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기자/기획 5]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정부 보건의료정책 설계 과정에서의 궁극적 목표이자 핵심이다. 반대로 말하면 별도 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민간보험과 조율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문재인케어 시행과정에서의 문제는 아니다.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는 원인 중 하나가 실손보험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한 경증질환자에 실손보험 혜택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중증등에 따른 환자 동선이 그려지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편집자주]
감기 같은 경증질환 환자들이 매우 쉽게 상급종합병원 외래진료를 본다. 물론 3차기관 외래 진료 시 타 종별에 비해 60%라는 높은 본인부담률이 적용되지만 실손보험가입으로 실제 부담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1차기관 진료의뢰서 없이도 갈 수 있는 구조인 데다가 상급종합병원도 환자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성황리에 경증질환 외래진료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마련한 단기대책은 경증환자를 많이 보는 대형 병원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외래환자 1인당 8790원인 의료질평가 지원금을 경증환자에 대해서는 지급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문제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본인부담률 조율을 한다고 해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상급종합병원-경증질환 억제론을 제도적으로 시행한다고 해도 실손보장이 후속대책으로 존재한다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병원만 옥죄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도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구조가 펼쳐진다. 이는 실손보험 문제를 풀어야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복지부는 “환자 행태 개선을 위해 본인부담금을 올리는 등 방안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물론 정부도 논의는 했다. 다만 지금은 실손보험 때문에 본인부담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무력화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 대안으로 향후 실손보험 보장범위를 조정하는 방안 등으로 추진할 것이다. 이를테면 실손보장 범위에서 경증이나 장기입원환자 부분의 보장범위를 조정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건보 보장범위 축소 반기는 실손보험사
상급종합병원을 경증질환으로 방문한 경우, 패널티를 부과하고 여기에 본인부담을 올리는 대책과 관련해 실손보험사 측은 반기는 입장이다.
‘손해율 상승은 선의의 보험가입자에게 피해로 돌아가는 구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업계에서는 경증질환 본인부담을 올리는 행위를 ‘보험차등제’로 부른다.
이는 보장 범위 조정을 통해 가입자 의료이용을 합리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구분한다. 개인별 보험금 수령실적과 연계해 보험료를 할인하거나 할증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 실장은 “보험차등제를 도입해 가입자의 개인별 보험금 수령실적과 연계해 보험료를 할인하거나 할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비급여 진료수가·진료량에 대한 적정 가이드 마련 등 보험금 지급관리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즉, 민간보험사 입장에서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는 경증환자본인부담율을 올리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복지부가 꺼내든 실손보험 연계론 시행을 내부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 보험사는 실손보험 손해율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면서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손보험 상품판매가 중단되고 있는 것이 증거다.
실제로 푸본현대생명(2017년 8월), KDB생명보험(2018년 1월), DGB생명보험(2018년 5월), KB생명보험(2018년 6월), DB생명보험(2019년 3월)도 각각 상품판매를 중단했다. 최근에는 NH농협생명이 온라인 실손보험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1년 109.8%, 2012년 112.5%, 2013년 115.5%, 2014년 122.8%, 2015년 122.1%, 2016년 131.3%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실손의료보험 손해율(개인실손보험 기준)은 130% 수준으로 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결국 민간보험사 차원에서 가장 예민한 손해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3차기관 경증환자에 보험금 지급을 줄이는 방안이 적용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민단체 “근본적 구조부터 변화 필요”
정부는 실손보험 연계론까지 끌어들여 상급종합병원 경증질환자에 대한 압박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태계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는 인위적인 제도의 변화 대신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먼저 담보돼야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건세는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국민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급자 관점이 아닌 환자경험을 근거로 의료기관 신뢰성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손보험 보장범위를 줄이는 등 환자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일차의료 영역의 질적 향상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네의원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31.3%에 그쳤다. 응답자의 24.7%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한 달 내에 같은 질환으로 대형병원을 다시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구조라서 실손보험 보장 범위를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세는 “정부는 전달체계 단기대책을 내놓으며 환자부담을 한층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문제는 선택권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편익도 있어야 하는데 이 영역이 분명하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정부투자가 있어야 진료권 폐지에 따른 수도권 집중을 방지할 수 있다. 지역의료원의 완결성도 보장할 수 있다. 환자 관점에서 의료공급부문 체질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적으로 신뢰할 만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환자를 대리해 이를 보장해 주는 구조나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 실정인데다가 고비용과 비효율로 점철된 왜곡된 공급체계 안에서 국민들에게 의료이용의 합리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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