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양극화'…중소병원·개원가 '휘청'
2005.12.26 22:11 댓글쓰기
의료시장개방 등 급격한 환경변화를 앞둔 올 한해, 병원계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본격화했다. 각 병원들은 특성화·전문화를 내세우는 동시에 ‘몸집 불리기’에 나서며 대형병원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대형병원들의 행보는 더욱 거세다. 소위 ‘빅5’ 병원들은 이제 국내가 아닌 세계화를 내세우며 각각 최고 기반을 다지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이지 않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체제는 중소병원들과 개원가의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이어졌다. 특히 정부의 의료기관평가 공표와 중소병원에 불리한 조건으로 매듭지어진 산별교섭은 의료기관간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 꼴이 됐다. 또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진료과별로도 나타났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산부인과 등의 기피현상은 국내 의료 인력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새해를 앞두고 그야말로 누란지세(累卵之勢)인 올 한해 병원계의 명암을 되짚어 본다.[편집자주]

<上>치열해지는 생존경쟁 '누란지세(累卵之勢)' 형국
<下>아산·삼성·세브란스등 빅5 병원 '백중지세'

유행처럼 번진 대학병원들?'몸집 불리기'…의료기관간 명암 교차


올 한해는 덩치를 키우지 않는 병원들이 이상하게 보일 만큼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치열했다. 그 가운데서도 건국대병원, 동국대병원+한방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들의 약진은 소위 '빅5'라 불리는 초대형 병원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8월에는 870병상에 31개 진료과와 4개 진료센터 및 건강증진센터를 갖추고 지하철 최대 수혜 노선이라 불리는 2, 7호선 환승역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건국대병원이 화려한 개원 소식을 알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대의료원은 현재 안암, 구로, 안산병원등 의료원 산하 3개 병원의 동시 신증축 공사로 내년이면 3000병상 이상의 초대형병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며, 경희의료원도 내년 3월 800병상 규모의 동서신의학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병원들의 이 같은 초대형화 현상이 환자 만족도나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반면, 중소병원 및 동네의원들과의 의료기관간 빈익빈 부익부 초래 등 역작용에 대한 우려감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중소병원은 지난 2002년 이후 현재까지 3년 연속 도산율 10% 안팎이라는 불명예속에 경영난이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 동네의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속에서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는 이들의 입지와 역할을 점점 좁게 만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정부의 정책 마련과 함께 주변의 작은 병원과 의원까지 아우르는 이들 대형병원들의 몸집에 비례한 넉넉한 포용력이 절실한 때다.

첫 의료기관평가…서울대·아산·삼성 '웃고' 세브란스·고대 '울고'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처음 42개 종합전문요양기관을 포함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급 총 78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관평가 결과를 올 4월 전격 공개해 병원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환자의 권리와 편의, 진료체계, 병동, 영양, 응급, 수술관리체계, 약제 등 18개 항목에 걸쳐 진행된 평가 결과 서울대병원이 가장 높은 등급(평점)을 받았으며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경희의대 부속병원, 강릉아산병원, 강남성모병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의외로 낮은 등급을 받은 세브란스병원과 고대 안암병원, 또 A등급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 일부 중소병원급들과 지방병원들은 쓴 패배감을 맛봐야 했다.

의료기관평가 이후 병원계에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하고 낮은 평가를 받은 병원들은 환자가 줄어드는 병원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각 병원들의 진료특성을 고려치 않고 전국단위로 획일적이고 동일한 평가기준과 방식을 적용해 대다수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상위 등급을 받은 반면 구조적인 한계를 지닌 공공병원이나 지방병원들은 대부분 하위 등급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같은 결과가 언론매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공개, 낮은 평가를 받은 병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나아가 적지 않은 병원들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는 등 ‘의료 질 향상’이라는 의료기관평가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올 10월 전국 종합병원 80개를 대상으로 실시된 두번째 의료기관평가는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으로 구분해 이원화된 평가기준이 적용됐다. 중소병원의 현황을 고려해 평가분야별 동일 기준문항 적용시 중소규모 병원의 실정에 맞게 조사내용 및 방법 등을 조정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같은 편법·위법 사례가 대거 적발되고 평가 자체에서 여러 문제점이 도출되자, 진흥원은 오는 2007년부터 의료기관평가를 연중 상시적으로 실시하는 수시평가 체제로 전환하고 임상진료의 질 평가도 시범적으로 평가내용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년차 '산별교섭'…100억 이상 인건비 상승에 허리휘는 병원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병원계 산별교섭은 올 상반기 병원계를 뜨겁게 달군 최고의 핫 이슈로 손꼽힌다.

