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前 의사는 없다. 현실을 봐 달라'
2008.10.03 22:20 댓글쓰기
사태는 심각했다. 레지던트 중도포기에 따른 일선 수련병원의 어려움을 조명하고자 했던 기획의도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병원과 레지던트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고충을 겪기는 내 일반이었다. '왜 그들은 중도포기를 해야 했는가?'라는 의문에서 마련된 좌담회는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답 찾기에는 성공했지만 그 방향은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갔다. 스승과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직서를 던진 레지던트. 그들을 직접 만나 작금의 사태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


'중도포기자'라는 낙인이 두려웠을까. 좌담회 섭외는 녹록치 않았다. 수 십 차례의 통화와 설득 끝에 2명의 레지던트 섭외에 성공했다. 그나마 섭외에 응했던 3명 중 1명은 막판 심경변화가 왔는지 참석을 취소, 부득불 2명으로 진행해야 했다. S의료원 핵의학과에서 수련을 받다가 S병원 가정의학과로 둥지를 옮긴 K 선생과 K의료원 비뇨기과에서 K병원 가정의학과로 진료를 바꾼 P 선생. 기존 병원과 옮긴 병원의 이니셜이 같은 까닭에 일명 'SS', 'KK'라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작심을 하고 나온 듯 좌담회 초반부터 전공의 중도포기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개인신상 보호를 위해 익명 처리를 원칙으로 한다.[편집자주]

Q 왜 중도포기했나
A 고 : 솔직히 인턴시절 임상과의 업무과중에 겁을 먹고 핵의학을 선택했다. 학문의 희소성 역시 끌리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참담했다. 선배도, 후배도 없던 탓에 2년이란 시간동안 혼자서 실무를 전담해야 했다. 육체적 피로야 견딜만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미래의 불투명성은 참기 힘들었다.

백 : 비뇨기과 생활 100일 만에 내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배우는 술기 대부분이 학교에 남을 경우 유효하겠지만 개원을 고려했을 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비뇨기과로 개원해서 방광암, 고환암, 음경암 술기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일찌감치 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Q 포기 이유 중 과 특성 외 폭력 등 다른요인은 없었나
A 고 : 임상 관련 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폭력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과 동료들의 말을 빌면 폭력은 여전히 잔존한다. 실제 반복적인 폭력 때문에 수련을 포기한 동료도 있다. 다행히 핵의학과는 폭력과 무관했다. 교수님도 잘 해주셔서 갈등도 없었다.

백 : 물론 폭력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도포기 사유가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인체를 다루는 의술 특성상 폭력이 근절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요즘에는 많이 개선이 됐지만 강압적인 말과 행동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일정부분 효과가 있다. 나도 후배들이 못하면 때론 욕도 한다.

Q 중도포기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A 고 : 교수님과의 관계였다. 인원이 없어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등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배가 들어오길 기다렸고 인수인계를 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결심이 서고 교수님께 최종 인사를 드리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백 : 당연히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동료들에게 너무나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껄끄러웠던 선배들에게까지 미안했다. 레지던트 한 명 빠지면 어느 정도의 공백이 생기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Q ‘중도포기자’라는 낙인의 대가는
A 고 : 전 병원에서 원만한 결말을 맺은 덕인지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중도포기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정적인 편견'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물론 텃세도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편견을 극복하고 적응해 나가느냐라고 생각한다.

백 : '중도포기자'의 낙인은 엄청난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포기자에 대한 기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모교 병원일 경우 가능성이 높지만 전 병원에서 좋지 않은 정보를 흘릴 경우 이 마저도 힘들다. 포기할 때는 과감했는데 막상 옮기려니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Q 왜 중도포기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A 고 :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국민들의 의식구조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전공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수련환경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세대 전공의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강요하는 현 수련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난다. 자신이 선택한 진료과가 적성과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아쉬운 대목이다.

백 :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보다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작금의 교육은 지나치게 심화된 의술에 치우쳐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개원을 할 경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공의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도포기율 증가는 계속될 것이다.

Q 외과, 흉부외과 등 3D과 기피현상을 어떻게 보나
A 고 : 고위험도 환자를 다뤄야하는 만큼 수련과정도 어렵다고 들었다. 물론 지원자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과를 선택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들 역시 미래의 삶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힘든 수련과정을 견디고 학교에 남으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참담한 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확실한 돌파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이들 과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백 : 무모한 사명감으로 3D과를 지원할 경우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 징용 되어 온 것처럼 일 해야 하고 미래 또한 보장할 수 어렵기 때문이다. 부담되고 힘든 수술 기피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의사의 사명감도 상황이 뒷받침 될 때 발휘되는 것 아니겠나.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의사에게 지나치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만을 강요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Q ‘돈 되는 과’만 쫓는다는 지적에 대한 견해는
A 고 : 대한민국은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다. 의사에게 무조건적 희생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의대를 졸업하기 위해 1억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원가보전에 대한 생각이 왜 나지 않겠나. 정부에서 100% 학비를 지원해 준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어렵사리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이 작금의 상황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백 : 의대에 입학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실히 느낀게 하나 있다. 의대는 사명감 있는 부유층이 자아실현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30년 전이야 '의사'라는 직업이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통했지만 이제 시대가 많이 변했다. 개원을 위해 수 억원이 필요하고 이마저도 폐업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언제까지 30년 전의 잣대로 의사의 삶의 질을 제단할 것인가.

Q 향후 계획은
A 고 : 국내에서 '의사'로 살고 싶지 않아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다. 일단 미국에 가서 의사면허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지에서 의사 생활을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 외에도 한국을 등지고 해외로 나가려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왜 전공의들이 모국 대신 외국에서 의사의 삶을 살 계획을 세우는지 정부는 진지한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이다.

백 : 답이 없다. 운이 좋으면 학교에 남을 수 있겠지만 녹록치 않다. 개원은 꿈도 못 꾼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고 부러워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친구들은 대기업 들어가서 집 사고 차 사고 기반 닦아 놓는 동안, 전세방 하나가 유일한 재산이다. 백지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전문의 자격증 취득 후 지방 병원에서 봉직의 생활을 하는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7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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