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망한 젊은 의사들 왜 '노조인가'
2006.04.23 21:55 댓글쓰기
산별교섭 시즌이 돌아오면서 병원계에도 춘투(春鬪)가 본격화될 전망인 가운데 첫 의사 노조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이 뜨겁다. 중도포기자가 속출할 정도로 열악한 수련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전공의의 바람과 '의사'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선배들의 우려, 병원 경영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원장들의 한탄과 더불어 의사 파업으로 인한 진료권 침해를 걱정하는 일반 국민의 시선까지…데일리메디는 2006년 의료계의 핫 이슈로 떠오른 전공의 노조 설립의 배경과 문제점, 병원계에 미칠 영향 및 대응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上]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들 왜 '노조인가'
[下] 1만6천 전공의 단체행동…병원 의료공백 '휘청'

한 대학병원 소아과 레지던트 1년차 K모씨. 그 힘들다는 의과대학을 마치면서도 코피 한번 흘려본적 없던 자타공인의 건강체질인 그가 최근 한달 새 7번이나 코피를 쏟아냈다.

그가 당직을 서는 하룻밤 동안 다녀간 응급환자가 무려 50여명에 달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다음날 또 당직을 서야했다. 1년차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병원에선 비인기과로 전락한 소아과 레지던트 T/O 채우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환경이 도마위에 오른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K씨 같은 어려움에 중도에 전공의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것.

취재 중 만난 꽤 유명한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K씨 같은 사례는 다반사"라고 서슴없이 밝혔다. 같은 병원의 L교수도 이 같은 현상엔 일단 수긍했다.

하지만 전공의 중도포기 현상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공의는 K씨의 사례를 들려준 반면 L교수는 개인적 혹은 세대적인 문제라고 일축했다.

L교수에 따르면 그가 수련을 받던 20~30년 전에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련환경이 더욱 열악했다는 것. 그렇지만 중도포기하는 전공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시각 차이가 지난 2004년 전공의협이 추진하다 불발로 그친 '전공의 노조 설립'이 본격적인 제2라운드 전에 돌입한 근본적 이유다.

왜 전공의 노조인가?

한동안 잠복기에 있었던 전공의 노조 문제가 최근 또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5월 출범을 목표로 1차 거점병원으로 몇몇 메이저 병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전공의 노조 설립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실제로 전공의협은 지난 주 이미 전공의 노조 설립총회를 가졌으며 실질적으로 노조 활동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부 신고 절차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흔히 알려진대로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의사가 되기 위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한 전공의들이 굳이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감수해가며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이다. 전공의는 의료진으로서의 신분과 함께 수련과정에 있는 피교육생으로서의 이중적 신분을 갖고 있다.

이에 주당 100시간 이상에 달하는 과도한 근무시간과 2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낮은 연봉 등으로 혹사당하면서도 신분상의 문제로 이의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 혁 노조준비위원장은 "열악한 수련환경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전공의가 늘고 있으나 개선책은 물론,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중소병원과 대형병원간 수련환경의 차이가 노조 설립을 앞당기는 주된 이유라는 것.

이 혁 위원장은 "소위 메이저급 병원들은 굳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처우가 많이 개선된 상태지만 중소병원들은 사정이 다르다"며 "상대적으로 전공의 숫자도 적어 의견을 개진할 분위기 자체가 형성이 안됐다"고 밝혔다.

그는 "전공의 수련 자격이 없는 병원들은 수련병원을 포기해야 한다"며 "대신 대형병원에서 전공의 정원을 늘리는 방향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협은 또한 수련과정을 운영하는 병원협회 및 정부당국의 현실 인식 부족을 지적하고 나섰다.

전공의협은 "지난해 병협에 40여가지 전공의 수련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병협이 수용한 것은 소합의서에 채택된 단 몇가지에 불과했다"며 "이를 토대로 한 소합의서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한 병원장 역시 "열악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문제에 대해 수련환경의 지도감독 권한을 가진 병협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의 안일한 대처가 또 다시 문제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노조 설립 과연 지금이 적기인가

전공의협은 이미 3년전인 지난 2004년부터 전공의 노조 결성을 추진해왔다. 이미 오래전 준비가 완료한 상태였으며 '출범' 만을 앞두고 있던 중 최근 치러진 의협회장 선거가 하나의 기폭제가 됐다.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8명의 후보자 모두가 전공의 노조에 적극지지 입장을 밝혔으며 당선된 장동익 회장 역시 전공의협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전공의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권쟁취 투쟁을 겪으며 의료계 내 핵심 멤버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위상이 서서히 부각된 데 이어 최근 의협회장 후보들의 지지에 힘입어 전공의 노조 설립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전공의협은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며 "전공의 노조 설립은 물 흐르는 데로 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