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자율징계권' 공허한 메아리?
2008.07.03 03:21 댓글쓰기
[기획 2]'자율징계권'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해바라기 사랑'은 진행형이다. 의협은 지난 수십 년을 '자율징계권' 쟁취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책 당국과의 간극도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협은 왜 '자율징계권'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을까?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의료계 종주단체의 위상 확립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일정 부분 회원 통제가 가능한 권한도 확보하게 된다.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회비 납부율과 보수교육 문제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하지만 의협이 가야 할 길은 너무 멀어 보인다.[편집자주]

의협의 본격적인 자율징계권 확보 움직임은 15년 전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의협은 효율적인 조직관리 등을 이유로 징계권한을 법규성격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당시 관련 부처는 의료인에 대한 처분을 상당 부분 의협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개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1994년은 군사정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해이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의협은 의료개혁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품위를 손상시킨 회원에게 행정기관에 조치를 의뢰하는 등 제재를 강화했다. 1995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시행하고 있는 변호사 징계제도와 비슷한 체계를 마련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의협은 시도 의사회에 징계위원회를 운영했다.

1996년에는 협회의 위상제고 및 회원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회원 자율징계권 보장 요구서를 행정쇄신위원회에 제출했다. 주 내용은 징계권 부여와 함께 정관 위배사항도 면허자격 정지처분을 하는 방안이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은 자율징계권을 바라보는 의협의 시각을 한층 강화시켰다. 집단 파업 등 의사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변화하면서, 내부의 자정능력과 자율적인 회원관리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이 때 윤리위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1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의협은 특히 1999년 만들어진 의사윤리지침(안)을 바탕으로 법조문 형식의 새로운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해 같은 해 11월에 공포했다. 다음 해인 2002년에는 ‘의협 중앙 윤리위원회의 바람직한 기능과 역할’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 회비와 부담금 미납회원 등 비협조적인 회원에 대한 제재강화가 제시됐다. 2003년에는 회원징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9월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의 행정권한 가운데 회원징계와 관련된 일부를 위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개정 청원안을 제출했다.

2004년은 자율징계권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해로 기록됐다. 두 차례에 걸쳐 중앙윤리위 위원과 시도윤리위원들이 모여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이어 ‘의사단체의 자율권에 대한 심포지엄’도 개최됐다. 윤리위는 별도로 회원 비리사실을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회원자율정화신고센터'를 설치토록 했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을 면담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던 2006년도 또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역시 말뿐이었다. 특히 이 해에는 활발한 입법 활동이 전개됐는 데,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과 통합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회원징계권에 대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그들이 말하는 자율징계권 확보 이유

그렇다면, 의협이 왜 이토록 '자율징계권'에 목소리를 내는지 관심이 쏠린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정책당국의 외면에도 의협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의협이 표면적으로 '자율징계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국민의식 수준 향상에 따른 전문가단체로서의 위상 확보다. 전문가 단체에 걸맞은 윤리성을 확보하고, 전문직의 사회적인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수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징계권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의사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징계를 내림으로써, 대외적인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는 측면도 고려된 듯하다. 현행 의료법상 협회가 내리는 최고의 징계는 3년 회원 정지 등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매번 '솜방망이 처벌' 또는 '제식구 감싸기' 등으로 비치는 상황이다. 의협은 이 같은 여론의 흐름에 다소 억울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대한의 징계를 내렸다"고 위로해 보지만, 그 뿐이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이익단체의 이미지가 강해진 의협으로서는 자율징계권 확보가 더욱 시급해졌다.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면 '회비 납부'와 '보수교육'이 수면위로 부상한다. 회원들이 협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회비 미납이다. 보수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한 맥락이다. 물론 의료기관 경영의 어려움, 시간의 부재 등도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협회에 대한 불만으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회비 수납에 대한 의협의 어려움은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대감이 높아진 회원들은 날로 다양한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갈수록 첩첩산중인 셈이다. 이 같은 난국을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이 '자율징계권' 확보임은 자명하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자율징계권 확보에 대한 의협의 입장은 변함없다. 국내 최고 전문가 단체가 자율징계권이 없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사실이다"라며 "내부적으로 다양한 준비와 함께 징계(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정책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변호사단체는 이미 자율징계권을 확보해 스스로 자율정화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의협은 처지는 전혀 다르다"며 "일각에서 의협이 자율징계를 행사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수십년 동안 준비해 온 사안인 만큼 자신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자율징계권에 필수적인 의료법 개정을 담당하는 정치권의 시각은 조금 다른 듯 하다. 역량을 떠나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야만 자율징계권 확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통합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의료인 단체의 자율징계권 확보는 일정 부분 필요한 부분인 점을 인정한다. 특히 변호사 단체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의사단체들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자율징계권을 갖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자율징계권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고, 신뢰받는 전문가단체로서 의협이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는 봉사 활동뿐 아니라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의사단체의 진정성이 드러날 때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자율징계(안) ‘당근과 채찍’ 초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6년 계간 의료정책포럼 보고서에서 대한변호사협회, 대한공인회계사협회 등의 사례를 연구해 '회원 자율징계(안)'을 마련했다. 이 연구보고서를 통해 의협이 제시하는 자율징계(안)은 다음과 같다. 다만 의협은 세부적인 사안은 현재까지도 논의 중이므로, 절대적인 (안)이 아님을 밝혀왔다.

