가 쭈삣쭈삣 스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그랬다. 사실 L선배는 겉보기에도 강단이 있어 보이는 '확실한' 의사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마음 속에는 늘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일단 시작하면 '제일'이어야 했으므로 선배들이, 교수들이 칭찬해 주고 1등이 될 때까지 중단하는 법이 없었다. 한 가지 일을 해내면 곧바로 다른 일에 덤벼들어 수술 성적에서도 늘 '수석'을 차지했다.

나와 선배의 인연은 1984년 J병원 전임의 시절 선후배였던 때로 올라간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 푸른 수술 가운에 메스 하나 손에 들었던 그 시절, 그렇게 호흡을 맞추면서 선천성 심장질환, 성인 심장질환, 대동맥 질환 등 심혈관 질환 치료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미 그 때부터 L선배를 믿고 따르는 ‘충성환자들’이 줄을 이었으니 후배로서 동경과 믿음은 더할 나위 없었다. 세월이 흘러 다른 곳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음에도 나는 손을 내밀어 준 L선배를 믿고 따라간다면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이곳을 떠나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 선배가 있는 이 곳, P병원으로 둥지를 틀었다. 결단이 확실하게 서게 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던 내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묘한 흥분까지 느껴졌다. 물론 A병원에서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과,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환자들을 뒤로 한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를 믿고 A병원을 찾아주었던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기도 했다. 자신의 심장을 맡기는 의사라면 누구나가 절박하고, 또 절박한 심장이겠지만 나를 의사보다는 진정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환자들이 있어 행복했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은 컸다.

그로부터 10개월 정도가 흐른 어느 날이었을까. 컨퍼런스를 마치고 복도를 걷고 있는데 P병원의 ‘터줏대감’으로 불리우는 소화기내과 한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여기가 무슨 이 사람, 저 사람 받아주는 시장도 아니고…” P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들려왔던 '수군거림'이 최근 들어 영 마뜩치 않았지만 직접 귓속을 타고 흘러드니 괘씸한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다.

물론 그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검증되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라 신뢰가 가지도 않을 것이고, 대한민국에서 보수 집단의 대명사격인 의사 사회 내에서 어쩌면 이는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실력을 의심하려고 그저 ‘안테나’를 세우는 듯한 그들의 행동이 자꾸만 불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평생 의사로서 환자들 옆에 있고 싶은 '나는 흉부외과 의사다'. 생명의 최전방에서 그들을 사수하고 싶고, 진료와 함께 연구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줄 토양이 필요했다. 그래서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P병원과 선배의 약속은 장밋빛 미래를 위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현실은 많이 달랐다. 재단 측에서 제시한 정년 연령은 일단 60세였고, 이후 술기 능력이나 환자 증가 추이를 고려해 정년에 반영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봉과 지원 조건들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났다. 나 역시 선배의 말만 믿고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던 점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P병원의 재무 상태와 평판도, 의료사고 여부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봐야 했지만 워낙 비밀리에 진행된데다 ‘알음알음’으로 이뤄지는 분위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도 있었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할 ‘근로계약서’라는 것이 의료계에서, 특히 의사들 사이에서는 생소하다. 약속과 신의는 언제든 저버릴 수 있고, '언제든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자체는 페이닥터들 사이에서는 팽배해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의사들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근로 계약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나와 L선배 같은 관계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스카우트’는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는데 애로 사항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료계에서는 의사의 구인, 구직은 관행적으로 의사간 선후배, 학연, 지연 등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

요즘 들어 나는 나만의 술기 능력과 노하우를 특화시킬 수 있는, 그리고 이를 인정해주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흉부외과 의사로서 나의 장점에 대한 부가 가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전문적인 통로가 필요했지만 단편적이고, 직선적이었던 탓에 내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해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L선배 역시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L선배는 당초 자신이 '호언장담'하며 약속했던 사항들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지만 말그대로 중간자적 입장에서 난처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내 선배는 “조금만 기다려보자. 함께 수술 실력을 검증해 보이고, 환자수가 증가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였다.

사실 P병원은 최근 몇 년 동안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명의’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그러나 기존 멤버들은 확실한 기준이나 검증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입되는 의사들에 대해 무작정 환영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일부 대학병원들 사이에서는 “P병원이, 조직 융화도나 결속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더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8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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