지난 4월 병원노사간 상견례로 첫 테잎을 끊은 올 산별교섭은 7월 말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가 내려지기까지 4개월이 넘는 긴 시간동안 노사간 지리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특히 올 교섭에서 사용자단체 구성 문제에 봉착한 사측은 외부 노무사에게 교섭권을 위임, 12차 교섭까지 파행을 거듭하다, 지난 7월 중노위의 직권중재로 결국 마무리됐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교섭 막바지 고대·이대·한양대 등 14개 병원에서 사흘간의 파업을 벌인 끝에 중노위의 중재안을 수용했다.

중노위가 내린 직권중재안은 임금 총액 대비 공공부문 3%·민간부문 5% 인상, 월 1회 무급 생리휴가 부여, 주5일제 시행 등으로 병원계로부터 사립대를 비롯한 민간중소병원에 매우 불리한 중재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올 산별교섭이 일단락된 후 5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이 같은 중재안에 직격탄을 맞은 일선 병원들의 고통은 진행형이다. 지난해에 이은 올해 임금 인상으로 2년 사이 총액기준 15%를 넘는 인건비 상승률을 보인 민간중소병원 등은 병원운영마저 불투명한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올 산별교섭에 참여한 병원계 실무자들은 "중노위의 임금인상 이원화 결정은 산별교섭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부당한 처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이들은 "근로자 근속연수와 기존 근로조건 등이 우수했던 병원일수록 타격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파업으로 인한 경영상의 피해 등을 감안할 때 산별교섭의 필요성에 의문이 든다"며 산별교섭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극명한 '2006 전공의 모집'…과별 명암속 산부인과 사상 '최악'

올 상반기 병원계 이슈가 산별교섭이었다면, 하반기는 뭐니뭐니 해도 2006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나타난 진료과별 양극화 현상이었다. 특히 전체 83개 모집 병원 중 60%에 달하는 49개 병원에서 미달사태가 빚어진 사상 최악의 산부인과 기피현상은 올 하반기 병원계 최고의 암울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전체 281개 수련병원(기관) 26개과를 대상으로 진행된 내년도 전공의 전기 모집은 전체 3444명 정원에 4089명이 지원, 평균 1.19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 가운데 산부인과 및 외과, 흉부외과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내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은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기록, 진료과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성형외과는 1.79대1, 정형외과 1.66대1, 피부과 1.65대1, 안과 1.57:1의 경쟁률을 기록, 인기과의 명성을 유지했으나 만성적 기피과인 흉부외과는 0.5대1, 소아과 및 외과 0.9대1, 병리과 0.65대1, 진단검사의학과 0.58대 1 등으로 정원에 크게 미달됐다.

특히 사회전반에 걸친 저출산으로 직격탄을 받은 산부인과와 함께 일부 병원에서는 소아과도 미달 현상이 속출, 비인기과로의 동반 전락이 우려되는 등 '힘들고 위험한 과목' 기피현상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사상 최악의 전공의 미달사태가 발생하자,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수련병원 구제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최근 학회는 이번 전공의 모집과 관련, 추가(후기) 모집기간을 통해 전기 모집 시 미달사태를 빚은 수련병원에 한해 산부인과 전공의를 다시 모집하는 방안을 관계 기관에 적극 개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병협은 이미 후기 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상태며 일정상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전면 재시행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병협 병원신임위원회는 내달 초 위원회를 소집, 비인기과의 대책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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