의협이 자율징계를 통해 회원에게 부과하는 징계 수위는 과태료를 비롯해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으로 나뉜다. 징계사유는 '의료법 위반'과 '중앙회의 정관 미준수' 등이다. 최근 불거진 통영 의사 성폭행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에서부터 보수교육 미이수 같은 정관 위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징계위원회 구성은 위원장 1인을 포함해 15인으로 한다. 협회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게 되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공무원 2명과 의협이 지명한 의사 6명, 시민단체가 지명한 전문가 2명, 법률가 2명, 기타 사회과학자(윤리철학 등) 2인 등으로 구성됐다. 징계위원회는 윤리위원회의 위원과 겸임할 수 없도록 했다.

위원회 구성 못지않게 합리적인 징계절차를 운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합리적인 절차 없이 징계를 내리면 당사자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의 (안)에 따르면 징계사유 발생 시 해당 이해관계자가 각 지역 의사회와 의협 중앙회에 사전징계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징계심사 요청이 있으면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이를 조사하거나 심의하도록 했다. 특히 중앙윤리위의 조사와 심의 결과, 징계사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중앙회의 윤리위원 위원장은 증빙자료를 갖춰 징계위에 징계개시를 청구하게 했다.

지부 윤리위원회는 징계사유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원을 사전에 계도하는 역할이다. 또한 지부 윤리위는 징계사유를 인지하면 해당 이해관계자가 아니어도 중앙윤리위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도록 권한과 의무를 높였다. 윤리위 심의 결과가 경미하다고 판단되면 징계위에 징계개시 청구 없이 견책으로 끝내도록 했다. 단 견책 3회 이상 받은 자는 징계위 의결로 징계처분을 내리도록 해 일정 부분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징계심사를 청구한 이해관계인과 피징계인은 본인이 관련된 심의에 한해 윤리위 징계심사와 징계위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또한 그들에게 심의내용과 결과를 통보하도록 했다. 징계절차의 지연 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징계검사 및 징계개시는 청구가 있는 날로부터 1일 이내에 시작하도록 규정했다. 단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의결로 1개월의 기간에 한해 연장할 수 있다.

이해관계자에 한해 징계심사청구를 하도록 한 것은, 심사청구가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윤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징계개시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자율권 남용의 문제로 비칠 수 있으나, 징계심사청구에 의해 개회된 윤리위 회의록을 작성토록 규정을 만들었다. 이 회의록을 관계부처가 정기적으로 감사하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징계심사를 청구한 이해관계인과 피징계인의 심의회 참여 보장은 당사자 알권리 보장과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징계심사청구인과 피징계인이 징계심의에 배석토록 함에 따라 불복절차를 두지 않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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