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공백에 경영누수까지 괴로운 '병원'
2008.10.02 03:11 댓글쓰기
심사숙고 끝에 9명의 레지던트를 선발한 S병원은 연초 당황스런 일이 발생했다. 한 달 남짓 일하던 1년차 레지던트가 갑작스럽게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사표를 낸 레지던트는 그날로 미련없이 떠났고, 이 병원의 진료계획은 어긋 나기 시작했다. 남은 레지던트들은 업무를 분담해야했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업무 과중으로 레지던트들의 신경은 날로 날카로워졌다. 환자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병원 규모가 작다보니 후반기 모집을 확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S병원 수련 책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S병원 수련 책임자 A 과장은 "수련을 중도 포기하는 레지던트들의 특징은 연초에 사표를 제출한다는 점"이라며 "3~4년차보다는 1년차가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병원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레지던트의 중도 수련포기는 결국 남은 인원들의 업무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과 레지던트가 평균 20~30명의 주치의로 활동한다고 본다면, 업무과중으로 느끼는 피로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병원은 올 초에 어김없이 1년차 레지던트가 사표를 던졌다. 남은 레지던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업무과중뿐 아니라 동료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 감정 기복을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병원 관계자는 귀띔했다.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레지던트 중도 수련포기로 인한 여파는 더욱 크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련포기가 도미노 현상으로 벌어져 경영진을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 다른 D중소병원 수련 관계자는 "한해 선발하는 레지던트가 적게는 10명에서 15명 수준에 불과해 한 명의 공백이 매우 크다. 업무 과중도 문제지만, 남은 인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라고 전했다.

업무 과중으로 인해 곧바로 나타나는 현상은 레지던트들의 친절도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환자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환자에게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레지던트와 환자 간 고성이 오갔다는 전언이다.

레지던트들의 피로감은 진료 불친절, 병원에 대한 불만 증가, 병원 이미지 악화 등의 악순환을 거듭한다. 환자들 사이에 안 좋은 소문이 퍼져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연초 수립한 진료 계획이 어긋나는 것도 고민이다. 레지던트들 역시 수련을 받는 피교육자 신분으로서 양질의 교육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A 과장은 “연초에 레지던트 중도 수련포기가 발생하면 후반기 모집을 기대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 이라며 대한병원협회에 다시 보고하고 모집공고를 내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행정력이 낭비되는 경우도 아쉬운 부분 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비인기과 악순환…응급의학 지원자 끊겨

서울의 한 중소병원 B 수련부장은 레지던트 중도 수련포기가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소위 비인기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피부과 안과 등의 잘 나가는 과에서 수련포기는 남의 이야기라고 했다. 개원이 쉬운 내과계열도 비교적 적은 중도 포기율을 이어가고 있다.

B 수련부장은 "우리 병원도 마찬가지로 점점 흉부외과 의사가 사리지는 것 같다. 비슷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곤 한다"며 "주위 병원들을 보면 산부인과에서 연례행사처럼 레지던트 수련포기가 발생하는 것 같다. 심장 수술에 대한 미래가치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의학과의 경우 지원조차 하지 않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다고 우려했다. 의무적으로 응급실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의들로 꾸려가고 있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는 호소다.

B 부장은 "다른 병원의 사례를 설명하자면, 한 과에 4명의 레지던트가 있었는데 순식간에 1명으로 줄어드는 경우를 목격했다"며 "이 같은 경우 사실상 그 진료과의 정상적인 진료를 힘들다고 보면 된다. 레지던트들의 임상진료가 수련의 근본 목표가 아닐지라도 중소병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3~4년차 레지던트들이 보통 1년차가 하는 업무를 맡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수술 건수가 줄어들고 경영 측면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스태프가 레지던트 업무를 떠안기도 한다.

스태프의 업무과중은 교육의 질 약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각에서는 "진료기계라며 탄식하거나 공부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B 부장은 "수술을 해야 하는 고급 인력이 드레싱을 한다거나 기본적인 수술에 매달리면, 환자나 병원 모두에게 손해가 클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현재 흉부외과와 응급의학과가 가장 상황이 심각하며, 안과와 피부과는 정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정이 비교적 좋은 대학병원도 레지던트 수련포기가 반갑지 않다. 의국 내 분위기가 침체되고, 업무과중 현상이 동일하게 발생한다.

C대학병원 한 교수는 "비교적 인기가 높다는 과에서도 중도 포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라며 "그러고 보면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는 레지던트 중도 수련포기의 여파가 더욱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시 방편으로 일반의사 고용”

레지던트 수련포기로 인한 경영 누수를 막기 위해 일반의를 고용하는 사례도 있다. 연초에 병원을 떠난 레지던트의 빈자리가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

앞서 S병원은 매달 400~4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일반의사를 고용했다. 일반의사의 급여가 레지던트의 평균 2배 정도임을 감안하면, 2명만 중도 포기해도 5000만원 내외의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 전문의를 고용하면 더 많은 비용 부담이 발생하기도 한다.

S병원 A 과장은 "레지던트 생활 시작 후 반년이 최대 고비다. 자신이 적성과 비전을 찾아가는 레지던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영적인 부담도 충분히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들은 레지던트 수련포기 예방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대다수가 현실적인 답을 복리후생 개선에서 찾고 있다.

휴가 일수를 철저히 보장하고, 숙소를 리모델링하거나 다양한 시설을 보강하고 있다. 폭언 및 폭력 예방, 의국 분위기 쇄신 등의 감성 대책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상 적성에 맞더라도 선배와의 불협화음이나 동료의 냉소로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목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레지던트와 병원간 상호평가는 물론 정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사례도 많아지는 추세다.

병원계 관계자들은 "레지던트 개인 사정에 따라 중도 포기율이 달라질 수 있으나, 결국 이를 예방하는 요소는 양질의 수련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병원계도 복리후생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으며, 정부도 병원들이 레지던트들에게 쾌적한 수련업무를 제공하도록 지원을 했으면 한다. 이는 의료서비스의 향상으로 나타나 서로에게 윈윈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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