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의사와 병·의원 '설 자리 없어져'
2006.09.04 21:55 댓글쓰기
2016년, 10년 뒤 한국의 의료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가장 바라는 모습은 무엇일까?
“의사의 진료권이 존중받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의료환경”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데일리메디는 창간 6주년을 기념, 2016년 9월4일자 기사를 미리 발행한다. 즐겁게 상상해 본 밝은 미래에 대한 기사와 지금보다 더 힘겨워진 어두운 미래를 그려본 기사를 상∙하로 선보인다.[편집자주]


[上]존스홉킨스 병원도 한국에서는 울고 간다

[下]마이너리그 의사와 병·의원 "설 자리 없어져"


나홀로 레지던트 '끙끙'

"전공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다 수련 중에 그만두는 레지던트도 생기다보니 그들을 나무라고 꾸짖는 것은 이곳 물정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출산의 여파가 매섭다.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5∼49세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0.92명으로 집계됐다.

'자녀는 짐'이라며 출산을 거부하고 있는 딩크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젊은 의사들의 산부인과 지원율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으며 교수의 한숨과 눈물은 마를 새가 없다.

최근 발표된 2016년 전공의 모집 결과, 산부인과의 경우 지원자는 모집정원의 80%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모 종합병원 산부인과 2년차 레지던트 L씨는 위로 3·4년차 레지던트가 아무도 없다. 선배들의 중도하차가 이유. 김씨는 1년차 후배와 함께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 벅차다.

잠잘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3·4년차 레지던트의 경우 직접 수술을 집도할 정도로 비중이 있지만, 그 자리가 비어있어 겨우 2년차인 자신이 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복되는 과부하와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실수도 끊임없이 저지르게 되며, 자신도 얼마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고 털어놓는다.

A병원의 경우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는 지원율 0%를 기록했으며, 산부인과는9명 모집에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B병원의 경우 지원미달로 산부인과에 단 2명의 레지던트를 선발했지만 모두 중도하차해 현재 레지던트 1년차가 전무한 상태. 같은 이유로 레지던트 3년차 자리도 비어있다.

이같은 상황은 지방으로 갈수록, 또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레지던트 1~4년차가 각각 전무한 대학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한양대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레지던트들의 빈자리는 단순히 특정과목 기피현상이나, 공급의 불균형 등을 벗어나 당장 환자들의 건강을 위험하게 할 수 있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은 보통 레지던트 1~2명이 수술준비를 하고 집도의인 교수가 전반적인 수술을 담당하기 마련. 간단한 수술은 레지던트 3~4년차가 직접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레지던트의 자리가 비는 곳이 많아 수술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 환자를 수술할 인력이 없으니 서울의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권할 정도가 된다.

줄도산 중소병원? 의사들은 서울을 뜬다?

중소병원들이 경영난 악화로 줄줄이 도산 위기에 빠졌다. 의료비 부담이 적은 동네의원에 환자가 몰리고 있는데다 대학병원은 팽창을 거듭하고 있어 중소병원들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한때 산부인과와 정형외과, 정신과를 두루 갖췄던 A중소병원은 이제 내과만 덜렁 남았다. 찾아오는 환자가 절반으로 줄면서 이제는 수술실마저 폐쇄할 처지가 됐다.

수도권에서 중소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병원장도 한때 병원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환자는 제법 확보했지만 언제 적자로 돌아설 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산 경성대 앞에 위치한 H내과. 이곳에 최근 서울대 출신의 의사가 합류했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는 서울에서 개원을 하려다 경쟁이 치열해 포기하고 터를 잡았다.

이 의사는 일주일에 2, 3회 정도 내려왔다가 자리가 잡히자 아예 눌러 앉기로 결정한 케이스. 그는 “원래 강남의 신사동에 개원했으나 워낙 지역 경쟁이 심해 혼자서 1년 동안 적자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들 역시 점차 양극화되고 있다. 충북의 A대학병원 관계자는 "현재 병상가동률이 90%에 이르러 괜찮은 수준이지만 병상회전율은 좋지 않다"며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현상 때문에 마치 지방에 있는 병원은 요양병원에 가까운 꼴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규로 배출된 의사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이들의 대부분이 중·소형 병원과 동네의원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는 "대형병원의 환자쏠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중소병원의 몰락을 가져왔고 대형병원 대 개원가로의 양분화를 유도, 이미 의료계에는 지각변동이 몰려왔다"고 일축했다.

경쟁은 치열하고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는 줄지 않아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개원한 의사들 중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병원 원장들이 부산·대구·광주 등 지방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한 교수는 "명확한 선두주자가 없었던 2006년. 각 병원이 엇비슷해 보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 스며든 양극화에 대한 우려는 결국 현실화되고야 말았다"며 "3차 진료기관 간에도 역할 구분이 뚜렷해졌다"고 한숨을 내쉰다.

서울대·아산·삼성 등 '빅5'만 전국구 병원

결국 '빅5'로 전열을 가다듬었던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의료원, 가톨릭의료원만이 전국구 병원으로서 경쟁력을 갖춘 채 살아남았다.

다른 대학병원들은 지역사회의 기반을 둔 병원에 머물러 결국 중대형병원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 주소다.

특히 의료수준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암이나 심장병 등 난치성질환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치 못한다면 곧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란 위기의식은 이미 뿌리내린지 오래다.

2016년 현재 의료계는 빈익빈 부익부에 확실한 양자 택일만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21세기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대만 졸업하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이 현재는 완벽한 시장 경제 안에 약육강식의 처절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나 둘 한국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아예 의료계 다른 사업을 모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막대한 자본금의 외국 투자 자본은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다는 온화한 인상으로 다가와 전략적 제휴란 명목으로 순식간에 국내 대형 병원들을 삼켰다.

몇 개의 대학병원만이 아직까지 언제 도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국내 자본가들 역시 너도 나도 의료사업에 뛰어들어 지방 곳곳마다 대형 메디컬 센터를 지어 이미 지칠대로 지친 소규모 의원의 사기를 더욱 꺾어버렸다.

의료시장이 개방된다고 의사협회와 몇몇 단체들이 삭발 시위까지 하며 엄청난 반대 집회를 했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

시대착오적인 의료광고법과 협회와 회원들의 규제로 마케팅이 막히고 철저하지 못한 재무 자료로 회계 분석이 막힌 상태가 이어졌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기만한 의료계는 안에서는 곪아갔지만 밖에서 눈으로만 보이는 직원들의 친절, 서비스 교육과 최신 장비와 인테리어 업체만 번창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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