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교수들 '이젠 말할 수 있다'
2008.12.23 22:00 댓글쓰기
‘절망’,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할까? 대한민국 흉부외과가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수 년째 지속되는 전공의 미달 사태로 수술방에 젊은피가 수혈된 지 이미 오래고, 앞날 역시 먹구름만 가득하다. 단순히 고된 삶을 회피하려는 젊은 의사들의 세태로 치부하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다. 선배 의사들은 점차 고령화되는 수술방 모습에 땅이 꺼질 듯 한 숨을 내 쉬면서도 정작 후배들에게 자신있는 손짓을 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데일리메디는 처참한 지원율을 기록했던 레지던트 마감 직후 전국 주요 대학병원 흉부외과 과장들을 찾아 그들이 느끼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조 건 현 교수(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들이 맡고 있는 업무만 해도 응급실 처치, 회진, 수술 참여, 상처소독, 차트정리 등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과중돼 있다. 설사 한 두명의 전공의를 믿고 수술을 한다해도 1주일에 24시간 당직을 서는 전공의에게 의료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 선 희 교수(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흉부외과를 지원하고 싶어도 자신이 1인 4역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또한 부모들의 지나친 만류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전공의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지만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교수의 본분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 명 근 교수(건국대학교병원)
흉부외과의 과대한 일에 비해 보상 대가가 너무 낮다. 수가가 문제다.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 전공의들의 기피현상 심화로 향후 심장 수술할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흉부외과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 치 순 교수(건양대학교병원)
세계적인 심장수술 술기가 레지던트 부족으로 사장될까 걱정된다. 레지던트 부족은 향후 전문의와 펠로우, 교수 부족으로 이어져 흉부외과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더욱이 최근 심장 관련 질환이 증가하면서 흉부외과 의사의 역할이 더욱 커진 점도 고민해야 할 숙제다.




김 범 식 교수(경희대학교 부속병원)흉부외과는 정말 능력 있고 머리가 좋은 의사여야 한다. 환자는 생명을 맞기러 흉부외과 의사를 찾지 않나? 국가는 파일럿에 상당한 재원을 투자하면서 왜 흉부외과 의사를 길러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는데 말이다.



박 창 권 교수(계명대학교 동산병원)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등 힘겹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물론 관계당국도 흉부외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



김 광 택 교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흉부외과 의사가 아무리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은 실제로 감당하기 힘들다. 최근 흉부외과 의사들을 ‘Cardiac Surgeon’가 아니라 ‘Crazy Surgeon’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다는 의미란다. 이것이 흉부외과의 현실이다.



서 필 원 교수(단국대학교병원)
현재 고난이도의 수술을 행하는 흉부외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가치는 낮게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지원 확대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흉부외과에 대한 평가를 높여야 한다. 보다 현실을 반영한 장기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김 응 중 교수(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전공의들의 흉부외과 기피현상은 다른 과에 비해 고생을 많이 하고 전문의를 딴 후에도 그것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20~30년 전이야 사명감, 적성 등으로 흉부외과를 지원했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전공의들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안 혁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정부와 병원들이 흉부외과 회생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시키는 핑퐁게임만 하고 있는 동안 의대생의 마음은 점점 흉부외과와 멀어지고 있다. 흉부외과의 부정적인 인식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원 용 순 교수(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흉부외과 전공의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한 달에 정규적인 휴일을 줘야 한다. 병원에 남아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매년 전공의를 뽑는 것이 아니라 3년에 1명을 뽑아 특별수련을 통해 질 높은 의사를 육성해야 한다.




오 중 환 교수(연세대학교 원주기독병원)
당직을 이틀에 한 번씩 선다. 이제는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다. 흉부외과의 근본적인 문제는 레지던트 수급이 아니라 비전의 문제다. 아직도 흉부외과 할 젊은 의사가 많이 있다. 하지만 누가 비전이 없는 흉부외과를 택할 것인가?



이 삼 윤 교수(원광대학교병원)
국내 사정상 앞으로 지방병원의 흉부외과는 살 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력도 없을뿐더러 환자들이 서울 편향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갈수록 수술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힘들다는 생각도 잊은지 오래다.




원 태 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무턱대고 사명감으로 일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얘기지만 돈과 명예보다는 생명을 중시하며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갖는 전공의들이 많이 지원하기를 바란다. 또 앞으로 의료체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만큼 현 상황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하기를 바란다.



백 완 기 교수(인하대학교병원)
결국 수가의 문제 아니겠나? 하지만 수가 100% 올려도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돈벌이도 안되고 힘든 흉부외과 외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10년 후 흉부외과 의사 수입하는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이다.




안 병 희 교수(전남대학교병원)
과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험한 길을 왜 접어들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후배들에게 권유하고 강요해 왔지만 이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손 동 섭 교수(중앙대학교병원)
전공의 없이 교수들로 흉부외과를 운영해온지 오래됐기 때문에 이제 힘들다는 것을 따로 느끼지 못한다. 시대조류에 따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간호사, 인턴들과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다.




이 재 웅 교수(한림대학교 평촌성심병원)
아직은 괜찮지만 5년~10년 후가 걱정이다. 현재 부족한 전공의를 대신해 전문 간호사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많다. 정말 몇 년 후에는 동남아시아 의사들이 우리나라에서 흉부외과 수술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8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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